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가 극적인 6자회담 타결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남북장관급회담이 다시 열리고 있는 지금, 인도적 차원에서 남북 의료협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 27일 남북의료협력재단·북한경제전문가 100인 포럼·매일경제신문사가 공동주최한 "남북 의료분야 협력 현황과 전망" 정책세미나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반증하듯 북한의 현 의료수준과 지원 방법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로 뜨거웠다.

 북의 의료환경은 우리나라 1970년대 수준. 의료체계는 사회주의가 위협을 받으며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정의화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은 "북의 의료제도는 현재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영양부족과 기생충질환, 결핵 등 기본적인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예방의학과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를 기본정책으로 표방해왔으나 80년대 후반 급격한 재정악화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병원은 1차 의료기관을 포함 4200여개, 의료인은 7만 2천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전기나 용수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하고, 의약품과 장비가 부족해 70% 이상의 약을 "풀뿌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인 유진벨재단 인세반 이사장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한 달 수술 건수가 10건을 넘지 않는다"며 "수술 도구들도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맹장수술에도 2개월이 넘는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그 곳의 현실을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정책은 극히 미미하다. 대부분이 의료기기나 약품, 왕진가방 등을 제공하는 긴급구호지원이거나 국제기구를 통한 재정지원에 그치고 있는 것. 지난해 영유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100억 가량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큰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서 지원할 경우 북측의 요구에 좌우되는 경향이 커 한계가 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지만 1명뿐인 전담인력으로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핵 문제 같은 정치적 사안도 대북지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지원액추이를 살펴보면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2004년 핵 위기 당시 2억 5천만 달러를 기점으로 다시 감소세에 있다.

 이처럼 들쭉날쭉으로 이뤄지는 현 지원방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 위원장은 "기본적인 의료 인프라부터 만들어줘야 한다"며 "통일에 대비해 국내 보건의료시스템과 연동될 수 있는 체계로 만들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 진행 방식은 정치적 한계
주민접촉등 실무 시민단체에 맡겨야


 이윤상 나눔 인터내셔널 대표는 "정부와 민간이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며 "기술지원이나 전수 등 환자나 주민과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일은 시민단체에 맡기고 정부는 보다 근본적인 과제를 해소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로 나눔 인터내셔널은 2004년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의료장비의 수리에서 생산, 보관, 관리, 구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평양의료협력센터를 건립한 바 있다. 인 이사장도 "기존병원이 있는 곳에 추가로 짓거나, 기존병원들이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단발성 재정지원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인력 양성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공의료팀장은 "북의 의학교육 체계 역시 붕괴된 상태"라며 "현재 활동하는 의사들이 물러나는 시기인 20년 후에는 의사 수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의료인력 양성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양호 통일부 남북회담상근대표는 보다 현실적인 정책추진을 강조했다.

 홍 대표는 "텍스트중심의 정책조언보다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정책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할 때"라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자원도 한정돼있는 만큼 제약회사나 의료장비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실무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주사무소 등 공식적인 창구가 있어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 세미나 축사를 위해 참여한 유시민 장관은 "그간 남북장관회담에서 보건의료분야의 협의통로를 열고자 노력했으나 아직 성과는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 들어 관계가 호전 기미를 보이는 만큼 진전될 것이라 믿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대석 이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의료지원이 10년 넘게 이뤄지고 있지만 민간단체 각각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어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남북경협공사처럼 의료분야 협력을 아우르는 전담기구가 설치돼 지속적인 실무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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