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많은 과 기피 심화…방어진료 뻔해"

의료인 입증책임 "형평원칙" 어긋나
임의적 조정전치주의 조정기구 실효성 떨어져
무과실의료보상 제외 의료현장 특성 무시


 의료사고예방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되지 않음으로써 일단 의료계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10월 12일까지 상임위에서 의결할 수 있도록 법안소위에 내용을 수정토록 되돌린 것이어서 20여년간 논의와 상정이 거듭됐던 이 법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후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의료계에서는 이기우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의료사고 과실여부 입증을 의료인이 책임지도록 한 것을 비롯 시민단체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어, 의료계에 지나치게 불리하게 돼 있다며 의료단체와 병원단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성명서와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법안의 폐기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의협·치의협·한의사협·조산협·간호조무사협·의료기사단체총연합회(공동서명), 병협·국립대병원장회의·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전국중소병원협의회·대한노인병원협의회·대한정신병원협의회 등으로 의료계 중심 단체들이다.

 반면 의료사고피해구제법제정을 위한 시민연대는 재심의 반대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계의 로비에 흔들리지 말고 법안을 원안대로 의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로 의·병협 등이 주장하는 첫번째는 단연 의료인에게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물은 것. 환자가 생명·신체·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경우 의료인이 무과실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지도록 한 이 법안은 과실이 상대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자신에게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입증책임을 법률로 명시할 경우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자연사와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경우, 환자는 문제만 제기하면 되고, 의료인은 결과에 따른 모든 과정에 대해 과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사법상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등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최선의 진료를 하는데 이 법안은 응급환자에 대한 방어진료, 진료거부 등 불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는 격이라는 것.

 따라서 이 내용을 법에 명시할 것이 아니라 의료분쟁 사안이 여러 유형을 띠고 있는 만큼 법관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반적 입증책임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특히 이 법안은 지금도 의료사고 위험률이 높아 지원자가 격감하고 있는 외과·산부인과 계열 등에 대한 전공의들의 기피현상을 더욱 부추겨 국가의 의료체계마저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택한 것도 반대했다. 평균적으로 6.3년 걸리는 의료소송에 대해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한 것은 "조정기구"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 법원보다 더 신속하고 전문적인 분쟁 해결에는 필요적 조정전치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무과실 의료보상을 법안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국가가 부담하는 기금 마련에 난색을 표하는 경제부처 입장과 의료현장의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무조건 의료인이 부담토록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편협한 사고가 받아들여진 결과라는 것. 인간이 장난감 로봇이 아닌 이상, 각종 예기치 못했던 사항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법에서 제외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책임보험 의무가입과 종합보험가입 등의 규정은, 가벼운 과실에 대해 형사처벌특례를 부여한다고 하면서 환자측과 합의를 요건으로 한 결국 의료분쟁의 해결을 합의보상금 극대화를 위한 제도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의료계는 보험가입 의료인의 과실로 인한 의료사고의 경우 공소권 제한과 형을 감면하는 필요적 감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법안은 20년이 넘도록 제정되지 않았다. 그만큼 복잡미묘하고 단순하게 해결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창진 복지부차관도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이같은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고 반대입장을 밝혔었다.

 현재의 안대로 법이 통과된다면 의료인들이 소신진료를 하지 못하고 환자와의 불신도 심화, 규격·방어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특히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는 환자들이 "아니면 말고" 식의 소송도 늘어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국민과 의료인들이 상생하는 합리적인 법안의 제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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