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 의료기기로서 역할 인정…심장학계 "숨겨진 환자 찾아 진단율·치료율 상승 기대"
'진단 정확도' 문제도 제기…국내에서는 심전도 측정 기능 활성화 안돼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애플워치4. 사진=애플(Apple) 홈페이지 캡쳐.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애플워치4. 사진=애플(Apple) 홈페이지 캡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병원에서 사용하던 심전도기기가 손목 위에 안착했다. 

애플(Apple)사는 지난달 6일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애플워치4(Apple Watch Series 4)를 출시했다. 소비자용 전자 제품에 심전도 측정 기능이 포함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게다가 지난해 9월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 의료기기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았다.

이에 심장학계에서는 간단한 방법으로 숨겨졌던 부정맥 환자를 찾을 수 있어 부정맥 진단율과 치료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심장 전기신호 하나만 분석해 심전도 측정

병원에서 시행하는 기본적인 심전도검사는 '12유도 심전도'다. 표준사지유도 6개와 흉부유도 6개 등 총 12개 그래프를 기록해 심장 전기신호에 이상이 있는지 파악한다. 

이와 달리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애플워치4는 단 하나의 신호만 분석한다. 사용자는 애플워치4 오른쪽 상단에 있는 디지털 크라운(용두)에 손가락을 대는 간단한 방법으로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다. 

애플워치4로 심전도를 측정하면 위와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Sinus Rhythm(동리듬)'으로 표시된다면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사진=애플(Apple) 홈페이지 캡쳐.
▲애플워치4로 심전도를 측정하면 위와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Sinus Rhythm(동리듬)'으로 표시된다면 문제가 없음을 의미한다. 사진=애플(Apple) 홈페이지 캡쳐.

용두에 손가락을 접촉하면 심전도를 측정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시작되고 30초간 심전도를 측정한다. 결과에 문제가 없으면 정상을 뜻하는 '동리듬(sinus rhythm)'으로, 부정맥이 의심되면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으로 표시된다. 측정 결과는 애플 건강관리 앱에 저장되며, 진료 시 의사에게 결과를 제출할 수 있다. 다만 22세 미만에서는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애플워치4에 앞서 이미 시장에는 애플워치와 연계되는 심전도 측정 모듈(module)인 카디아밴드(Kardia Band)가 도입됐다. 

미국 의료기술 업체 얼라이브 코어(Alive Cor)가 개발한 것으로, 2017년 FDA로부터 부정맥 진단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로 승인받았다. 애플워치 본체와 카디아밴드를 연결한 뒤 팔목에 밴드를 차고 밴드에 부착된 센서에 엄지손가락을 대는 방법으로 심전도 측정이 가능하다.

애플사는 이러한 심전도 측정 기능을 애플워치4에 통합해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워치가 많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고 보급됐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부정맥 진단율 끌어올릴까?

임상에서는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애플워치4 발매가 낮은 부정맥 진단율을 높이는 긍정적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한부정맥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부정맥 질환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에 방문한 응답자는 15.4%에 불과하다. 병원을 찾지 않은 이들의 절반 이상이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60.2%)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51.5%)라고 응답했다.

일상생활에서 두근거림을 느꼈을 때 애플워치4를 통해 심전도를 측정한다면 부정맥이 증상 원인인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문제가 확인되면 병원에 내원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게다가 부정맥은 평상시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갑자기 발생하기에 병원 검사만으로 부정맥을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을 애플워치4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워치4 심전도 측정 결과와 병원 검사 결과를 함께 고려해 부정맥을 진단한다면, 숨겨진 부정맥 환자를 찾아 진단율과 치료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 정보 사이트 메드스케이프(Medscape)가 지난달 온라인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심전도 측정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애플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가 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나?'는 질문에 응답자 839명 중 46%가 '심방세동을 조기 진단해 예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가톨릭의대 노태호 교수(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는 "부정맥 초기에는 증상이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 발생했을지라도 이후 수개월간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병원 검사만으로 부정맥을 찾을 수 없다"며 "이들에게 증상이 나타나면 빨리 병원을 찾아 심전도검사를 받도록 권유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들이 병원을 내원하기란 쉽지 않다. 병원을 찾지 않아도 부정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뇌졸중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단 정확도 낮아" vs "다른 기기도 위양성 오류 있어"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기기가 도입됐지만 모든 의료진이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가 탑재한 심전도 측정 기능의 '정확도' 문제를 지적한다. FDA 승인을 받았지만 병원에서 사용하는 심전도기기보다 진단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이는 과진단 또는 과치료를 유발하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Khaldoun G.Tarakji 교수팀은 애플워치와 연동된 카디아밴드의 진단 정확도를 12유도 심전도와 비교했다(J Am Coll Cardiol 2018;71(21):2381-2388). 

