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병상 이하 중소병원 역할론 '드라이브'...정책 반영 가능성 높아져
시대적 요구는 '의료 질·효율성'..."지역 지키며 헌신했건만" 허탈·반발

 

[메디칼업저버 고신정 기자] "병상공급이 많은 지역에서 입원 의료이용과 재입원은 늘었지만, 정작 사망률이 낮아지거나 대도시 환자 유출을 막는 효과는 없거나 미미했다. 병상의 절대적 총량을 늘리기보다는 의료의 질과 효율성 측면에서 중소병원의 진료기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소병원 역할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발단이 된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건강보험 의료이용지도(KNHI_Atlas) 구축 연구(연구책임자 서울의대 김윤 교수)'. 

연구팀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역 내 의료자원과 의료이용·건강결과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 환자 사망률과 재입원율이 지역별로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으며, 이러한 차이를 부른 핵심변수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존재 여부와 그 지역의 병상을 누가 많이 갖고 있느냐에서 갈렸다고 밝혔다.

300병상 이상의 종합(거점)병원이 존재하고 이들 종합병원이 보유한 병상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환자의 사망률과 재입원율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낮게 나타났으며, 반대로 지역 내 종합병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이 가진 병상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입원 의료이용과 재입원율은 늘었지만, 환자의 사망률이 낮아지거나 대도시 환자 유출을 막는 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이 연구의 중간결과다.

지역별 사망률·재입원률 2배 이상 격차
"변수는 병상 수 아닌, 병상 공급 형태 "

첫째는 사망비 비교다. 연구팀에 따르면 전국에서 사망비가 가장 낮은 강릉·평창(0.8)의 경우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의 개수가 6.6개로 전국 평균(6.2개)보다 많기도 했지만, 지역 내에 700병상급의 지역거점 지역거점 의료기관이 존재했고, 지역 내 급성기 병상의 63%를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서 공급하고 있었다.

반대로 전국에서 가장 사망비가 가장 높은 이천·여주(1.7)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 자체(3.7개)도 낮은 수준이었으나, 지역 내 급성기 병상의 100%를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이 보유하고 있었으며, 자체충족률 즉 지역내 의료이용률 또한 45.5%로 전국 평균(64%)에 못미쳤다.

재입원률 분석결과도 유사하다. 재입원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천안·아산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5.7개로 전국 평국보다 낮았으나, 지역 내 급성기 병상의 40%를 300병상 종합병원에서 공급했고, 지역 거점 의료기관 기능을 하는 종합병원이 존재했다.

반대로 재입원율이 가장 높은 여수는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9.6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에 속했지만, 지역 내 급성기 병상의 87%를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에서 공급했고, 지역거점 의료기관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은 없었다.

종합하자면 지역 내 인구당 급성기 병상의 숫자 자체가 아닌, 그것을 누가 제공하느냐가 환자 사망률과 재입원률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은 공단의 수장이 된 김용익 이사장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그려온  '의료정상화 청사진'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김용익 이사장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만 신규개설 허용 △중소병원 인수합병 및 퇴출구조 마련 △입원중심 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 및 수가가산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역건강 지켜왔는데" 
중소병원계 '허탈'

중소병원계는 반발하고 있다. 의료기관이 부족했던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왔는데, 이번 연구결과로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당했다는 상실감이 크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 박진규 공동 회장은 "우리나라 의료계가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높은 의료 접근성과 낮은 의료비, 좋은 아웃컴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중소병원들은 낮은 수가에도 불구 그간 지역민을 근접거리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해왔다. 이런 가치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개별 병원의 아웃컴과는 무관한 지역 사망률을 의료자원 분포현황과 연결해, 마치 중소병원에서 치료받으면 환자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연구결과에 따른 해법이 300병상 이하 병원의 신규개설을 막는 이른바 '김용익 청사진'으로 연결되는데도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300병상 이하 병원의 신규진입을 막는 것이 의료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현재 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대형병원의 거대화와 이에 따른 환자쏠림이다.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을 정리하고, 지역 내에 대규모 병원을 짓게 한다는 접근 방식은 전달체계 왜곡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새 시대적 가치는 의료 질·효율성" 
중소병원 존재이유를 묻다

연구팀은 '의료의 질' 이라는 새로운 가치 추구를 위한 작업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윤 교수는 "급성기 병상 수의 규모, 즉 양은 의료이용에는 영향을 줬지만 사망률 감소 등 의료결과를 양호하게 하지는 못했다"며 "병상 공급량이 아닌 공급구조가 의료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연구의 시사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의 지향점이 병상 수 통제가 아닌, 의료 질 향상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중소병원을 정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의료 질을 높이는 측면에서 자원관리를 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국내 급성기 병상이 과잉 상태라는 것이 여러 통계에서 확인된 만큼 더 이상의 병상 개설은 권장할 수 없다"며 "다만 300병상 종합병원의 유무가 지역 의료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됐으니, 이들에 한해 추가로 개설 허가를 내는 것이 이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개설·운영 중인 중소병원이나, 이들이 보유한 급성기 병상을 규제하는 방식의 접근을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연구결과를 둘러싼 논박을 떠나, 해당 연구결과가 향후 정책 방향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당장 지역별 병상총량제 시행의 근거가 될 개정 의료법의 후속조치가 예정돼 있고, 공공의료 발전 종합계획의 세부 이행방안 수립과 향후 이어질 전달체계 개편 작업도 해당 이슈와 무관치 않다.   

복지부는 최근 국회에 보낸 서면답변에서 "병상 과잉지역은 신증설을 억제하고, 300병상 이상 규모의 병상을 필요한 지역에 늘리는 방향으로, 병상 수급 시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병원계는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박진규 회장은 "중소병원들이 보다 안정적 환경에서 지역민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연구결과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한편, 중소병원협의회를 통해 공단 김용익 이사장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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