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자살 또 자살 ... 인력부족이 낳은 ‘태움’ 문화
지난해 3월 발표된 정부 개선대책 무색 ... “예산 없어 실제 이뤄진 것 하나도 없다”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간호사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막고, 퇴사나 이직을 예방하려면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불행한 선택을 한 데 이어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의료원 병동에서 5년 동안 근무한 고인은 간호 행정부서로 발령 나면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태움을 암시하는 여러 글을 남겼고, 이 문제는 여전히 병원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태움은 간호사 간 괴롭힘을 지칭하는 은어로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운다는 말이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으로 태움은 공론화됐지만, 현실은 그대로인 듯 하다.
 

“내 업무도 벅찬데 신입 교육까지 하라니…”

태움은 간호사 문화라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인력 부족에서 온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실제 우리나라는 만성적으로 간호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다. 2017년 OECD Health stat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기관 활동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약 53.8%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도 부족하다. 2016년 자료에 의하면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가 OECD 평균 6.5명인데, 우리나라는 3.5명에 머물러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근무환경은 이직이나 퇴사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6년 병원간호사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 5.4년, 전체 이직률 12.4%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은 33.9%다. 숙련된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렇게 간호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간호사들은 늘 바쁜 업무에 시달리고, 이런 상황에서 신규 간호사가 배치되고 교육까지 떠맡아야 하는 입장이라 신규 간호사가 반가울 리 없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리셉터 간호사들이 자기 업무도 하고 교육도 해야 해서 힘들다. 프리셉터 간호사를 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라며 "신규 간호사가 오면 업무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어난다. 솔직히 신규 간호사가 반갑지 않다. 내 업무도 처리하고 교육도 하다 보니 태움이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간호부장은 신규 간호사를 충분히 교육하고 싶어도 인력이 없다고 호소한다.
 
그는 "병원에서 간호사 인력은 늘 부족하다. 그런데 프리셉터 간호사에게 교육만 하도록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규 간호사들이 대학에서 1000시간이란 오랜 시간의 실습을 하고 오지만 막상 현장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임상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사건도 같은 맥락이란 주장도 나온다. 5년 동안 병동에서 일했던 고인이 갑작스럽게 행정업무를 맡으면서 직무 스트레스도 컸을 텐데 새로운 직무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처우 개선돼야 인력 부족 해결…간협 “독립수가 제정 필요”

그렇다면 간호사 인력 부족의 원인은 무엇일까?
 
3교대 및 야간근무,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과중한 업무부담 등 열악한 근무환경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중소병원에 간호사들이 부족한 이유는 간호사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 대비 병원급 근무 간호사 임금 비율은 72%다. 또 의료 현장 내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임신 순번제 등 비인권적 행위도 가세한다.
 
병원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의 고민도 깊다.
 
지방에서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간호사를 충분히 고용해 환자들에게 질 높은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간호사들에게도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병원 경영이 너무 좋지 않다"며 "경영은 점점 나빠지는데, 의료인력 인건비 비중은 높아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수가'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간협 한 관계자는 "태움 문제 등 간호사 처우개선을 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며 "병원 경영진은, 의사는 행위별 수가와 입원료의 40%가 의학관리료라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간호사는 간호관리료뿐이다. 그조차 입원료 안에 숨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경영진은 간호사 확보에 관심이 덜하다"고 호소했다.
 
또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독립수가를 개발하고, 병원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개선되면 원장들도 적정 인력의 간호사를 배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전담 간호사 배치, 국공립병원으로 한정돼 아쉬워”

간호사 인력 부족으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자 복지부는 지난해 3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수가 개선과 간호사 처우 개선 연계, 권역외상센터 간호사 처우 개선, 야간근무 간호사 수당 지원, 태움 근절 등 건전한 병원 조직문화 조성 등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신규 간호사 교육체계 구축 내용이 두드러졌다.
 
신규 간호사들의 의료현장 적응을 돕고 임상활동 능력을 높이기 위한 '신규 간호사 교육·관리체계 구축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교육만 담당하는 교육전담 간호사 배치, 신규 간호사 교육 기간 3개월 이상 확보, 병동 특성 및 경력 수준을 고려한 교육 커리큘럼 보유 등이 제시됐다.
 
복지부가 제시한 내용은 장밋빛이었지만 정작 진행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