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 정신·육체 업무…의료사고…경영 압박…

개원·봉직의 누구나 "웰빙"은 그림의 떡

 직무스트레스는 현대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이미 많은 직장인과 기업들은 직무스트레스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며, 정신과나 가정의학과 등 의료계를 중심으로도 관련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의사사회에서만은 이 부분이 유독 도외시 되고 있다.

 의사들은 그 어떤 업무 종사자보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많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스트레스 관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왼쪽 질문에서 언급한 6가지 지표는 한국인직무스트레스측정도구(장세진 연세대 원주의대 예방의학교실. 2004. 한국산업안전공단)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의사라면, 위의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의료사고에 1초도 긴장을 풀 수 없으며 높은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매순간 활용하는 지식노동에 시달리고, 도움받을 여유조차 없이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업무에 만족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날로 악화되는 경영환경은 개원가의 목을 조이고 있으며 봉직의들도 과중한 업무로 "웰빙"을 잊고 산지 오래다.

 몇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전해지는 의사들의 자살 소식은 직무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생각없이 지나쳐온 순간순간의 긴장과 압박을 주는 상황들은 의사들의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까지도 해칠 수 있는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로 각종 연구 결과를 통해 직무스트레스가 심혈관 질병은 물론 암, 근골격계질환, 위장질병, 불안, 우울증, 자살 등의 1차와 2차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양윤준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질병을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스트레스 호르몬과 화학물질이 작용해 내장기관 기능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심리변화를 일으켜 자기방어를 무너뜨리는 등 자아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이론도 있다"고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또한, 채정호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직무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급성 불안, 빈맥, 호흡곤란, 범불안장애, 조울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유발한다"며 "이 같은 질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잠재적 위험신호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고 스트레스와 정신건강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직무스트레스의 관리를 생산성 향상의 측면으로 보고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사례는 이미 상당하다. 개인의 행복이 조직이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먼저 체득한 선진국으로 중심으로 종업원지원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 EAP란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을 상담이나 치료 등을 통해 도와주는 조직차원의 서비스다.

휴렛패커드나 피앤지, 소니 등 외국계 회사를 비롯, 삼성그룹과 같은 대기업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지만 종합병원 등 다수의 의사들을 고용하고 있는 병원에서 의사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환자나 보호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해결해주는데에만 열을 올릴 뿐 정작 병원의 중심에 있는 의료진들은 뒷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병원 중 유일하게 직원만족센터를 두고 직원들의 스트레스 및 고충을 관리해주고 있는 곳은 삼성서울병원이 유일하다. 올해 5월에 오픈한 이 곳은 의사를 비롯 간호사, 행정직원 등 병원의 모든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며 사례 별로 개인에 맞는 대처를 해주고 있다.

이 곳에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임해진 씨는 "실제로 과중한 업무량과 잘못된 업무 배치, 대인관계, 환자 및 보호자와의 트러블 등을 이유로 센터 문을 두드리는 의사들이 더러 있다"며 "예민한 문제를 털어놔야 하는 만큼 아직 많은 호응은 없지만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직원교육 등을 확대해가며 참여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각 직무별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집단상담 등 형식을 다양화해 체계적인 관리를 실시할 계획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조직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는 개원의들이야 말로 직무스트레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단체나 정부차원의 지원장치가 전혀 없어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개인 스스로의 관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 그 간 일어났던 의사 자살 사건 등 불행한 일들이 대부분 개원가에서 발생됐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행복이 조직과 사회에 파급효과를 일으킨다고 가정할 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의 스트레스 관리는 정부차원의 투자까지도 고려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일반인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않은 수준의 직무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 의사들, 제대로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이다. 의사가 건강해야 국민이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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