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직장 내 폭력 산업재해 범주에 넣어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에 대한 폭행을 예방하려면 처벌 강화가 아니라 안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응급실 의사 폭행,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 사망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 폭행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 중이다.

해결책으로 처벌 강화가 중요한 사안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예방의학과)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폭력을 한 사람의 처벌을 세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답은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해 이 교수가 생각하는 핵심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처벌 강화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법을 강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처벌이나 벌금 등이 올랐다고 진료실 내에서 폭행하는 사람이 줄 것 같지는 않아서다. 이제라도 의료진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병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임세원 교수의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고 정부가 관련 담당자와 TF를 만들어 대책을 만들고 있는데 조금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시스템이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걸 만들자는 것이다. 의료진이 안전한 시스템이 되려면 직장 내 폭력의 정의, 폭력을 정부의 어떤 부서에서 다룰 것인가에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또 병원 경영진이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 병원 인증 평가 등이 가동하도록 해야 한다. 

- 직장 내 폭력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의가 있어야 폭력인지 아닌지 구분하고, 그에 따른 대처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폭력은 ▲단순 폭력 ▲고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동료들 사이의 폭력 ▲개인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폭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로 우리가 다루는 폭력은 고객과 동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국내에는 정의가 없지만 미국은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에서 직장 폭력을 근무 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 물리적 폭행과 폭행 위협 등 폭력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신체적 부상이 발생하지 않아도 위협, 학대, 적대, 괴롭힘, 언어폭력은 상당한 심리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잠재적으로 육체적 폭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 의료진 폭력 문제에서 시급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현장에서 폭력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다. 문제를 알아야 대책을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폭행 사건이 난 후 응급의학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이 급하게 설문 조사를 하는 실정이다.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다 보니 실체의 일부분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2002~2013년까지 발생한 심각한 직장 폭력 사건의 비율을 보면 민간 산업 평균보다 병원에서 4배 이상 높았다. 직장 내 폭력 2만 5000건의 75%가 병원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정기적인 조사나 국가 차원의 보고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병원 내 폭행을 산업안전보건청에서 다루면서, 가이드라인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가 해당 의료기관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방식이다. 정보를 주는 것이다.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짜여 있다. 경영층이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직장 내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갖도록 하고, 직원들이 이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폭력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분석하고, 위해 예방과 관리, 안전 및 보건 훈련, 기록 유지 및 사업 평가 등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각각의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폭력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병원 내 폭력 산업재해 범주에 넣어야 

- 병원 내 폭력을 산업재해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의료기관 내 폭력은 산업안전법 제2조에 따르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감정 노동자에 대한 갑질에 대한 예방 조치를 규정하는 제26조의 2(고객의 폭언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와 같이 사업주(의료기관의 장)에게 효과적인 예방 조처를 하도록 법률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제 상당수 일은 해당 의료기관이 해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법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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