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회계 투명성과 공공성 갖춘 이사 참여 조건으로 한시적 허용 의견도
대한의료법인연합회, "그 조건으로 의료법인 운영하려는 곳 없을 것"

파산위기에 처한 제일병원 모습. 현재 그동안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환자들이 진료기록 등을 발급받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파산위기에 처한 제일병원 모습. 현재 그동안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환자들이 진료기록 등을 발급받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모두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답은 없는 막막한 상태. 의료법인 매매에 관한 얘기다. 

최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일병원이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논쟁의 주제로 떠올랐다.

현재 의료법상 의료법인의 매매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은 없지만, 민법상 법인 성립 법정주의원칙 및 소유지분 개념이 없는 비영리법인의 본질상 별도 규정이 없으면 금지된다고 돼 있다. 즉 의료법인 매매는 금지돼 있다.

그런데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장에서는 버젓이 의료법인이 매매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료법인 매매를 금지하고 있찌만 실제 매매되는 의료법인은 많다"며 "자본을 가진 사람이 이사 지위를 매매하는 방식으로 이사장을 교체하고 있다. 이때 어떤 거래가 이뤄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한계법인 위한 퇴출 구조 만들어달라"

이런 이유로 의료법인 관계자들은 오래전부터 의료법인 매매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대한의료법인연합회 이성규 회장(동군산병원 이사장)은 정부가 한계 병원이 좀비병원이 되지 않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법인병원이 그 지역에서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정부가 그걸 인정해야 한다"며 "법인 병원이 도산하면 지역에 의료공백이 생기고, 제대로 된 병원이 들어서지 않으면 의료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의료법인 매매를 허용하면, 한계 상황에 있는 병원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수월하다. 이유는 낮은 금리로 은행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인력파견 등도 해결할 수 있다"며 "의료법인 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영리화를 거론하는데 그것은 프레임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의료법인연합회가 줄기차게 매매 허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한계 의료법인 해산 및 정상화 방안연구'보고서를 작성하고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사위를 넘지 못했다. 의료법인연합회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또 법안발의 등의 과정을 밟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몇 가지 조건을 걸고 한시적으로 허용해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제일병원처럼 의료법인인 병원이 도산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병원 직원들과 지역 주민일 것이다. 부산시가 경매에 들어간 침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처럼 정부가 나서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시적이라도 의료법인 매매를 허용해 병원 직원과 지역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정부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방치만 할 게 아니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법인병원 매매는 이미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막을 수 없는 상태"라며 "경영이 어려운 비영리법인을 넘길 때 한번은 허용하고, 이후의 절차를 꼼꼼하게 챙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익성 담보하는 이사 참여 및 회계 투명성 담보로 한다면

또 "회사를 사고 파는 것처럼 매매를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익성을 담보로 하고 이를 진행하자는 것"이라며 "병원 회계 투명성과 새로운 이사장이 지역의 시민단체를 이사로 선임하는 것 등이 공익성 담보라 할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 교수의 주장을 정리하면 병원 회계 투명성과 공공성을 띤 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의료법인연합회 이성규 회장은 반대 뜻을 나타냈다. 왜 조건을 달아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그런 조건에 인수하려는 법인도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시민단체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병원 회계 투명성을 보장하고 지역사회 대표 등이 참여하는 이사회 구성이 이뤄지면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일"이라며 "의료법인 매매에 대해 좀 더 공부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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