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항암제 개발로 말기암도 치료 길 열어

"현재 일부 항암요법은 만성질환 치료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 노재경 연세의대 교수(대한암학회 이사장)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은 더이상 죽음의 병이 아닌 주치의 처방에 따라 잘 관리하면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인식될 수 있다"
- 김기원 한국노바티스 의학학술부장

"현단계에서 표적항암제의 기술수준은 암의 완치보다는 더이상의 증상진행을 억제하거나 종양용적을 감소시켜 생존기간을 연장하는데 목적을 둔다. 암도 정상생활을 영위하며 지속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만성질환화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 패트릭 쇼브스키 벨기에 루벤가톨릭의대 교수
일련의 표적항암제 등장으로, 암환자들이 적어도 정상생활을 영위하며 생명연장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암은 아직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최근 종양의 성장 및 전이기전을 차단하는 표적항암제들이 대거 등장, `이 불치의 병과 공존하면서 평생을 함께 하는(living with cancer)` 만성질환화 가설이 점차 현실에 근접하고 있다.
 가설은 암세포가 전신에 전이된 말기암 환자들에서 현실화의 실마리를 풀고 있다. 폐암환자의 30% 가량은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등 상당수가 말기에서야 진단이 이뤄진다.
 이 경우 수술이나 기존의 화학요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워 단 한시간의 생명연장도 아쉬운 입장이다.

암 만성질환화 치료 등장
 말기암 환자의 만성질환화 치료는 전이된 암을 모두 박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종양성장을 억제하고 증상을 완화시켜 암과 공생하며 만성적으로 타파하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개념이다.
 여타 만성질환과 같이 위험인자를 사전에 차단해 더이상의 증상악화와 이로 인한 사망을 막아내는 것. 나아가 종양용적 감소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면 기존에 불가능했던 절제술을 통해 완치까지 도전해 볼 수 있다.
 이 가설은 암발생과 성장의 경로를 가로막으면서 부작용 위험을 크게 줄인 분자생물학적 표적요법의 출현으로 가능해졌다.
 기존 화학치료제들이 암세포의 DNA를 파괴해 세포 자체를 죽이는 것과 달리, 표적항암제들은 분자수준의 변화를 인지해 암의 전이·신혈관생성 및 신호전달과정을 타깃으로 항암효과를 발휘한다.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됐던 부작용의 부담없이 생존기간을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첫 가능성
 최근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된 `IRIS` 연구결과에 따르면, 글리벡(이매티닙)을 복용한 CML 환자의 5년후 생존율이 90%에 달했다. 특히, 사망환자중 백혈병 원인은 4.6%였으며 5년간 추적검사에서 무진행 생존율이 83%로 명확한 증상억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항암제를 개발한 제약사는 만성질환인 당뇨병이나 고혈압의 생존율보다 높은 수치라며, CML도 효과적 치료를 통해 만성질환화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했다.
 CML은 과거 진단환자들 대부분이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난치의 영역중 하나였다. 글리벡 내성환자에서 높은 반응률을 나타낸 신규 항암제 닐로티닙과 다사티닙의 등장으로 CML의 만성질환화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장암 완치까지 도전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노재경 교수는 원격전이로 수술이 불가능했던 말기대장암 환자에게 EGFR억제제 얼비툭스(세툭시맵)와 FOLFIRI 요법을 병용한 결과, 암수치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이 환자는 결국 대장·간·폐 등에서 절제술을 받았고,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노교수는 고형암의 경우 처음부터 수술을 못하는 환자라도 표적요법을 통해 종양용적을 10분의 1 정도로만 줄일 수 있다면, 미세전이를 막아내고 남은 부분은 절제술을 통해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암과의 공존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장암 가설
 신장암은 폐·림프계·뼈 등으로의 전이가 가장 큰 문제로, 기존 면역요법의 반응률이 낮고 부작용 위험이 높아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의 경우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종양성장 억제효과를 확인한 넥사바(소라페닙)나 수텐트(수니티닙) 등 다중표적항암제의 출현으로 상황이 호전됐다.
 벨기에 루벤가톨릭의대 패트릭 쇼브스키 교수는 기존 면역요법으로는 신장암 환자의 생존기간 중앙값이 1년 안팎이었으나, 종양성장을 억제해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표적항암제의 등장으로 만성질환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한 신장암세포 제거술후 면역요법은 독성위험이 높아 보조제로 고려돼서는 안된다며, 최근 등장한 경구용 키나제 억제제 등을 통해 독성을 줄인 상태에서 재발을 유의하게 예방할 수 있다면 완치에 가까운 치료가 가능하다는 가설이 강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암환자의 3분의 1은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과 같은 생활습관 조절만으로도 상당수의 암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조기진단과 함께 초기암의 치료율도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암은 여전히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도전중인 암의 만성질환화가 전반적으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암극복 여정에 큰 우군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일련의 가능성은 아직 상당수가 가설단계로 현실화를 위해서는 갈길이 멀다는 의견도 많다.
 1·2·3·4차 항암요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규 표적항암제들의 지속적인 개발과 임상결과의 축적은 물론, 암의 만성질환화 시대가 불러 올 약제비 상승과 이로 인한 치료비 부담확대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이상돈 기자 sdlee@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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