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여의사들 김승수와 함께 졸업"
















이 경 록 한독의학박물관 관장















김승수(金承洙)의 1918년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졸업증서.

 
현재 한독의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1회 졸업생 중 한명인 김승수(金承洙)의 1918년 졸업증서로 가로 54cm × 세로 38cm이다.

한말의 대한의원 부속의학교는 한일합방과 함께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로 개칭되었으며 1916년 4월 20일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전문학교로 승격된 이후에도 4년간의 수업연한이나 교과목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는데,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유일한 관립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이 졸업증서에는 김승수가 이수한 교과목과 강사명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당시 대표적인 사립 의학교육기관이었던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의 경우 진급증서에는 교과목과 강사명을 나열하였지만 졸업증서에는 이수한다는 사실만을 한글과 영어로 간단히 적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졸업증서도 1930년대에는 교과목과 강사명이 사라지고 졸업사실만을 명기하는 단순한 형식으로 바뀌게 된다.

 김승수를 가르친 교수진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수신(修身), 외과, 위생학을 담당한 하가 에이지로(芳賀榮次郞)는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장이자 당대의 대표적인 의학자였으며, 해부학을 가르친 구보 다케시(久保武)는 조선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하는데 앞장선 인물로 유명했다.

 특히 의화학을 맡은 사이또 고죠(佐藤剛藏)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승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총독부의원 의육과장 출신으로 나중에 교장이 되었다. 그는 한말 일제하의 의학 교육을 다룬 "조선의육사"(朝鮮醫育史)를 집필할 정도로 일본 의학의 이식을 찬양한 어용학자였다.

 서울대 동창회 명부에서 191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생은 44명인데 이 졸업증서는 제2호로 되어있다. 이 자료를 기증한 후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승수의 졸업성적이 2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김승수와 함께 졸업한 안수경(安壽敬), 김해지(金海志), 김영흥(金英興)이 국내에서 의사면허를 받은 최초의 여성들이라는 점은 특이할 만하다. 이들은 정식 학생이 아닌 청강생이었지만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부여 받았다.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하면서 일본인이 입학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인은 1920년부터 졸업하였다(1920년 졸업생의 경우에 한국인 27명 일본인 23명).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는 교육기간을 근거로 한 민족적인 차별도 존재하였다.

즉 일본의 5년제 중학교를 졸업한 일본인 학생은 일본에서도 개업할 수 있는 내무성 의사면허증을 수여받았지만 조선의 4년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조선인 학생은 조선에서만 개업할 수 있는 한지(限地)면허증을 수여받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졸업생들에게 권장된 진로는 심오한 의학 연구가 아니라 당장 이용될 수 있는 전문기능의 습득을 통한 개업이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의 교수 대부분은 총독부의원 의사를 겸직시켜 발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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