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개원의사로 살아가기

"언제쯤 한 환자를 30분씩 돌봐 줄 수 있을까?"

 1년 6개월 전에 서울 강동구에 "모세 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10여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과 근접한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전철역 이름이 "굽은다리역"이어서 "굽은 다리(무릎관절)"를 분과로 수술했던 나에게는 그냥 나의 운명(?)처럼 느껴져서였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1년은 외래만 하는 형태로 개원했다가, 올 2월부터는 기회가 돼 선배와 함께 입원실과 수술실도 갖출 수 있게 됐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이나마 그렇게 원했던 정형외과 수술, 특히 "굽은 다리(무릎)"수술을 하면서 외래와 입원실을 두고 진료를 하고 있다.

 화요일은 대박난 몇몇 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이 그러겠지만 마치 환자들끼리 약속이라도 한듯 외래가 한가하다. 한편으로 마음이 평온치 않고 또 한편으로는 오랜만의 편안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평온했던 외래가 안면부 열상 출혈환자로 인해 진료순서를 조금 바꾼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한 환자의 고성으로 갑자기 어수선하다. 왜 저런 걸 가지고 소리 지를까 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아!! 내가 한국의 개원의사로 살아가고 있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화가 난 환자를 달래며(?) 진료를 겨우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왠지 씁쓸한 마음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섭섭했던 경우가 또 있었는데 의료보호환자들을 진료할 때이다. 정형외과에는 퇴행성 관절염, 척추염 등을 호소하는 의료보호환자들이 종종 내원한다. 집도 가깝고, 비용도 저렴하니 큰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다니는 것보다 의원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간혹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할 때는 참 난감하다. 의료법상 1차진료기관에는 입원과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적으로 의료보호 환자의 진료비를 절감하려는 정책으로 생각되나, 한편으로는 1차 진료기관을 마치 필요 없는 환자를 진료하고 입원시키는 곳이라는 기본 개념이 깔려 있지 않나하는 불쾌감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다.

 오히려 2,3차 의료기관보다 훨씬 저렴하고 가까운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 및 입원,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면 환자에게도 오히려 보호의료재정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건 순전히 1차의료기관의 의사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정책인 듯하다.

 요즘 의료기관의 경영은 최악일 것이다. 개원가의 경우 특히 심각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개원의들이 공감할 것이다. 가끔 주변에서 그래도 병원의 원장이면 돈을 많이 벌 것 아니냐? 왜 죽는 소리하느냐고 하는 이들을 본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산뜻한 출발을 한 경우라면 모르지만 최근에 개원한 젊은 의사 중 대부분이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

 이대로 가면 부채를 언제쯤 갚을 수 있을지, 혹 이자는 제대로 낼 수 있을지 등등으로 힘들어할 것이다. 신생아 출산율은 점점 줄고, 경기가 좋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못가고, 한의사·약사·사이비 의료인들까지 의사들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는 마당에 의사 자체의 숫자도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개원의들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될게 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당에 병원은 항상 흑자고 너무 돈을 많이 번다는 전제하에 모든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으니….

 그래도 나를 믿고 온 외래 환자들을 진료할 때, 수술 후 통증이 좋아졌다고 내 손을 놓아주지 않는 분들을 볼 때 다시 한번 용기를 낸다.

 흔히 정형외과에는 "헌드레드 클럽"이라는게 있다. 최소 병원이 유지되려면 외래를 하루에 100명을 보고, 입원환자도 최소 20명이상이 되야 한다고 해서 생긴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런 꿈을 꿔본다. 언제나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흔히 이야기하는 선진국 의사처럼 하루에 외래 20명 이하로 진료하고 한 환자에게 20~30분의 진료를 하면서 살아가는 꿈이다. 또 모든 진료 물품도 무균소독된 일회용으로 진료하는 꿈이다.

 이런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부르르 떨린다.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다. 꿈이 확 깬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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