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동 여사·로제타 홀 있었다


 지난 10일 연세대의료원은 "광혜원·제중원 개원 122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최근 서울대병원의 제중원 역사 편입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어 연세의료원이 122주년 기념식 명칭에 광혜원과 제중원을 포함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의학사에 있어 역사적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는 해당 의료기관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당위적인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역사적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내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국내 의학사 발전을 모색하는 진실된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올해 초 의사면허 국가시험을 합격한 새내기 의사는 총 3305명이다. 의협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중 여성은 1193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36.1%이며, 2004년 27.7%, 2005년 31.9%, 2006년 37.2%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한국여자의사회가 발표한 여자의사 수는 2005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의협에 신고를 필한 의사 69,097명 중 18.9%인 13,083명이다.

 1만 3천여명의 여자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나서기까지, 우리나라 여의사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가장 큰 특징은 대한제국시절 소수의 여의사들이 선교사들의 의료선교활동 일환으로 정식 의학교육을 받았다는 점과 미국, 일본 등에서 유학을 했다는 점, 그리고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주로 산부인과 소아과 진료를 담당했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국내 최초의 여의사는 지난 2006년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 헌정된 김점동(박에스터 1877~1910) 여사이다.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이자 한국여성과학자 1호로 평가받으며,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졸업, 평양 광혜여의원에서의 진료활동, 이화여대부속병원 전신인 보구여관에서의 진료 등으로 많은 활동을 펼쳤다.

33세라는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10여년간 3천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던 최초의 여의사였다. 김점동 여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로제타 홀(1865~1951) 여사이다.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을 따라 의료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건너온 그녀는 평양 기홀병원과 광혜여의원을 개원, 어린이 등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이화여대부속병원인 보구여관과, 서울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고려대의과대학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사진 1>.

















▲ 사진 1. 평양 광혜여의원(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로제타 홀 여사)

 특히 홀 여사는 1985년 김점동 여사의 미국 유학을 적극 후원하고 이후 그녀와 함께 많은 진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외에 춘원 이광수의 부인으로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 1920년 영혜의원을 설립한 허영숙, 현덕신, 유영준, 김명석 등이 여의사로 이름을 남겼다.

지난해 8월 한국의사 100주년위원회는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1만여명의 독립운동가 중 3명의 여의사를 발굴해 발표하기도 했다<본지 349호>. 동경여자의학교를 졸업한 황애시덕(1892~1971)과 경성의전을 졸업한 고수선(1898~1989), 최정숙(1902~1977) 등이 그들이다.

 대한제국과 일제시대 국내에서 배출된 의과대학졸업생은 누구였을까. 홀 여사가 이화학당 졸업생에게 의학교육을 실시했다는 평가와 1928년 경성여자의학강습소 설립 이후라는 의견도 있어 아직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다<사진 2>.











사진 2. 초창기 한국여자의학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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