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인생 화폭으로 대변한






























"잠자는 큐피드"(1608) 피렌체, 피티 박물관


소외계층 주로 그려 인간의 나약함 묘사

세밀한 묘사 사실주의 교과서

"잠자는 큐피드" 작품서 류머티즘 짐작


 신성한 것을 신성하게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온갖 나쁜 짓과 범행을 다 하면서 신성한 것으로 잣대를 역전시켜 들어 맞춘다는 것은 즉 상반되는 것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감각과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인데 카라바조는 이를 당연한 것처럼 해냈다.

 1606년 5월 28일, 그의 생애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돈내기 공놀이를 하다가 돈을 잃게 되자 싸움으로 번져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상대를 사정없이 찔렀다.

칼을 맞은 친구 라누초 토마소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는 법정에 회부되었는데 확실히 살인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일종의 돌발사고로 성격 때문에 저지른 것이니 은사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심의가 길어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도망쳐 로마를 탈출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나폴리에 머물다가 후에는 말타 섬으로 가는 등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화상을 특별히 그리지는 않았는데 그의 초상화는 화가 레오니(Ottavio Leoni 1571~1610)가 그린 것 하나로 아마도 이 그림이 카라바조의 생김새와 성격을 그대로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혈질적 성격이 부리부리하고 빛을 토하는 듯한 눈에서 엿보이고, 커다란 코와 입 그리고 턱과 콧수염은 일단 달아오르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몰두해 버리는 집념성을 나타내고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평론가들은 자연주의자의 대변인이라 평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린 인물은 아프거나, 뚱뚱하거나, 수척하거나, 더럽거나, 추하거나 아니면 약한 사람들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행인이나, 술꾼들을 대상으로 병들고 추한 것, 더러운 것, 결함이 있는 것 등 고전주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지만 작품의 좋은 소재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술꾼, 점쟁이, 사기꾼, 카드놀이꾼, 매춘부, 불량소년, 보헤미안 병사, 동성애자, 늙은 피부나 더러운 발바닥, 때가 낀 손톱이나 발가락, 엉덩이 등과 병든 환자의 모습이 여과 없이 강조됐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그림 속 주인공 얼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어 자기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해 그 당시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

초기 작품 "병든 바쿠스"(1593~94)에서 바쿠스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데 마치 병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표현됐지만 머리에는 젊음의 상징인 관을 씌워 평상시 그리던 불사(不死)의 관을 쓴 젊은 시인으로 변모시켰다.

 병든 환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상처 받았을 때의 표정을 마치 실제 장면을 보는 듯이 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 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1593~94)이라는 작품으로 왼쪽에 놓여 있는 꽃병은 꽃 위에 맺힌 이슬과 꽃병의 유리 굴곡에 의한 실내 공간의 반사까지 정밀하게 담고 있으며 도마뱀에 물리는 순간 가운데 손가락이 움츠러든다.

두려움에 놀라 커진 동공, 벌어진 입술, 움츠린 어깨가 불안에 떨고 있다. 도마뱀이 손가락을 쉽게 물 수 있었던 것은 장미, 체리 등이 계단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밀한 사실묘사는 후대 사실주의 화가들의 절대적 참고가 됐다.

 그의 병적을 그린 작품으로는 "잠자는 큐피드"(1608)가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참으로 말이 많다.

원래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조각으로 남겼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17세기 이후에 실종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기록에 의하면 조각품은 5~7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메디치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과 매우 흡사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실종됐지만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은 남아 카라바조의 회화작품과 매우 흡사했다.

그런데 그가 왜 하필 이 작품을 택했을까?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당시 한창 이름을 떨치던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자기의 회화를 경쟁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림 주문자는 프란체스코 델란텔라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명성이 높았던 시절에 제작한 "잠자는 큐피드"와 신예작가 카라바조의 회화작품이 함께 전시되리란 것을 기대했으며 카라바조 역시 사전에 자신의 그림이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혹은 그 조각품과 흡사한 헬레니즘 양식의 조각품이 함께 전시될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의 명성에 도전하고 싶은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조각과 회화의 차이와 우열에 대한 논의는 미켈란젤로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부터 널리 논의되던 논쟁거리였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을 통해 회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면서 회화와 조각의 우위논쟁을 종식시키려 했던 주문자인 델란텔라의 의도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화적 존재의 회화적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섬세한 조각미까지 가미된 인상을 풍긴다.

 이 그림을 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우선 잔등에는 날개가 있어 이를 베게삼아 목은 휘어 있어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왼손은 활을 잡고 있어 그림 속 어린이가 사랑의 신 큐피드(에로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으나 이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같이 사랑스러운 큐피드가 아니라 매우 추하게 보이는 큐피드이다. 얼굴은 부종으로 부어있고, 피부는 부자연스러운 황백색, 손끝이나 입술 그리고 귀에는 청색증이 와 있다. 눈은 감고 있으나 입은 반개되어 있어 중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왼손의 부자연스런 굴곡과 팔꿈치가 변형되어 있으며 전신의 관절은 마디마다 부어 있어 전신성 관절염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류마티즘의 경우는 심부전, 호흡부전, 신부전 등이 동반되기 때문에 그림에서 눈에 띄는 소견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렇듯 그는 온갖 범죄를 저질러 도망자 신세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도 그림은 계속 그려 그의 화풍은 즉각적으로 큰 반응을 일으켜 카라바지즘(Caravagism)을 낳았다.

카라바지즘이란 그가 로마에 머물렀던 외국인 화가들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된 카라바조의 독득한 화풍을 말한다.

카라바지즘의 열기는 그가 죽어서도 식지 않아 20여년이 지나서야 그 기운이 사라졌지만, 나폴리에서는 한 세기가 다 가도록 그 여파가 남아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리베라, 라 투르 등과 같은 거장들의 화풍도 그의 영향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왼쪽. "병든 바쿠스"(1593~94)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

중간.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1593~94) 런던, 국립 미술관

오른쪽. 그림 2 확대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