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피부미용 대세일지라도… "주치의"로 다시 서리라















도 병 욱
도병욱가정의학과의원장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


 "가정의는 연령 및 성별에 관계없이 환자를 전인적, 포괄적,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가족주치의"라는 가정의학과의사에 관한 교과서적 정의는 내가 의과대학 학생시절 무한한 감동을 준 문장이다.

 현대의학이 전문화, 세분화되면서 질병은 존재하되 사람은 온데간데 없는 의료, 사람은 하나인데 질병으로 사람을 갈갈이 나뉘어 진료하는 의료현실에서 전인적인 의사-환자관계의 회복을 천명하는 이 선언은 내가 가정의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후 나는 가정의학과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서울 북쪽 한편에 조그마한 개인의원을 차려서 진료를 한지 12년째 접어들고 있다.

 전공의시절 전인적인 의사-환자관계를 위해 전문지식 연마 뿐만 아니라 15분간의 환자 면담을 통해 그 환자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알아내고 질병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환자면담술 또한 매우 강조하며 배웠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환자가 가장 선호하는 의사는 환자의 말을 귀기울여 청취하고 설명을 잘 해주는 의사라는 결과를 확인이라도 해야 할 태세로 진료에 임해 왔었다.

그래서 개원초기에는 환자 한명 진료하는데 30분 이상을 할애하기도 하고 진료실에서 상담을 통해 질병을 치료한 사례도 흔히 있었다.

물론 지금은 환자의 말이 길어지면 중간에 끊고 곧바로 처방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너무나 쉽게 정신과로 의뢰를 해버리기가 일쑤이다.

대기환자들의 불평을 먼저 생각하고 환자에게서 애써 질병을 떼어내 치료해서 다시 환자에게 붙여서 돌려보내려고만 한다.

 내가 진료하는 동네는 아주 오래된 주택가로 한집에 3대가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최근 들어 고령화가 가속화되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 등 한 가족이 우리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는 가족주치의이다.

가정의는 가계도를 바탕으로 가족의 역학관계속에서 환자의 질병과의 연관성을 밝혀내기 위해 가족에 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내의 문제에 관해서는 오히려 관심을 의도적으로 두지 않는다.

환자들 사이의 가족관계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해 민망한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이렇듯 갈수록 학창시절 생각하고 꿈꿔왔던 가정의의 교과서적 정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의 진료 행태는 자꾸만 축소되고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되어 간다.

 "주치의"란 개념보다는 당장의 증상에만 관심갖는 일회적인 치료의가 되려고 한다.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전인적인 인간으로서의 환자가 아니라 질병의 소유자로서의 환자로만 보려고 한다. 물론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히포크라테스적인 의사가 되어야한다는 당위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진료현실이 너무나 여의치 않다.

 현실은 환자의 개별적 특성에 맞는 진료보다는 획일적이고 보다 경제적인 치료행위만을 하도록 강요한다.

환자의 특성에 맞게 주치의의 소중한 판단에 따라 처방한 약제는 여지없이 원외처방약제비환수라는 명목으로 나의 뒷통수를 두들긴다.

 나름대로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나의 진료지식에 관해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평가의 잣대를 대고 칭찬과 채찍을 반복하고 또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원장님 지금까지는 정말 잘 해오셨어요. 그런데 지난달에는 왜이리 약제비 비율이 높죠? 방사선 검사를 초진에 너무 많이 하시네요. 지금까진 정말 잘해오셨는데 이러시면 정밀심사 들어갈 수 있으니 이번달에는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약제 중에는 이런 이런 약이 최고가로 많이 처방하셨네요. 이런 약제를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처방률이 높다는 거에요. 그럼 정밀심사 대상이 된다는 거에요." 나는 길들여지고 있다.

 나는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에서 기획이사로 활동하며 1998년도부터 주치의시범사업을 주도하고 "주치의"라는 개념을 정착시켜보려고 노력해 왔다.

당시 정부에서는 "단골의사제도"를 들고 나와 의료계와 부딪혔다. 그때 "주치의"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서 엄청난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았다. 사회주의의료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주치의"란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값싼 노동력일 따름이다.

 "주치의"는 담당된 환자들만 진료하고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 충실한 공무원일 따름인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관리의료라는 기치하에 "주치의"는 민간보험의 고용의사가 되기도 했었다.

"주치의"란 단어는 이렇듯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야누스적인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보아 왔듯이 동전의 양면 중 한쪽면은 이미 덮혀진지 오래이다.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ystem)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이미 그 비효율성으로 유명해진지 오래다.

 미국에서도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의 고용의사 체제가 1990년대 까지만 해도 50%가 넘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5% 이하로 줄어들고 개인의사나 의사단체가 민간보험과 계약하는 PPO(Preferred Provider"s Organization)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의 다원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대세를 의료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좀더 전인적인 의사-환자관계의 주치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큰 흐름들에서 주치의네트워크의 역할은 지대하다. 이러한 변화들을 주도하고 정립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도 민간보험도 아닌 주치의네트워크가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가 바로서고 의료의 중심에 의사-환자관계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다양한 수준의 수직적, 수평적 네트워크를 이룬 의사단체가 민간보험 및 국가의 의료정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외적인 경영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MSO(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에 대한 관심 또한 엄청난 자본의 힘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의사네트워크의 강화에 있다.

또한 과거 사회주의적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에서도 최근에 정부와 의사단체가 서로 양보하여 다양성과 자율성을 담보하는 만성질환자 중심의 새로운 주치의제도인 선호의사제도에 합의를 하고 이의 정착에 힘을 함께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에서는 그동안 진행해왔던 "주치의시범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금년부터 "홈닥터네트워크" 사업를 대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홈닥터네트워크" 사업은 환자진료에 있어 주치의의 이상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특히 만성질환자의 주치의관리를 실현할 수 있는 온라인 도구를 탑재하여 진정한 주치의로서 의사-환자관계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이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피부미용, 비만 등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이 대세라 하더라도 지금 주치의의 모습으로 다시 서야 한다.

 2000년 의료대란이 있던 시기에 우리 의사들은 "마음 편히 환자진료에만 전념하는 의사로 살고 싶다"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었다. 이제 길들여짐을 거부하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민초의사들의 힘든 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메디칼업저버의 창간 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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