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환우회" 국가인권위 점거농성

"환자 고통 알지만…폐기손실 전가 너무해"

혈액질환자들과 가족들이, 연명을 위해 수혈받을 혈소판을 직접 구해야 하는 처절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가운데 의료기관 혈액은행들도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백혈병환우회등은 지난달말 사전예약제가 도입되면 이같은 고통을 줄일 수 있는데도 의료기관들이 혈액원 분리반출농축액 혈소판 1회 폐기시 18만7372원의 손실비용 등을 문제삼아 반대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항의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현재 △모든 의료기관 사전예약제 즉각 시행 △적십자사 혈액원은 수익에 상관없이 성분채집혈소판 우선 공급 △보건복지부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혈소판을 구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 △국회는 혈액관리법을 개정, 의료기관에서 혈액부족 등 긴급한 상황 외에 환자들에게 혈액을 구해오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의료기관 혈액은행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혈액관리료 등으로 지금도 적자상태에 있는데 이번 "혈소판" 문제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뭇매를 맞아가며 손실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혈소판은 성분채집(한 헌혈자에게 채집)과 농축(전혈 분리 혈소판으로 여러명에서 채집)으로 구분되지만 두 혈소판은 효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안전성에서는 농축혈소판이 여러명에서 채집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우수하지 못할 가능성은 있지만 각종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시각. 따라서 농축혈소판 공급은 92%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들도 성분채집만 고집하지 말고 농축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혈소판 수혈은 현재 환자의 면역저하 정도 차이 등으로 병원별 차이가 크다.

 위험도 높은 환자가 많은 가톨릭의대 성모병원의 경우 총 14분량 중 성분채집 11(혈액원 10·병원 1)·농축채집 3의 비율로 절대적으로 성분채집이 많은 반면, 15~20%는 성분채집이고 80~85%는 농축혈소판을 수혈하는 병원도 있다.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결과가 없어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야 환자 절반 가량이 찾는 성모병원은 지금까지 70~80%를 당일 신청해 왔지만 이달부터 이번 사태의 핵심이 되었던 사전예약제를 도입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백혈병환우회가 단일 혈소판 수급 해결 대책을 요구하며 인권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혈액수가 현실화가 관건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제도는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백혈병 환자가 있을 경우 의료기관이 수혈 이틀전에 대한적십자사에 혈소판 공급을 요청하는 것. 그러나 보존기간이 5일밖에 안되는 혈소판은 이동과 적합성검사등에 빼앗기는 시간을 제외하면 유효기간은 2~3일밖에 안돼 제때 수혈을 못할 경우 폐기가 불가피하다. 이는 의료기관이 이틀전에 혈소판을 받아놓았다가 수혈 당시 환자의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 있어 수혈할 필요가 없어지거나, 이틀 후 혈소판 수혈을 예정했지만 환자가 당장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적시에 혈소판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고 폐기한 혈소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다.

 적십자사 혈액원도 당일 신청 당일 공급은 100% 순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폐기되는 부분에 대한 비용을 안게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틀전에 예약하는 사전예약제가 혈소판을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된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 문제의 가장 근간은 경제력이다. 혈소판을 혈액원에서 100% 준비를 하고 의료기관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공급해 주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재정부족이 문제다.

 김용구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교수(수혈담당)는 "백혈병 환자가 혈소판을 구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잘못돼 있다"고 전제하고 폐기되는 혈소판에 대한 비용을 감당못하고 병원에 떠넘기는 국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사전예약제 시행후 성분채집 혈소판의 폐기율을 조사하여 그만큼을 수가에 반영토록 하는 한편 효율적인 혈소판 수급계획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옥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 혈액장기팀 사무관은 "성분채혈 혈소판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적십자사·의료기관·학계·환우회 등 관련기관·단체들간 합의가 되면 정부차원의 중·장기 종합대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의료계는 성분채집혈소판 생산 비용은 농축혈소판보다 훨씬 높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수가가 같아 개선이 필요하며,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혈액 수가도 현실화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자는 혈소판 구하는데 목숨걸고 뛰고, 병원은 적자속에도 최선의 진료를 하면서도 "돈"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의 현실이다. 의료제도의 총체적 점검과 개선이 시급하면서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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