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의대 교육 上

인문·사회·예술 분야 커리큘럼 속속 신설


 지난달 계명의대 의예과 2학년 전공필수 강의가 있던 날. 강의실을 의과대학이 아닌 정신지체 장애아들이 있는 사회복지시설로 옮겼다. 지난 2002년 연세의대의 한 강의실. 소설가 김훈씨와 시인 마종기(의사)씨가 의학과 문학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이달 28일 한양의대는 본지 김윤호 클래식으로의 초대 필자인 김윤호 원장(한양의대 졸업)을 초청, 의학과 음악을 주제로 고전음악에 대한 강의를 갖는다. 이날 김윤호 원장은 즉석에서 첼로도 연주할 예정이다.

 국내 의과대학들의 변화된 의학교육의 현장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적, 윤리적 판단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학교육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의 모아진 결과들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연세의대를 비롯 몇몇 대학에서 다소 생소한 의학과 문학·예술 등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개설,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기존 전공과목에 포함됐던 경영, 현장실습, 토론학습 등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보다 내실화됐으며, 특성화 교육 등으로 주제와 커리큘럼도 다양화 시킴으로써 의대생들의 선택폭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러한 의학교육 변화의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로부터 의사들은 환자를 인간이라기보다 치료대상인 생물체로만 여긴다는 비인간적인 평가를 받는 의료계내의 반성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연세의대의 한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자연과학적 성격이 강조된 의학은 학문적 발전은 있어도 의학이 매우 비인간화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증가하는 환자들의 불만과 새로운 의사상 구현을 위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요소가 강조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유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을 앞두거나, 혹은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대다수 의과대학들이 보다 다양한 커리큘럼 제시와 인문학적, 사회적 소양을 전달할 수 있는 교육 과정 마련을 통해 의학전문대학원시대를 대비하려 한다는 점이다.

 본지가 변화된 의학교육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14개 의과대학의 연간 강의계획표를 살펴본 결과 이같은 추세는 더욱 크게 반영됐다.

 지난 2002년 문학과 의학의 만남 과목을 개설한 연세의대의 경우 현장실습, 특성화 교육을 더욱 확대했으며, 올 3월에는 의대생들과 법대생들의 담배 모의재판, 다운증후군 태아의 임신중절 권리에 대한 모의재판 등을 실시하기도 했다.

 계명의대는 인성교육을 위한 인문사회의학 과목 개설, 폭넓은 임상실습 기회 제공을 위한 외부기관 현장 실습이라는 2개의 큰 틀에서 사회봉사실습 1주일간의 지역 1차의료기관 현장 실습 등의 정규 과목을 개설했다.

 의사 윤리교육을 강조해 온 가톨릭의대 경우 지난 9월 1일자로 의사들의 폭넓은 인문사회분야 교육을 목표로 의과대학내에 인문사회의학과를 신설했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의사와 환자, 의사와 사회의 관계설정과 윤리 교육 등을 담당하는 인문사회의학과는 정신과 최보문 교수를 주임교수로 임상 겸임교수 2명(의사), 신부 1명 등의 교수진을 구성 2007년 새학기부터 신입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또 의사 환자간의 의사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다 친절하고 인간적인 의사상 구현을 목표로한 과목도 눈에 띈다. 고려의대의 의사소통기법, 강원의대의 환자와 의사·사회 과목(2006년 신설) 등이 있으며, 성균관의대도 본과 1학년부터 환자와 의사, 사회와 의사 과목(1~4)을 개설하고 이를 종합하는 의사의 길 과목을 본과 4학년 필수 과목에 포함시켰다.

 한양의대도 기초필수 과목으로 인간심리학을 개설했으며, 순천향의대도 환자-의사관계 과목으로 본과 3학년 전공필수 과목을 지정했다. 서울의대의 경우도 4년전부터 환자·의사·사회를 정규 교과 과정으로 신설 매년 2~3주의 집중 교육 기간을 통한 인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의대 한준구 교무부학장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심리상태, 의사로서 진료가 아닌 타 직업군으로의 진출, 비의료인이 바라보는 의사 등의 강의를 통해 의대 교육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의과대학의 커리큘럼 변화는 내용적으로 문학·음악·예술 등의 인문학 강좌, 환자와의 관계설정, 봉사활동을 통한 윤리의식 강화, 의료경영 및 리더십 교육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형식적으로는 소규모의 토론식 수업,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현장실습 기회 제공이라는 특색이 있다.

 연세의대 관계자는 "사회의 리더로서 의사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집필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인문학과 문학 교육의 기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며 "의사, 의료계, 의학계가 좋은 의사 사려깊은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자 변화의 몸짓"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사회성이 부족한 의사, 환자를 물질적 대상으로만 보는 비인간적인 의사상을 지양하고 인간적인 의사, 환자와 함께하는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의사사회와 의학교육자들의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보다 많은 의과대학들이 내실있고 다양한 교육틀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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