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 표

보험위원회 특별위원
이원표내과의원


산정기준 모호하고 불합리
투여자원 따른 진찰료 세분화 필요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정책의 문제점의 본질은 낮은 부담, 낮은 진료 수준, 낮은 보상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면서도 의료에 대한 사회적 및 법률적 기대수준은 매우 높으며 이 사이의 괴리를 의료인의 자질과 품성의 문제로 호도하는 풍조가 문제의 적절한 개선을 더욱 어렵게 한다.

 국민 또는 정부가 건강보험에 대한 비용부담을 높일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급여수준과 범위의 제한은 필연적인 면이 있으나 현재의 정책방향은 불합리한 점이 많다. 원가의 80% 정도인 수가와 좁은 허용 범위는 현대의학의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공급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제한된 재원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정책에도 문제점이 많다. 보장성 강화라는 명분으로 식대나 중증 암진료 부분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비용효과가 높은 질환의 진료를 보장해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골절 예방을 위한 골다공증의 예방 및 치료, 또는 순환기질환 예방을 위한 고지혈증 치료에 대한 불합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한이나 심사기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재정난으로 급여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의학적으로 타당하고 환자가 원하는 진료는 가능해야 한다. 이런 진료와 이에 따른 임의비급여가 불법 또는 사기로 처벌 받는 정책은 국민 기본권의 침해이며 공권력의 횡포다.

 불합리한 심사기준도 많지만 기준의 모호함과 급여인정 여부의 불확실성이 의사의 적절하고 합법적인 진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최근 모병원의 조혈모세포 이식에 관련된 물의도 이런 정책 오류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입증되고, 국내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약제를 식약청의 허가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제한하는 정책도 문제이다. 식약청의 허가사항은 대표적인 효과, 효능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의학적으로 타당한 의사의 처방은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급여에 포함시키지 못한다면, 최소한 지금처럼 처방 자체가 불법인 일은 없어야 한다.

 일회용 재료를 반복 사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때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지만 보험급여로는 반복 사용을 전제로 재료대의 일부만 보상해주고, 문제가 불거지면 의료계로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 또한 개선이 절박한 문제이다.

 내과 행위수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진찰료, 협의진찰료 등을 포함한 기본진료료로 낮은 수가와 불합리하고 모호한 기준으로 급여 정책의 모순과 왜곡이 제일 심한 부분이다.

 우선 진찰료의 경우, 현재의 초재진 구분과 복잡한 산정기준은 투여된 노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다. 얼굴만 보는 정도의 진찰이 초진이 되고, 다수의 질환과 합병증을 장시간 진찰해도 재진이 되는 불합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동안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감기로 내원한 이전의 당뇨환자가 감기진료만 받으면 초진이고, 당뇨진료까지 추가되면 재진이 되는 황당한 경우가 수시로 일어난다.

 합리적인 보상을 위해서는 소요시간, 질병의 중증도, 위험도, 진찰 수준 등 투여된 자원에 따른 진찰료의 세분화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당장의 개선이 어렵다면, 단기적으로는 초재진을 통합하거나 기준을 단일화해서 갈등과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분화된 현대의학에서 협의진찰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협의진찰이 요구되는 환자는 질환이 복잡하고 중증인 경우가 많아 보통의 진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도 현재의 협의진찰료는 거론하기가 낯뜨거울 정도다.

 게다가 월 1회만 인정하고, 실제로는 이미 확립된 분과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산정기준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부족한 재원이라면 필수적이고 비용효과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적정수가로 적정진료를 유도하고 나머지의 의학적으로 타당한 진료는 의사의 전문성과 환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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