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공격" 면역세포에 사명줘라


공격회피 특이항원 다단계 생존전략 이겨내야

면역체계, 암세포 인식·공격 능력 갖춰

 암치료 백신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체가 특이 항원(antigen)에 저항하는 기전과 암발생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인체는 외부침입 또는 내부에서 발생한 비정상 물질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면역체계(immune system)다.

 체내에서 면역세포가 주로 생산되는 곳은 골수이며, 이외에 비장과 흉선 등에서 상당수가 생성되고, 목이나 사타구니 부위의 임파절과 같은 면역체계에 많이 모여 있다.

위치는 다르지만, 이들은 혈관과 같이 림프관을 통해 상호 연결된다. 이는 면역체계가 전신에 발달되어 있으며, 면역세포 또한 신체 어느 부위에도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면역체계는 인체 내부에서 생성된 암세포를 비정상 물질로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

아직은 이론에 불과하지만, 전신을 감시하고 있는 면역체계를 잘 활용한다면 암예방은 물론 치료까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용만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인간의 면역체계는 워낙 잘 훈련돼 있고 활동력이 뛰어나 하루에 수십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겨났다가 면역세포에 의해 파괴된다고 한다.

면역체계 통제선 뚫리면 암 발병

 그런데 환경이나 선천적 유전 등 여러가지 암유발 인자들로 몸상태가 나빠지고, 이것이 지속·축적되면 어느 시점에서 암세포가 면역체계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또한, 암세포는 자신을 찾아 제거하도록 교육되어 있는 면역세포를 속이고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면역회피 기능을 철저히 이용한다. 이러한 면역회피 상태에서 암이라는 질병이 발생하며,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생명을 헌납해 온 것이다.

인체원리 이용 암치료 도전

 그렇다면 인간의 면역체계가 암세포 또는 암유발 병원체를 좀 더 잘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공격력을 강화토록 훈련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치명적인 체내 비정상 물질을 제거하고 차단키 위해 인체내 자연적인 반응을 촉진시킬 수는 없겠냐는 물음표. 이것이 암백신을 통한 면역치료법(immunotherapy)의 출발점이 됐다.

건강한 사람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서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공격하고 감염을 막아 보자는 의지가 "가다실"과 같은 암예방 백신을 탄생시켰고, 종양세포가 지니는 암 특이 항원을 암환자에게 주사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을 치료해 보자는 백신개발 노력도 진행중이다.

 암백신은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면역반응이 강력히 유발되도록 인위적으로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파괴 또는 제거하는 능동적 개념의 면역치료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백신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항원을 해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조절해 면역체계가 이를 경험하고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개발됐다.

향후 같은 항원이 다시 들어오면 면역체계는 이를 쉽게 인식하고 표적으로 삼게 된다. 기존 백신들이 외부 병원체(bacteria, virus 등)를 표적으로 한다면, 암치료 백신은 인체 내부에서 발생하고 생존하는 암세포를 특이 항원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암세포를 미리 발견해 죽이거나 암발생시 그 특성을 면역세포가 인식해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면역치료와 암치료 백신은 그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백질 조합 차이로 암세포 구분

 인간이 인위적으로 면역체계에 암세포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면역세포는 인체를 순환하며 수 없이 많은 세포들과 접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판단케 하는 표식자는 세포표면의 단백질 조합. 즉 무수히 많은 아미노산, 펩타이드 구조로 이뤄진 단백질로서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상세포와 구별되는 특이구조가 포착되면 면역세포의 공격이 시작된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세포의 관점에서 상당히 큰 규모인 단백질 구조. 이중 암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발견되는 단백질 조합을 암세포 특이 항원이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 암세포의 특이성이 뚜렷해 인식이 용이할수록, 그리고 면역체계가 강할수록 초기에 암세포를 파괴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인체가 암세포에 대해 어느 정도 조절능력을 갖는 것도 이같은 기전을 통해서다.

암세포 면역회피기전이 문제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암세포는 태생적으로 체내 정상세포에서 변질돼 만들어진 세포의 일종이다. 이 때문에 정상세포와 상당한 분자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면역체계가 강력히 공격치 않는 경우가 있다.

 암세포 생존능력의 결정판은 바로 다양한 면역회피 기전. 이 치명적인 비정상 물질은 인체내에서 정상세포로 위장하고 면역세포를 속이기 위해 가면을 쓰고 다닌다.

또는 자신이 항원이라는 표식을 드러내지 않는다. 행여 자신이 정상세포가 아님이 발각되더라도 세포간 연결고리를 숨겨 면역세포의 접근을 저지할 수 있다.

그래도 면역세포가 끈질기게 접근하면 면역억제 물질을 분비하는 다단계 생존전략을 구사한다.

면역체계의 인식훈련이 백신개발 핵심

 암백신은 면역체계를 회피할 수 있는 암세포를 인체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도록 면역반응을 인위적으로 활성·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해야 할 비정상 물질로 인식토록 유도하는 것이다.

암세포가 가지는 특이 항원을 찾아내고, 면역세포가 이를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암세포의 면역회피기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현단계에서 암백신 면역치료법 성공의 관건인 셈이다.

 다음호에서는 면역체계가 암세포 특이항원을 인식토록 하는 암치료 백신 개발방법들을 살펴 본다.


김용만 울산의대 교수가 말하는 암세포의 다양한 면역회피기전


 서울아산병원 세포치료센터에서 암환자를 대상으로 수지상세포를 통한 면역세포치료 연구에 전력하고 있는 김용만 교수(산부인과)는 속임수와 철저한 차단벽을 구비한 암세포를 면역체계가 인식토록 해주는 것이 암백신을 통한 면역치료법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정상과 비정상 세포를 구분해 질병위험을 조절하는 면역세포 고유의 기능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표식물질 감추고 움직여

 암세포는 낮은 항원성을 나타낸다. 맹인들이 점자를 통해 뜻과 방향을 인지하듯이 면역세포는 다른 세포의 표지자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이같은 표식물질을 아예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하더라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점액질 등으로 표면을 덮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를 항원회피(antigen masking)라고 하는데, 암세포가 자신이 항원임을 드러내지 않는 주요방법이다.

세포연결 물질 소량보유로 공격 회피

 세포와 세포가 상호작용 또는 결합키 위해서는 서로를 연결해 주는 물질인 수용체가 필요하다. 펩타이드가 연결고리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되는데, 암세포는 이같은 연결물질을 갖지 않거나 소량 보유하고 있다.

이 경우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결합 자체가 힘들거나 느슨하게 이뤄지게 된다. 결국, 인체의 면역체계는 암세포임을 알면서도 이를 죽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도리어 면역세포 죽이기도

 한편, 암세포의 연결고리가 아무리 느슨하다 해도 강력한 면역세포가 달라붙어 이를 죽일 수 있다. 이 경우, 암세포는 면역기능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면역세포를 죽일 수 있는 생체물질을 내보내 살아남게 된다.

 결국, 가면을 쓰고 면역세포를 속이거나 적발시 면역세포의 접근을 차단하고, 그래도 공격해 오는 면역세포는 죽여 버리는 암세포의 면역회피기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암백신 개발은 물론 향후 암치료 개선의 새로운 과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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