심방세동 환자 100명 대상으로 진단 정확도 비교(J Am Coll Cardiol 2018;71(21):2381-2388).
▲심방세동 환자 100명 대상으로 진단 정확도 비교(J Am Coll Cardiol 2018;71(21):2381-2388).

심방세동 환자 총 100명을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 카디아밴드만으로 평가한 경우 34%가 심방세동 환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12유도 심전도 검사에 따라 의사가 진단했을 때 정확도는 87%였다. 카디아밴드만으로 심방세동으로 진단되지 않은 이들의 검사 결과를 의사가 다시 검토했을 때 100% 심방세동 환자로 분류됐다.

미국 코넬대학병원 James E. Ip 박사는 JAMA 1월 11일자에 실린 논평을 통해 "좋지 않은 심전도 검사 결과와 잘못된 심방세동 또는 빈맥 경고 신호로 잘못된 진단이 내려진다면 불필요한 의료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특히 부정맥 유병률이 낮은 인구에서 기기를 사용해 질환을 진단한다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의 심전도 검사 결과가 신뢰할만한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홀터 또는 사건기록 심전도 검사 등도 위양성(false positive)과 같은 오류가 나타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유용성도 고려하면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의 시장 도입은 임상에서 부정맥을 보는 의사들에게 희소식이라는 의견이다. 

노 교수는 "질환을 100%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의사가 병원에서 진행한 검사 결과를 보고 질환을 잘못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를 고려하면,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가 가진 유용성이 부작용보다 더 크다고 본다. 또 임상에서 부정맥 전문 의료진은 많은 환자를 봐왔기에, 웨어러블 기기 검사 결과를 보고 부정맥 환자인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뇌졸중 예방까지 이어질까?…애플·J&J 손잡고 임상 돌입

이와 함께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가 실제 뇌졸중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기기를 활용해 부정맥을 조기 진단하고 항응고요법 시작 시기를 앞당겨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개발된 기술이기에 뇌졸중 예방 관련 연구는 앞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7일 애플사는 미국 존슨앤존슨(J&J)와 손잡고 미국 내 6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애플워치4를 통해 심방세동을 얼마나 빨리 진단할 수 있는지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숨겨진 심방세동 환자를 찾고 최종적으로 뇌졸중 발생 위험을 낮추는 것이 연구 목적이다. 

노 교수는 "홀터 심전도 검사가 새롭게 개발됐을 당시에도 이를 활용해 심방세동을 조기 진단하고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었다"며 "새로운 진단법이 나오면 관련 연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애플워치4 등 웨어러블 기기로 심방세동을 조기 진단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가 틀림없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에 '의료기기'로 들어오려면 절차 까다로워

애플사는 미국에서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 기능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에 도입된 애플워치4에는 이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FDA가 애플워치4의 심전도 측정 기능을 승인했더라도 각 국가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애플워치4를 '의료기기'로 판단해야 할지 또는 일반적인 스마트폰에 탑재된 심박수, 산소포화도 측정 등과 같은 맥락으로 '개인용 건강관리제품'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애플워치4를 의료기기로 본다면 국내 도입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먼저 애플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애플워치4가 의료기기인지 여부를 검토해줄 것을 의뢰해야 한다. 식약처가 의료기기로 승인하더라도 이를 활용한 진료를 의료행위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노 교수는 "식약처에서는 기기의 안전성과 유용성을 판단해 의료기기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의료기기로서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이를 통한 진료가 의료행위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며 "이어 보건복지부 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 같은 과정이 필수적인 의료행위이기에 보험급여를 적용하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애플워치4를 포함해 새로운 의료기기도 국내에 들어온다면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몇 년이 걸린다"면서 "그러나 대부분이 이 과정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사 과정 '신중'하면서 '신속'해야

물론 새로운 의료기기가 엄격한 심사 없이 무분별하게 국내에 도입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빠르게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노 교수는 "국가기관에서 엄밀한 검토 없이 쉽게 의료기기로 인정한다면 환자에게 위해가 가고 국가 재정도 낭비할 수 있다. 엄중한 심사가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신중해야 하지만 조금 더 신속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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