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대웅·보령·SK케미칼 공동 또는 각자대표 체제 구축
경영-연구 나눠 각자 전문성 및 효율성 증대 장점 VS 신속성 떨어지는 단점도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국내 제약업계가 경영과 연구개발(R&D) 분야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이른바 '투톱'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대표가 혼자 개발, 생산, 마케팅, 경영 등 전 부문을 총괄하는 게 아닌, 보다 전문적인 인재를 대표로 배치, 해당 업무를 전문적으로 관할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특히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오너일가의 단독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전문경영인과 연구개발 담당이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는 체제로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앞서가는 한미·대웅...'공동대표' 체제 확립 

한미약품은 2017년부터 공동대표 체제를 운영 중이다. 왼쪽부터 연구개발부문 권세창 대표, 경영관리 부문 우종수 대표.
한미약품은 2017년부터 공동대표 체제를 운영 중이다. 왼쪽부터 연구개발부문 권세창 대표, 경영관리 부문 우종수 대표.

한미약품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경영관리 부문은 우종수 대표가, 연구개발(R&D) 분은 권세창 대표가 '쌍두마차'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R&D 부문 책임자인 권세창 대표는 1996년 한미약품 연구센터 이사로 합류해 상무, 전무, 부사장을 역임했다. 

연구원 출신인 권 대표는 한미약품의 독자적인 플랫폼인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여러 희귀질환 파이프라인을 추가했다. 

대표적으로 선천성 고인슐린증 치료제로 개발 중인 HM15136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HM4339, 그리고 경구용 파클리탁셀 오락솔이 대표적이다. 

1990년 입사해 팔탄공장 공장장과 부사장을 지낸 경영관리 책임자 우종수 대표는 2017년 3월 대표에 취임한 이후 영업부를 중심으로 직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 조직 운영의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웅제약도 공동대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재춘 대표, 전승호 대표.
대웅제약도 공동대표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재춘 대표, 전승호 대표.

대웅제약은 지난해 12년 만에 처음으로 대표이사를 전격 교체했다. 

윤재승 회장의 갑질 논란이 퍼지면서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 공동 대표에 윤재춘 사장과 전승호 사장을 선임한 것이다. 

윤재춘 대표는 과거 대웅 대표를 역임하는 등 그동안 쌓아온 경영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대웅제약의 경영관리 부문을 맞고 있다. 

특히 국내 업계에서는 전승호 대표의 선임을 파격 그 자체로 보고 있다. 

1975년생으로 올해 45세인 전 대표는 젊은 피이지만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전 대표는 글로벌전략팀장을 역임하며 인도네시아 현지업체와 조인트벤처 형태로 바이오의약품 공장 건설 계약을 따냈는데, 현재 이 공장은 2017년부터 적혈구 생성인자 제제 에포디온을 발매하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마케팅TF팀장을 거쳐 글로벌사업본부를 총괄하던 당시에는 해외수출액을 급증시켰고, 대웅제약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의 해외수출도 그의 작품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전 대표의 선임은 나이와 호봉에 관계없이 성과를 우선시하는 인사 정책의 결과물"이라며 "이는 직원 성장을 요구하는 회사의 경영 방침과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쫓아가는 보령·SK케미칼 "강점 살린다"

이런 가운데 다른 국내사들도 투톱 체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보령제약은 처음으로 공동대표 체제를 택했다. 왼쪽부터 경영부문 안재현 대표, 연구개발 부문 이삼수 대표.
보령제약은 처음으로 공동대표 체제를 택했다. 왼쪽부터 경영부문 안재현 대표, 연구개발 부문 이삼수 대표.

먼저 보령제약은 최근 경영대표와 연구·생산 부문 대표에 각각 안재현 사내이사와 이삼수 생산본부장을 선임했다. 

경영과 연구 부문의 대표를 따로 선임하는 것은 보령제약 역사상 처음으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안재현 경영부문 대표는 제일모직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뒤 2012년 보령제약에 입사한 후 전략기획실장과 보령홀딩스 대표를 맡았다. 

이삼수 연구 부문 대표는 LG화학 생산·품질팀장, CJ 제약사업부문 cGMP 건설팀장, 셀트리온제약 진천·오창공장장 등을 역임했다. 

두 대표는 각자 회사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생산단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등의 과제를 맡게 됐다. 

또 보령제약의 간판 제품인 카나브 패밀리의 글로벌 진출과 함께 미국과 유럽 등 핵심 시장 진출을 위한 청사진도 그려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SK케미칼도 전광현 대표를 제약사업을 총괄하는 라이프사이언비즈 사장으로 승진, 백신 사업을 담당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안재용 대표와 합을 맞춘다.
SK케미칼도 전광현 대표를 제약사업을 총괄하는 라이프사이언비즈 사장으로 승진, 백신 사업을 담당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안재용 대표와 합을 맞춘다.

SK케미칼도 지난해 12월 전광현·안재용 공동대표 체제에 돌입했다. 

전광현 대표는 제약사업 부문 대표를 맡아 회사의 의약품 사업을 총괄하는 라이프사이언스비즈를 이끌게 된다. 

이에 지난해 물적 분할을 통해 출범한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를 맡아 왔던 안재용 대표와 합을 맞추게 됐다. 

전광현 사장은 라이프사이언스비즈의 주요 성장동력인 전문의약품 중심의 사업 성장과 내실 강화를 통해 회사의 경쟁력을 제고해 제약 사업 부문의 제2의 도약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광현 대표가 라이프사이언스비즈를 맡게 된 만큼 SK케미칼이 백신사업에 이어 합성의약품 사업도 강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과 연구·생산을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은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성과를 위한 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며 “제약사들이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기업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현재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투톱체제는 장점만?..."신속도 떨어지는 단점도"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경영체제에도 장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경영과 연구개발을 나눔으로써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주장과 오너가의 입김이 센 국내 제약업계의 특성상 권한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A 국내사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내 제약산업이 신약개발에 집중하다 보니 경영 부문과 연구개발 부문으로 나눠 각자 대표 혹은 공동대표 체제를 많이 취하고 있다"며 "이 같은 경영체제를 도입할 경우 각자의 전문 분야를 담당하는 만큼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전문경영인과 R&D 책임자가 공동대표를 맡는 추세다.

전문경영인은 경영전략과 기술이전 계약을 등을 담당하며, R&D 책임자는 오롯이 연구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제약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며 회계기준이 강화되고 있고, 연구개발도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되는 상황"이라며 "한국 제약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각자 또는 공동대표 체제로의 변화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 같은 경영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B 국내사 관계자는 "경영과 연구개발을 분리해 운영하는 체제는 오너의 입김이 강한 국내 제약업계의 특성 때문에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필연적인 한계를 불러온다"며 "오너와 경영인 사이에 의견 차이가 존재할 경우 이를 결정하기 위한 신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경영체제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경영인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게 필수"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