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디올렉스 신청 가능 수량 제한하지 않아…희귀센터 우선 준비한 1000병 부족할 수도
'대체치료 수단 없다'는 기준 정립되지 않아
허가된 적응증 외 질환에 쓰기 위해서는 전문가 자문 필요

대한뇌전증학회는 8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대강당에서 '카나비노이드 워크숍'을 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정책과 김광진 연구관은 '우리나라 마약류 관리 지침 및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8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대강당에서 '카나비노이드 워크숍'을 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정책과 김광진 연구관은 '우리나라 마약류 관리 지침 및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국내 뇌전증 환자가 대마성분 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문이 12일 열리면서 의료 현장은 당분간 혼돈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대마성분 의약품 치료가 처음 시작되지만, 신청 가능 수량, 난치성에 대한 기준 등을 제시한 처방 가이드라인이 없어 의사 개개인의 판단 하에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라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은 12일부터 대마성분 의약품 수입 신청 후 사용할 수 있다. 단 모든 환자가 아닌 '국내 대체치료 수단이 없는 희귀·난치질환 환자'로 국한된다. 

제도 시행으로 희귀 뇌전증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또는 드라벳 증후군 환자들은 외국에서 '에피디올렉스(성분명 카나비디올)'로 판매되는 대마성분 의약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대한뇌전증학회 김재문 이사장(충남대병원)은 "대마성분 의약품에 대해 의사들과 환우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국내에 치료 경험이 있는 의사가 거의 없어 진료 현장에서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치료 도가 넘거나 부족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뇌전증학회는 8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대강당에서 '카나비노이드 워크숍'을 열고, 임상에서 예상되는 문제점과 현 상황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리 준비한 '1000병' 부족할 수도?

현재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희귀센터)는 신청자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에피디올렉스 1000병을 우선 수입해 준비해 뒀다. 

환자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자가치료용 수입 품목에 대한 취급 승인을 받고 희귀센터에 수입 신청 후 최종 공급을 받기까지 최소 2달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러나 신청할 수 있는 에피디올렉스 수량은 제한하지 않아 희귀센터가 우선 준비한 1000병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자는 진단서에 기재된 용법·용량, 투약기간 등에 따라 취급승인 신청서에 받고자 하는 치료제 수량을 기재한다. 에피디올렉스 1병 포장단위는 100mL로 10kg 환아 기준으로 3달 정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신청 수량에 대한 제한이 없어 한 사람이 많은 수량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는 의사 진단서를 기본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므로 신청 수량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마약정책과 김광진 연구관은 "취급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1순위가 전문의 진단서이기에, 신청 수량을 제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다만 지나치게 많은 수량을 신청하면 목적 외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1~2병 신청해 치료를 받아본 후 효과가 있으면 추가로 신청할 수 있도록 의료진이 제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좌부터) 대한뇌전증학회 신원철 재무이사(강동경희대병원), 정기영 수련교육위원장(서울대병원), 권영세 소아청소년이사(인하대병원), 김존수 홍보이사(충북대병원).
▲(좌부터) 대한뇌전증학회 신원철 재무이사(강동경희대병원), 정기영 수련교육위원장(서울대병원), 권영세 소아청소년이사(인하대병원), 김존수 홍보이사(충북대병원).

'대체치료 수단 없다' 기준 불분명

'대체치료 수단이 없다'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 '난치성'에 대한 정의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환자는 취급승인 신청 시 해당 질환 전문의가 발행한 '국내 대체치료 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의학적 소견서'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가 몇 가지 이상 치료제를 투약한 후 대체치료 수단이 없다고 판단해야 하는지, 여기에 경련을 조절하는 케톤식이도 포함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에피디올렉스 관련 임상 데이터가 많지 않고 국내에서도 처음 치료가 시작되면서 정의 정리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뇌전증학회는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면서 앞으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데 중지를 모았다. 

학회 신원철 재무이사(강동경희대병원)는 "질환 진단이 애매한 환자 또는 의학적으로 다른 치료제에 증상이 잘 조절될지라도 치료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들이 처방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 "두 가지 적응증에 해당하는 환자는 몇 가지 치료제를 몇 년 이상 치료했을 때 증상 조절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학적 소견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큰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학회 권영세 소아청소년이사(인하대병원)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새로운 치료제를 쓸 수 있다면 쓰겠다는 입장인데, 우리는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난치성에 대한 기준을 정리해야 한다. 그 기준에 따라 임상에서 어떻게 쓰일지가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회는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빨리 제시하고, 앞으로 학회 차원에서 치료제의 안전성 및 효용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드라벳·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외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나?

임상에서는 의학적 소견서가 있다면 에피디올렉스를 현재 적응증 외 다른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싶다는 요구도 있다. 

식약처는 다른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회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광진 연구관은 "현재 허용된 적응증 외 목적으로 치료를 받아보길 원한다면 대한뇌전증학회 또는 대한의사협회 자문을 받아 효능·효과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면서 "자문을 받아보고 검토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회 강훈철 학술이사(세브란스병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드라벳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외에는 치료제에 대한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없다"면서 "근거중심의학 측면에서 드라벳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외 환자에게 에피디올렉스를 처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반응 나타났다면?…의사 판단하에 치료 결정해야

에피디올렉스 치료 후 이상반응이 나타났을 때 치료를 중단해야 할지는 담당 의사의 판단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에피디올렉스 치료 후 설사, 고열, 식욕부진, 졸림 등 이상반응이 확인됐고 약 30%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중증 증상이 나타났다.

강훈철 학술이사는 "에피디올렉스 치료 후 고열이 나타난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제를 더 써볼 의향이 있다면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해열제를 병용하길 바란다"며 "치료 용량을 줄여보는 등 용법·용량을 조절하면서 가능한 치료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피디올렉스 치료 시 입원이 필요한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의료진이 인지하고 이를 환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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