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해진 '글로벌 신약 약가우대'…"믿고 싶지 않았다"
유명무실해진 '글로벌 신약 약가우대'…"믿고 싶지 않았다"
  • 양영구 기자
  • 승인 2018.11.14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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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형 제약기업 제외에 약가우대 조건 높은 벽
국내사·외자사 '모두' 외치는 반대 목소리…"미국에 굴복했다" 비판도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 개선안을 놓고 제약업계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는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이 맞느냐"며 의심까지 하는 상황이고, 이번 약가 우대 개선안을 기대했던 다국적 제약업계도 결과가 부족하다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약가우대 개선안을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한국과 미국 양측이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를 한미 FTA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개정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했고, 그에 부합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제약업계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표 연기하며 고심했던 개정안…유명무실 불가피

한 차례 발표를 연기하며 고심했던 약가우대 개정안이지만, 쓸모 없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앞서 지난 2일 정부는 개정안 공표를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시기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개정안 초안을 10월 31일까지 공표했어야 했지만, 조금 더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일정도 중요하지만 내용도 중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발표된 개정안에는 약가 우대 대상 의약품의 조건으로 기업 조건과 품목 조건을 제시했다. 

먼저 기업 조건을 보면, WHO 추천 필수의약품 또는 국가필수의약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기업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요건에서 사라졌다. 연구개발과 신약개발을 유인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필수의약품 공급 노력을 연계해 조건을 완화한 것이다.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하더라도 공급의무 위반 또는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았거나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업체는 제외된다. 다만, 이는 이전 이력은 문제삼지 않겠다는 게 정부 측의 입장이다. 

품목조건을 살펴보면 더 까다로워진다. 

품목조건에는 ▲새로운 기전 또는 물질 ▲대체 가능한 다른 치료법(약제 포함) 없음 ▲생존기간의 상당한 연장 등 임상적 유용성 개선 입증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획기적의약품 지정(BTD) 또는 유럽 의약청(EMA) 신속심사 적용 ▲희귀질환 치료제 또는 항암제 등 5개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약가우대 높은 벽…"미국 입맛 맞춘 꼴"

업계가 분노하는 가장 큰 부분은 품목 조건이다. 

지난 2016년 7월 처음 제정된 신약 약가 우대제도는 제약사의 신약의 약가를 높이 책정해 제약사의 국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국민보건향상 등을 꾀하기 위해 마련됐다. 

처음 제정할 때 혁신 신약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국내에서 전 공정생산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간 공동개발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경우였다.  

하지만 올해 초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을 다수 보유한 미국 정부가 국내 제약사만 유리한 조치라며 수정을 요구해왔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연내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미국 측이 워낙 강력하게 주장한 사항이어서 개정안이 나오기 전부터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제약산업을 한미 FTA 개정 협상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실제 개정안이 예상보다 더 혁신신약 인정을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오자 국내 제약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5개의 요건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혁신적 신약을 개발하는 건 언감생심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약가정책이라며,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의약품 정책 수립에 미국 FDA나 유럽 EMA의 신속심사 승인을 조건으로 삼은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며 "국내 제약사들에게 연구개발을 사실상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과연 어느 나라 정부의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라며 "미국 제약기업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 정부가 대한민국 미래성장동력의 밑거름인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무참히 짓밟았다"고 비난했다. 

시민사회계도 합세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신속허가를 받은 희귀의약품과 항암제만 인정하도록 해 국내사가 아닌 다국적사에게만 길을 터줬다"며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다국적 제약사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한 관계자도 "FDA나 EMA 심사 결과가 요건에 포함된 건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에 유리한 조건으로, 국내 개발 신약에는 약가 우대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눈 의심한 제약업계…"믿고싶지 않았다"

개정안이 발표되자 업계는 이른바 '패닉'상태다. 

어려운 국내 현실 속에서 꾸준한 기술수출과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에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업계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약을 개발하는 A제약사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역차별론'을 제기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주장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 스스로 다국적 제약기업에 대한 차별을 인정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개발 신약을 정부에서 우대해주진 못할망정 정책은 되레 후퇴하고 있다"며 "국산 신약에 대한 제대로 된 약가 정책이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 비해 신약개발 역사가 짧은 국내 제약업계가 모든 요건을 충족시킨 신약을 개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하며, 이번 개정안은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B제약사 관계자는 "개정안대로라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산 신약을 없을 것이다. 이번에 기술수출한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도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앞에서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라고 추켜세우면서 뒤로는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 행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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