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고통 끝에 황홀경 경험
엔도르핀등 진통물질 분비때문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1642)는 볼로냐파의 중심 화가로서 세련되고 명쾌한 그림을 많이 그려 유명하다. 그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주인공인 세바스티아누스(San Sebastianus)는 전설에 의하면 3세기경 당시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근위대 장교였는데 은밀히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신앙이 발각된 동료 두 사람이 처형당하게 되자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나섰다가 그 역시 처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화살 형(刑)에 처하게 되어 사수들이 쏜 화살이 집중적으로 그의 몸에 박혔다. 형 집행관은 죽은 세바스티아누스의 시체를 내다 버렸다. 그러나 신앙심이 강한 이레네라는 여인이 그 시체를 가져가 화살을 뽑고 잘 간호해 세바스티아누스는 살아났다. 그는 다시 황제 앞에 나가 더욱 굳어진 자신의 신앙을 천명했다. 죽은 줄로 알았던 그의 출현에 황제는 몹시 당황했다.
 레니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제네바, 그림 1)`의 화면은 처형대 위에 손발이 묶인 채 처형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세바스티아누스의 몸에는 3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성인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 듯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통 이렇게 몸에 화살이 박히면 고통으로 신음해야 하는데 오히려 황홀경에 빠진 듯 한 눈으로 지금의 고통을 수용하고 있다.
 이는 현세를 초월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지닌 성인의 표현이며 순교자 자신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즉 그는 직감적으로 신을 인식한 지복감(至福感)의 정신 상태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화살이 몸에 박힌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화살이 치명상을 입힐만한 중요 장기나 부위에 맞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그는 신의 섭리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살을 맞고서도 살아난 성인의 이미지를 사람들은 방패와 같이 생각했다. 이때가 바로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던 때였으며 사람들은 죽음의 신이 쏜 화살에 맞으면 이런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생각햇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같은 성인의 방패막이가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즉 그를 경모하면 자기도 전염병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4세기경부터 시작되어 14세기 이후에는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흑사병이 대유행하여 휩쓸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앞 다투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그렸다.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에서 화살이 3개씩이나 꽂혔는데도 죽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오히려 황홀경에 빠졌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납득이 간다.
 즉, 우리 몸에 화살과 같은 외력에 의해서 손상을 받으면 조직이 파괴 되면서 아픔을 일으키는 발통물질(發痛物質)이 생겨 이것이 피부나 점막 등의 지각신경의 말단을 자극하여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발통물질로는 브래디키닌(bradykinin), 칼리닌(kallidin),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세로토닌(serotonin), 히스타민(histamine),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등에 의해서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픔이 극도에 달하거나 오래 지속되면 우리 몸에는 이에 대항하여 아픔을 감소하거나 해소시키는 화학물질 즉 진통(鎭痛)물질이 분비된다. 많은 진통물질 가운데 여기서는 `내성(內性) 모르핀 양(樣) 물질`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로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은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으로 엔도르핀(endorphine)은 생체 내를 의미하는 endo 와 모르핀을 의미하는 morphine으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며, 엔케팔린은 내부를 의미하는 en과 머리를 의미하는 kephalo로 이루어진 합성어 enkephalin이 된 것이다.
 엔도르핀은 뇌나 신경계의 정보전달을 억제하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여 통증을 전달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에 통증이 완화 또는 해소하는 것으로 작용하게 되며 감정이나 기억에도 영향을 미치고 호르몬 조절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극심한 아픔에 노출되거나 아픔이 지속될 때는 우리 몸의 방어기능의 하나로서 엔도르핀 등이 분비되면 황홀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몸의 진통물질은 비단 육체적인 고통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자극이나 충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인데 이제 그러했던 예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는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수녀 테레사가 경험한 환시(幻視)체험을 소재로 `성 테레사의 엑스터시`(1647~52, 산타마리아 데라 빅토리아 성당 코르나루 예배당, 그림 2)라는 조각 작품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이 작품이 바로크 시대의 엑스터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힐 것으로 보인다.
 테레사 수녀가 1588년에 펴낸 자서전에 그녀의 체험을 기술 하였는데 어딘가 독특한 데가 있다.
 앞의 그림과 대조할 때 성인은 믿음으로 황홀경에 도달 했을 때 눈을 뜨고 있는데 성녀는 눈을 감고 있다. 어쨌든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신이었고, 그 사랑은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도 이미 그녀의 이 영적인 열정이 성욕의 승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베르니니는 테레사의 에로티시즘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신성을 체험할 때의 기쁨, 그것은 엑스터시이며 오르가즘 같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조각가도 그렇게 표현하였다. 즉 그녀는 지금 방금 천국에서 돌아온 듯 한 황홀경에 빠져 있는 표정이다. 최고의 고통은 초고의 쾌락과 일맥상통 한다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바로크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에로티시즘이다.
 즉 사디즘과 마조히즘, 고통과 엑스터시, 그리고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야하게 교차하는 것으로 표현 되는데 그것에는 앞서 기술한바와 같은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의 왼쪽 바로 옆으로 완전한 육체적 형상을 갖추고 나타난 천사를 보았는데, 가끔 내 환상 속에 나타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천사는 좀 작은 편이었는데, 매우 잘생겼으며 그 얼굴은 밝은 광체를 띠고 있었다. 신의 사랑의 불길로 얼굴에 조명을 받는 그런 천사들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천사의 손에는 황금으로 된 기다란 화살이 들려 있었는데, 그 끝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 느낌에 그가 그것으로 내 심장을 여러 번 찌른 것 같았는데, 마치 강철이 나의 가장 은밀한 곳을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가 그 것을 다시 뺐을 때, 내 심장이 빠져 나가는 듯 한 느낌을 받았고, 온 몸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흘러넘쳤다. 그 통증은 너무나 커 비명을 지를 정도였지만, 동시에 거기엔 너무나도 무한한 달콤함이 있었기에, 그 통증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고통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육체에까지 작용을 했다."
테레사 수녀가 1588년에 펴낸 자서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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