대한우울·조울병학회 춘계학술대회서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에 대해 논의
안전한 진료실 조성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갖춰야 한다는 지적 이어져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2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춘계학술대회를 열고 의료현장에서 폭행이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2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춘계학술대회를 열고 의료현장에서 폭행이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발생하는 의료인 폭행의 근본적인 문제는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있다는 데 의료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환자의 공격성보다는 의료인이 폭행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진료하면서 폭행을 예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2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춘계학술대회를 열고 의료현장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원광대병원 장승호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최근 정신건강의학과 수익이 줄어 병원에서는 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인력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본 병원은 오전근무 시간에는 보안요원과 함께 일하지만 야간근무 시간에는 남자 간호사가 보안요원 역할도 하고 있다. 취약한 환경 속에서 의료인들이 근무하고 있음에도 병원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토로했다. 

건양대병원 오홍석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최근 한 언론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주요 대학병원 20곳 중 뒷문, 비상벨, 전담 안전요원을 모두 갖춘 곳은 단 1곳이었고, 뒷문 또는 대피용 공간을 갖춘 곳은 3곳이었다"며 "본 병원은 비상벨만 있었지만 지난 3월 초에 진료실에 뒷문이 생겼다. 그동안 병원에서 안전한 진료환경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건양대병원 오홍석 교수는 'Prevalence and Korean situation'에 대해 발표했다.
▲건양대병원 오홍석 교수는 'Prevalence and Korean situation'에 대해 발표했다.

故 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 임상에서는 병원 내 안전관리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병원이 시설 구축에 투자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내 의료인 폭력 관련 법규에는 진료과목별 안전관리 필수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5조 제6항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는 환자, 의료관계인, 그 외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을 위해 진료과목별로 안전관리를 위한 필수적인 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해 진료과목별로 반드시 마련해야 할 시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의료인 폭행 사건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 종별에 관계 없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시설 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보안·무음경보체계, 비상구 확보, 금속탐지기, CCTV 등 모니터링 시설, 직원 보호를 위해 방탄유리로 제작된 개방된 접수대와 같은 장애물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시설을 가지고 있는 미국 내 의료기관은 많지 않지만 시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고 대다수 주에서 이를 마련해 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는 게 오홍석 교수 전언이다.

이와 함께 외국 주요 대학병원에서는 의료인 폭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놓았다.

예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은 정문과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입구부터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은 출입카드가 있어야만 방문할 수 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병원은 병원 정문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고 안전요원이 근무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병원은 진료실 내 피신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고 예약된 소수 환자만 진료받을 수 있으며, 환자가 의료인을 위협하는 등 특별한 상황이 있었다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오홍석 교수는 "의료인 폭행이 늘고 있는 이유는 환자에 있기보다는 폭행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이 크다"며 "의료인 폭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성빈센트병원 정종현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성빈센트병원 정종현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성빈센트병원 정종현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인 폭행을 예방하기 위해 병원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또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인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들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제영묘 주임과장(정신건강의학과)은 "현행 수가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안전관리 시설을 설치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란 어렵다"며 "이런 부분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지만 예측할 수 없어 위험하다. 국가가 주도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환경적인 문제는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을 각 병원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환경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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