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걸음마…모든 것이 부족한 신생아

올해 정부가 의약품선별목록제(포지티브리스트) 시행을 본격화하기로 하면서 제도 시행에 따른 최대 이슈는 의약품의 비용 효과 분석에 근거해 선별적으로 보험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의약품경제성평가(약물경제학)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정부 정책에 대해 제약업계는 철저한 준비 없는 밀어붙이기식의 약제비적정화 방안과 선별목록제에 반대 의견을 밝혔으며긾 의료계 일부에서도 진료권 침해와 의료현장의 현실을 고려 하지 않은 의약품정책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과 별개로 이미 네거티브리스트 제도하에서도 의약품경제성평가는 일부에서 실시되고 있었으며긾 기존 의약품 등재방식과 달리 과학적 근거와 비용 효과성을 고려한 의약품의 보험등재 정책은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의견이 다수이다.

 국내 약물경제학에 대한 현 수준을 평가한다면 어떠할까긽 관련분야의 국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양의대 류마티스내과 배상철 교수는 국내 약물경제학은 이제 발전의 기초 단계에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한국병원약사회 약물경제성평가 특수연구회를 맡고 있는 송영천 회장(서울아산병원 약제팀)은 "병원이나 제약업체에서 약물사용정책의 주요 결정 수단인 약물경제학을 등한시 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실제로 약물경제성평가를 위한 기초 자료나, 관련 학술 자료를 구하는 것 조차도 국내에서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송영천 회장은 약물경제학 인프라 구축을 위한 학문적인 논의는 물론 제도 시행과 맞물려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모두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외 제약업체들의 준비 상황이다긽 외국계 제약업체들의 경우 국내업체와 달리 본사 차원에서 인력을 보충하거나, 자체 전문인력을 스카웃 하는 방식으로 제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는 본사 차원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 형편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제약회사의 경우에도 국내에 신약을 출시할 경우 국내에서 실시된 임상결과나 약물경제성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새롭게 생성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자료 축적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GSK 구혜원 학술이사는 국내에서 약물경제성평가를 수행하기 위해 기초데이터 생성을 위한 리서치와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신약이 출시될 때마다 회사가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인력이나 업무 전문성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제약회사의 경우는 다소 심각한 상황이다긽 D제약사 관계자는 "제약협회 차원에서 제도 시행에 반대하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제도 시행에 따른 후폭풍과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C제약업체 연구소 관계자는 품목 하나하나 모두 경제성평가를 수행한다는 것이 비용면에서 과연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또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며긾 양질의 경제성평가를 위한 정부의 방침이나 국내 인프라도 부족한 현실에서 과연 올바른 경제성 평가가 수행될지도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제약협회 차원에서 선별목록제에 대한 업계 대책과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중이지만 아직은 뚜렷한 방침이 세워지지 않았다. D제약사 관계자는 "솔직히 현 상황에서 회사가 뚜렷한 방침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우선 협회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는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가긽 정부 관계자는 물론 제약업체 관계자들도 그동안 각개 약진하던 상황을 탈피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내 약물경제학 발전을 위해 논의 구조를 만들고 서로의 고충을 듣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GSK 구혜원 이사는 기초데이터 생성이나 약물이 중복되는 질환의 경우 공통의 자료 활용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해결해야할 과제는 인식의 전환이다긽 약물경제성평가가 단순히 의약품의 비용대비 효과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 의약품의 보험등재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약물경제학과 약물경제성평가는 단순한 약가 결정 도구가 아니라 임상진료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든 면을 고려해야 할 분야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정부나 관련 기관들도 이러한 근거하에 객관적이고 투명한 경제성평가 검토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말 복지부가 연내 시행을 예고한 가운데 심평원은 약물경제성평가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1월말 보험등재 의약품 여부를 결정하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구성을 완료하고긾 2월중으로 약효군별 보험의약품 등재목록 정비 계획도 발표할 예정이다긽 또 구체적인 경제성평가 실무 지침과 보고 양식 등을 마련하기도 했다.

 약제비적정화 방안이 급조된 약가통제 정책이라는 의료계와 관련 업계의 의견, 보다 효율적인 약가정책을 통한 약제비 절감과 의료비용의 효율화라는 정부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자칫 더 중요한 약물경제성평가 분야의 세심한 정책 결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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