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00만명 코호트 분석 결과, 10년 이상 복용 시 ARB 복용군 대비 폐암 발생 위험 31% ↑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항고혈압제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Angiotensin-Converting-Enzyme Inhibitor, ACEI)'가 폐암 유발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100만명 코호트를 분석한 결과, ACEI를 10년 이상 복용한 고혈압 환자는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Angiotensin Receptor Blocker, ARB)를 복용한 이들보다 폐암 발생 위험이 31% 상승했다(BMJ 지난달 24일자 온라인판).

이번 연구는 대규모 환자를 추적관찰해 ACEI와 폐암과의 연관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연구 결과 발표 후 학계에서는 고혈압 환자의 기대수명을 고려해 ACEI를 처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ACEI로 얻을 수 있는 혈압 강하 등 혜택을 고려해 임의로 치료를 중단해선 안 되며 향후 장기간 안전성을 평가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CEI-폐암, 공통된 생물학적 기전 '공유'

학계에서는 ACEI 작용 기전과 폐암 발생 기전 간 공통분모가 있기에 ACEI를 장기간 복용하면 폐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ACEI를 복용하면 기전 상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가 억제돼 폐안에 P물질(substance P) 또는 브레드키닌(bradykinin) 물질이 축적된다. 이를 통해 ACEI의 주된 이상반응인 마른기침이 유발된다고 추정된다.

브레드키닌은 주요 생체외 연구나 동물실험에서 폐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졌으며, P물질은 폐암 조직에서 발현돼 종양 증식 및 혈관 형성(angiogenesis)과 관련됐다고 보고된다.

ACEI와 폐암이 생물학적 기전을 공유한다는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학계에서는 ACEI와 폐암의 연관성을 본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일관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대 박상민 교수(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팀이 12개 코호트 연구와 16개 환자-대조군 연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CEI 또는 ARB를 복용하더라도 모든 암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상승하지 않았다(CMAJ 2011;183(14):E1073-1084). 

반면 2012년 발표된 회고적 코호트 연구에서는 ACEI 복용 시 폐암 발생 위험이 1.13배(RR 1.13; 95% CI 1.06~1.20)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PLoS One 2012;7(12):e50893).

그러나 대다수 연구가 관찰연구이며 환자 수가 적고 단기간 추적관찰했다는 한계점이 있어,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관찰을 진행한 연구가 필요했다.

이에 캐나다 맥길대학 Laurent Azoulay 교수팀은 영국 임상연구데이터링크(Clinical Practice Research. Datalink, CPRD)를 이용해 ACEI 또는 ARB 복용에 따른 폐암 발생 위험을 비교·평가했다.

5년 이상 ACEI 복용한 환자군, 폐암 위험 '껑충'

연구에는 1995~2015년에 새롭게 항고혈압제를 처방받은 약 100만명 데이터가 포함됐다. 전체 환자군 중 △ACEI 복용군은 33만 5000여명 △ARB 복용군은 3만여명 △ACEI/ARB 복용군은 10만 2000여명이었다. 고혈압 환자에게 주로 처방된 ACEI는 라미프릴(26%), 리시노프릴(12%), 페린도프릴(7%) 순이었다.

평균 추적관찰 6.4년 동안 폐암이 발생한 환자는 약 8000명으로, 1000인년(person-years) 당 1.3명으로 파악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ACEI 또는 ARB 복용에 따른 폐암 발생 위험을 비교한 결과, ACEI 복용군이 ARB 복용군 대비 1.1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HR 1.14; 95% CI 1.01~1.29). 각 환자군의 발생률은 ACEI 복용군이 1000인년 당 1.6명, ARB 복용군이 1.2명이었다.

ACEI와 폐암과의 연관성은 ACEI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ACEI 또는 ARB 복용 기간이 5년 미만이라면, ACEI 복용군의 폐암 발생 위험은 ARB 복용군보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상승하지 않았다(HR 1.10; 95% CI 0.96~1.25).

그러나 5년을 전환점으로 5~10년간 ACEI를 복용한 환자군에서 폐암 발생 위험이 ARB 복용군보다 1.22배 높았고(HR 1.22; 95% CI 1.06~1.40), 10년 이상 복용했다면 1.31배로 그 위험이 정점을 찍었다(HR 1.31; 95% CI 1.08~1.59).

Azoulay 교수는 논문을 통해 "이번 연구는 약 100만명을 대상으로 ACEI와 폐암과의 상관관계를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ACEI를 5년 이상 복용했을 때 폐암 위험이 상승했다. ACEI와 폐암의 잠재적인 연관성을 고려해, 향후 장기간 ACEI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군을 대상으로 폐암 발생 위험을 분석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폐암 우려로 치료 중단 안 돼…안전성 평가 연구로 연관성 확실히 입증해야"

다만 폐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임의로 ACEI 복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게 연구팀의 전언이다. ACEI와 폐암의 연관성을 인지해야 하지만, ACEI의 혈압 강하 등 혜택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Azoulay 교수는 "ACEI가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고혈압 환자가 ACEI를 복용함으로써 혜택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려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며 "향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ACEI와 폐암의 연관성을 확실히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Deirdre Cronin Fenton 교수는 논평을 통해 "ACEI의 장기간 안전성을 평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연구팀 의견에 동의한다"며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을 치료하기 위해 ACEI 또는 ARB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이 폐암 발생에 대한 우려로 치료를 중단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요했다.

이어 "ACEI 복용군이 ARB 복용군보다 폐암 발생 위험이 14% 상승했지만 절대적인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ACEI 복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환자 개개인별로 장기간 ACEI 복용에 따른 폐암 발생 위험 및 기대수명 등을 고려해 치료해야 한다. 향후 ACEI의 장기간 안전성을 본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 세계적인 의료정보 사이트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서는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연구팀처럼 임상에서 ACEI 처방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일각에서는 무작위 연구가 아니기에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며 ACEI 복용 후 마른기침 때문에 검사를 받아 폐암을 조기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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