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회장 신혼집 팔아 시작

종로5가 약국거리 효시이자 상징



 국내 기업체의 장수 연령을 살펴본 다수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기업의 절반 이상이 제약업과 관련된 업종이라는 분석이다.

 일제시대부터 국민 건강 보호와 질병 퇴치를 위해 힘써온 제약업체들은 조그만 약방에서 시작 지금의 기업군을 일궈왔다는 평가이다.

 그 중 한 기업,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와 "속쓰림엔 겔포스"로 우리에게 친숙한 보령제약이 있다.

 내년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창업 50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된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50세에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는 天命을 말하며, 이는 말 그대로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진리를 알고 보편적인 가치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1957년 10월 1일 종로 5가의 허름한 문방구를 개조해 출발한 보령약국<사진 1맨위부터>은 현재 보령제약, 보령메디앙스, 보령바이오파마, (주)보령, 보령수앤수, 비알네트콤, 킴즈컴 등 7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보령그룹으로 성장해 왔다.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은 회고록인 나의사업 이야기를 통해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재산이라곤 생활하면서 근근이 마련한 서울 돈암동의 집 한채가 전부였다. 당시 나에게는 결혼한지 채 1년도 안 된 신혼의 아내가 있었으나 돈암동 집을 팔아 손에 300만원을 마련한 나는 좋은 목을 찾아 나섰다. 종로 5가의 한성문방구, 비록 낡고 볼품없는 건물이었지만 약국 입지로서는 그만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57년 10월 1일 내세울 재산이라곤 젊은 패기와 성실 하나뿐이던 나는 당시 도매상이 독점하던 약국업계에서 소매약국으로 살아남기위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사업에 임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첫 사업을 시작한 김승호 회장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윤폭을 줄이는 영업 방침과 손님이 찾는 모든 약은 반드시 구해준다는 마케팅 전략으로 개업 5~6개월만에 경영수지를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약회사들과의 현금거래를 통한 대량 구매와 판매라는 경영 방침과 전국 어느 약국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오픈 진열대<사진 2>를 설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해 개업 5년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소매약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김승호 회장은 회고록에서 "종로 5가를 지나는 행인 다섯 중 하나는 보령약국 손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당시 약국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혼 살림의 전 재산이었던 집을 팔아 시작한 보령약국은 종로5가 약국 거리의 효시이자 상징이 되었으며, 보령제약이라는 기회를 제공한 큰 성공의 발판이었다. 이후 1962년 제약업 진출을 타진하던 김승호 회장은 부산의 동영제약을 인수, 보령약국 건너편 3층 건물인 종로 4가 1번지에 건평 47.5평의 제일 윗층에 보령제약 사무실을 마련 제약업에 진출하게 된다<사진 3>. 김승호 회장은 "변변한 생산품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설투자를 할 수는 없지만, 고민 끝에 마련한 공장이 바로 연지동 193의 7번지 바로 우리 집이었다. 비록 좁은 집에 미비한 설비를 갖춘 수준이었지만 63년을 보낸 그 겨울의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후 보령제약은 64년 1월 동영제약 상호로 공장을 가동하고 1개월 후 오렌지 아스피린이라는 첫 제품을 선보였다.

 이후 APC, 산토닌정, 치아민정, 에페드린정, 설파다이아진 등을 선보이며 탄탄한 제약업의 기반을 만들어가게 된다. 이어 1966년 2월 26일 보령제약주식회사로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게 된다<사진 4-현재 보령제약 중앙연구소>.

 보령제약그룹은 지난해 3400억여원의 전체 매출을 올렸고, 보령제약만으로 계산해도 2005년 매출 1630억원과 올 3/4분기 누적매출 1400억원, 2005년 기준 생산실적 100대 기업 순위에서 총 생산액 1725억원으로 국내 제약사중 18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김승호 회장은 "이제 내 손으로 만든 제품 한 알 한 알이 소비자들에게 복용되리라는 생각에 앞으로 내가 만들 모든 약품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며 "보령 약국이 내게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바로 고객의 신뢰였으며, 나는 평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신뢰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령약국 문을 열고 집을 제약회사 공장으로 개조할 당시 누구보다 곁에서 열심히 응원을 해주었던 부인 박민엽 여사가 지난달 초 숙환으로 별세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김승호 회장은 다시 보령 창업 50년을 위한 힘찬 발 걸음을 내딛을 것을 밝힌바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제약 기업의 초심 "국민 건강 수호"라는 사명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비단 보령제약만이 아니라 100년, 50년 이상을 이어온 국내 제약 기업들의 더 긴 생명력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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