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는 예방 가능…의료배상 보험료 의사들 거리시위로 내몰아

한국도 소송 급증…의료분쟁조정법 마련 시급

 "선진국 내원 및 입원환자 10명중 1명은 예방 가능하고(preventable), 피할 수 있었던(avoidable) 의료사고로 고통받고 있다."
 "부주의한 의료사고로 파생되는 사망·재입원·원내감염·장애·소송 등이 연간 60억~29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
 전세계의 보건을 관장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의료사고 줄이기에 본격 나섰다. 지난달 27일 한자리에 모인 WHO 회원국 보건책임자들은 부주의한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과 상해 및 사망 등을 줄이기 위한 공동협력체인 `환자안전을 위한 세계연합(World Alliance for the Patient Safety)`을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환자안전 개선을 위한 지구촌 공동협력체가 처음 출범한 것은 선진국·개도국·최빈국을 가리지 않고 급증하는 의료사고와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병원과 의사들이 오히려 사망과 고통을 야기하는 원흉으로 인식되는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는데 대한 위기의식과 반성 또한 공동대응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피할 수 있는`, `예방이 가능한` 의료사고로 부터 환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세계 최고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의료사고 사망자수가 급증하면서 `의사들이 환자들의 사망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는 원색적 비난이 일 정도로 환자안전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1999년 미국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이 발표한 보고서는 의료선진국 미국의 의료사고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만 4만4000명에서 9만8000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의료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9만8000명은 심장병·암·뇌졸중·폐장질환에 이어 미국내 사망원인 5위이며, 4만4000명 만을 놓고 봐도 8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2000년 미국의사협회(AMA) 학술지 `JAMA`에는 이보다 더 충격적인 수치가 발표됐다. 보고서를 발표한 바바라 스타필드 박사(존스홉킨스대학)는 "지난 10여년간의 조사들을 종합한 결과, 미국내 연간 의료사고 사망자수가 22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미국 의사들이 야기하는 사망자수가 심장병·암에 이어 전체 사망원인의 3위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재미 의학칼럼리스트 김일훈 박사는 저서 `미국의료 한국의료`에서 "이같은 의료사고의 비극으로 인해 막대한 부가비용이 미국의료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만 의료사고로 소요되는 총체적인 비용(수입감소와 의료비 등)이 376억에서 500억달러로 예측된다"는 설명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중 170억~290억달러는 예방으로 절약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점이다. 김일훈 박사가 인용한 한 연구기관의 의료사고 분석자료에 의하면, 70%는 예방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설상가상으로 이같은 의료사고가 막대한 의료분쟁보험료라는 부메랑이 되어 작금의 미국 의료계를 최대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2003년 새해 벽두 미국의사들은 늘어나는 의료분쟁과 함께 동반상승하는 의료배상보험료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미국에서는 단 한건의 의료사고로 알거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연간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보험료를 마냥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사협회는 의료분쟁이 잦은 신경외과나 산부인과 등의 진료폐쇄가 늘고 의료소송조정법이 제정되지 않은 주(州)의 의료체계가 파탄되는 현실을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의료배상보험료 문제해결을 올해 최대 현안과제로 삼았다.
 최고 기술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선진국의 실태가 이렇다면 개도국이나 최빈국은 그 심각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WHO 보고서에 의하면, 개도국 지역의 수백만에 달하는 소아 및 성인환자들이 의료과오는 물론 불안전한 수혈·위조약물·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개도국 지역 의료장비의 50% 가량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이며 위조약물 부작용 사례의 77%가 이 지역에서 보고된다는 WHO 보고서는 의료사고에 대한 범세계적인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7000~1만5000건 정도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의료사고 손해배상소송 건수는 1998년 76건에서 1998년 717건으로 10년 만에 10배 가량 증가, 폐해가 수면위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의료분쟁조정법 제정 노력이 수십년이 지나도록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의료사고의 심각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부족과 이해당사자간 견해차에서 기인한다.
 미국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 의료사고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향후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위한 의료분쟁조정법의 조속한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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