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학과, 병리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전공의 모집 참패 ... 결국 의료계 전반의 부실로 이어질 것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시스템(system)이란 여러 개의 독립된 구성 인자가 고유의 기능을 갖고, 전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유기적으로 겹합돼 있는 집합체다. 물론 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겠지만 공통된 의미는 비슷할 것이다.

최근 2019년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전공의 모집 시스템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공의 모집은 몇 년 후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라 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비뇨기과, 외과 등이 전공의 부족으로 이슈가 됐지만, 이번처럼 처참한 성적은 아니었다.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학과는 그야말로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6명을 목표한 핵의학과는 1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고, 병리학과는 68명 모집에 18명, 방사선종양학과도 25명 모집에 5명 모집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핵의학과, 병리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이들 진료과의 추락은 결코 이들만의 위축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댐의 붕괴가 작은 실 구멍으로부터 시작하듯 의료계 가장 아래쪽을 떠받들고 있는 이들 진료과의 위험 사인은 의료계 전반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 얘기다. 

"지난해 핵의학 전공의 2명 중 1명은 내과로 전과"

대한병리학회 이건국 이사장(국립암센터 병리과)은 병리학과 의사가 부족하면 진료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 이사장은 "병리과 의사가 부족하면 진단 자체에 여러 가지 에러가 날 수 있다. 또 병리학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데. 인력이 부족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병리과는 임상 의사의 진료를 서포트하는 진료과다. 제 역할을 못 하면 결국 임상 의사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대외협력이사(서울대병원 핵의학과)도 같은 맥락의 말을 쏟아냈다. 

강 대외협력이사는 "핵의학 분야에 새로운 검사법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다. 핵의학과의 부실이 핵의학과의 부실에서 끝나지 않는다"며 "기초분야가 튼튼해야 임상도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핵의학을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해 전공의 2명을 채용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내과로 전과했다. 올해는 겨우 1명이 지원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며 "전공의들이 부족해도 지금은 전문의들이 있어 핵의학 검사를 진행하지만 4년 정도 지나면 아예 검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복지부 큰 시각에서 그림 그려야"  

관련 전문가는 이들 진료과가 이렇게 벼랑 끝에 몰리게 된 배경에 정부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전산화단층촬영(CT), PET(양전자 단층촬영) 급여화다.

이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곳은 핵의학과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생활 속 질병통계 100선' 통계에 따르면, CT는 검사를 받은 환자 수가 2012년 411만 8434명에서 2016년 513만 9149명으로 22.5%인 102만715명이 증가해 연평균 5.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검사로 인한 진료비도 같은 기간 8328억원에서 지난해 1조471억원으로 25.7%인 2143억원까지 증가하며 5.9% 증가율을 보였다.

PET은 적응증이 축소되고 급여기준이 변경되면서 사용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같은 기간 PET 검사를 한 환자수는 27만1282명에서 2016년 15만1631명으로 11만9651명까지 감소하는 등 연평균 13.5%가 감소했다. 특히 2015년 PET 실시 환자수가 전년 대비 45.1%까지 감소했고 총사용량도 전년 대비 61.9%로 감소했다.

핵의학회 강 대외협력이사는 "암 조기발견을 위해 PET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삭감돼 대부분 CT와 MRI로 전환됐다"며 "우리 병원에서 CT와 MRI를 촬영하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며 "젊은 친구들은 당장 취직할 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복지부가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이렇게 정책을 하니 어떤 전공의가 핵의학과를 지원하겠냐"라고 비판했다. 

해결을 위해 강 대외협력이사는 복지부가 비급여를 다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PET 촬영이 필요한 환자들은 선택에 따라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리학, 검체검사료와 분리해야"

병리학회 이 이사장은 복지부가 병리학 관련 수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체검사료와 묶여 있는 것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이사장의 주장은 이랬다. 병리과는 현저하게 낮게 수가가 책정돼 있다. 게다가 검체검사료와 묶여 있어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 수익에 도움이 돼야 사람도 더 채용하고 투자도 하는데, 지금과 같은 수가체계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몇 년 번부터 불기 시작한 AI 바람도 한몫했다는 불만 섞인 얘기도 꺼냈다. 

이 이사장은 "인공지능(AI)나 빅데이터 바람이 불면서 병리과나 영상의학과는 없어질 것이란 얘기나 유행했다. 그런데 이 얘기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지면서 젊은 의사들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지금도 의학 등에서 강의하는 교수들이 피상적 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 중 병원에 근무하는 병리학과 의사를 제외한 것도 한 요인이란 게 이 이사장의 분석이다. 

▲ 대한방사선종양학회 우홍균 국제협력이사

"취직할 곳 많지 않고, 처우도 좋지 않아"

방사선종양학회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대한방사선종양학회 우홍균 국제협력이사(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은 수가보다는 의사가 취직할 곳이 없고, 서울 몇 개 병원 외에는 처우가 좋지 않다는 직설적인 얘기를 꺼냈다. 

우 국제협력이사는 "얼마 전까지는 지원자가 20~27명 정도에서 점점 감소하더니 올해 5명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병원에 TO가 없어서다"라며 "방사선종양을 전공해도 갈 곳이 없고, 빅 5병원을 제외하면 먹고 살기가 빠듯해 전공의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암환자 수가 증가해 6만명~6만 5000명 정도다. 그런데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는 300명 정도다. 1인당 2000명 정도를 진료하고 있다"며 "정부가 대학병원들이 방사선종양 의사를 뽑도록 정책을 바꾸고, 그동안 흉부외과나 외과 등을 지원했듯 핵의학과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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