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의사소통으로 의사ㆍ환자간 원만한 관계 형성

어떤 환자들은 안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진단을 원한다.

어떤 질병에 대한 모든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환자들이, 고려해 봐야 할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상담실 문을 나서는 것과 같은 "아무런 심각한 문제 없는 증후군"에 대해서 기술한 적이 있다.

이에 환자들은 안심하기 보다는 전보다 훨씬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다.

극도의 불안감으로 심리적 노이로제 상태에 있는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마음을 편히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그들은 자신의 정신적 혼란이 심각한 신체적 질병의 증상 가운데 하나인지에대해 대단히 불안해 한다(암에 대한 공포가 가장 흔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해서 신체의 여러 다른 기관들이 감정적 긴장 상태의 표적이 되는지에 대한 절차를 설명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하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자신의 배우자나 혹은 몇몇 의사들이 자신의병을 "가상의 질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갖기 때문에 그렇지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처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들은 말로 인해 환자들은 감정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분노를 느끼게 된다.

환자가 그의 배우자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필자는 "당신은 절대 가상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십시오.

당신의 문제는 현실적인 것이고 그것이 감정적으로 지나친 불안감을 가져올 따름입니다.

이런 당신의 혼란 상태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정될 것입니다"라고 말해준다.


나를 이해해주는 의사

이와는 반대로, 의기 소침해 있는 환자들은 의사가 "얼마나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고 또 얼마나 이런 상태로 삶을 살아가기가 힘든지"를 터놓고 이야기 하며 자신을 이해해 준다면 더욱 안심하고 그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사의 말에 부담이 한층 덜해진 환자는 거의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이제서야 저를 이해해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됐군요."

환자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하는 어떤 말들은(그러나 어떤 표현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그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환자를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빤히 들어다 보이는 것도 있다.

반대로, 의사가 "병이 완치된 이후의 당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지금이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좋은 시점인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면 환자는 훨씬 더 안심하게 될 것이다.

환자에게 "당신 혼자만 이런 종류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울해 하지는 마십시오. 이는 아주 흔한 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사실 인간의 질병에 있어 "이것은 타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하는 위로의 말이다"라고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질병으로 괴로워 하는 환자에게 있어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사실은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즉 자신의 고통에 빠져든 사람은 다른 이들의 불행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몇몇 환자들이 자신이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고 이에 따라 의사들에게 특별한 관심사가 된다는 사실에, 즉 "자신이 특별한 데 대해" 은근히 자만심을 갖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의사가 조심스럽지 못하게 환자에게 내뱉는 몇 마디의 말은 환자를 안심시켜 주기보다는 오히려 화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어느 날엔가, 필자는 심각한 신장기능 장애를 앓고 있는 한 젊은 환자를 진료했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몇 주 전에 자신이 입원했던 병원에서 이탈한 환자였다.

그에게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버린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자신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대신 의사는 그에게 상태가 어떤지를 물었고, 주치의는 그에게 큰 목소리로 "요독증 환자님, 오늘은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이런 말은 다정하고 친근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환자에게는 매일 아침마다 의사가 자신의 신장 상태가 이미 요독증 증세를 보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

특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보호와 위안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많은 의사들은 이런 환자도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갖고 있고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세심하게 진료하고 호의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감정적으로 이미 준비와 굳건한 각오를 하고 있는 이런 의사들은 비록 그것이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될지라도 환자를 안심시켜 줄 수 있는 말로 환자와 자주 만남을 가져야 함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이 만일 환자를 포기한다면 간호사들이나 다른 병원 직원들도 자신의 선례를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몇몇 다른 의사들은 그런 순간을 잘 헤쳐나가지 못하곤 한다.

그의 침대에 다가가는 바로 그 순간, 의사는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한다고 말해버리거나 혹은 다른 보조원들에게 자기 대신 환자를 살펴봐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환자의 진료를 30초 정도 안에 끝마쳐버린다. 이렇게 환자를 피하려는 자세는 죽음을 실패의 상징, 의사의 "전능함"의 파탄을 나타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의사의 전지전능함을 믿고 "기적적인 생각"을 하는 환자들 덕택에 의사는 종종 자신이 전지전능하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의사의 한계와 무능을 나타내는 증거인 것처럼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

그리고 의사 또한 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에 의사 역시 자신의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

"나는 이 환자에게 말할 수가 없어. 내 부친도 이 병 때문에 돌아가시고 말았어" 혹은 "이 환자는 이런 식으로 괴로워해서는 안 되는 거야"라고 부정하기도 한다.

의사의 심리 교육이 불충분하거나 죽음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인 거부 반응은 불가피하게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거리 두기"가 된다. 거리 두기는 환자와 최소한의 관계만을 가지려고 하는 시도이거나 가능한 환자와 말하기를 피하는 것 등인데 이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행위이다.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환자를 이미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거부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행동이다.

환자가 아직 떠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그와의 관계를 이미 단절하고자 하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 이전까지는 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환자에게 그가 아직도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끝까지 그는 우리와의 만남의 대상이며 보호를 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종종 우리는 환자가 진실을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곤 한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사람과 우리 자신이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는 지에 대해서 자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대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침묵만이 남게 된다. 침묵을 선행해서 먼저 대화가 있었다면 그 이후의 침묵은 환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대화 이후의 침묵은 또한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선행된 대화가 전혀 없었다면 침묵은 단절에 불과할 것이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환자로부터의 도피

필자가 보기에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둔 채 의사와 간호사가 "도망"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의료 기본 교육의 잘못으로 인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오해인 것 같다.

우리는 전문적 의학 교육의 목적이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는 그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돌보며, 치료하기 위해그를 돕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단지 이 목적만을 위해 교육 받아 왔기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는 의사에게 있어 실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치료 불가능한 인간으로서, 의사와 간호사의 전문가적 능력을 벗어나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죄책감, 실망, 실패의 감정이 이런 "도피 증후군"을 더욱 부채질 하고 강화 시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