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및 진료 현장에서 정신과적 증상 없는 자해 청소년 증가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채정호 위원장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이 SNS에 의지하면서 자해 빈도 늘어"

▲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채정호 위원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나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손을 내미세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해' 관련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글귀다. 과거에는 자살 예방 문구로 쓰였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 관련 검색과 게시글이 늘자 자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같은 글귀가 추가됐다.

최근 학교와 진료 현장에서는 '청소년 자해'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본인을 정신과 의사라고 밝힌 한 청원자가 "자해 청소년의 수가 2018년 1학기부터 늘기 시작했다"며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한 반에 하나, 둘은 꼭 있고, 저를 포함한 정신과 의사들은 하루에도 손목 긋기 자해를 포함한 여러 아이의 자해를 진료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청소년 자해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채정호 위원장(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은 "오프라인에서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이 SNS에 자해 인증 글을 올리며 자신의 답답함을 털어놓고 의지하면서 그 빈도가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 청소년 자해 문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대책 등을 들어봤다. 

- 청소년 자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실제 자해 문제로 진료를 받는 청소년이 과거와 비교해 늘었나? 

너무 많이 늘었다. 정신과에서 자해 행위는 늘 볼 수 있었던 현상이었다. 문제는 과거의 경우 심각한 성격장애, 우울증 등 다른 정신과적 증상이 있는 이들이 자해했다면, 최근에는 자해할 정도의 증상이 없는 청소년들이 자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한 반에 몇 명은 자해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해하는 청소년이 폭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자해를 시작하는 나이도 어려지고 있어 문제다.

- 청소년 자해가 증가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자해하는 청소년은 정서적으로 힘들고 답답해 마음이 터질 것 같지만, 오프라인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SNS가 발달하면서 청소년들이 SNS에 자해 인증 글을 올리며 자신의 답답함을 털어놓고 의지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SNS에 자해 인증 글이 많아지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해를 하고 있으며, 이른바 '자해러' 등의 집단도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SNS에 자해 인증 글을 올리는 행동을 소위 '관종(관심병)'이라고 하지만, 너무 다른 의미다. 관심이란 힘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날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해는 본인이 너무 힘들어 이 행위 외에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자해는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과 다르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채정호 위원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 청소년 자해가 늘면서 학교 및 진료 현장에서 혼란은 없나?

최근 청소년 자해가 증가해 학교뿐 아니라 정신과 의료진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료진들이 수련받을 당시 자해하는 청소년은 성격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해가 일어나고 있어 담임교사나 상담교사, 정신과 의료진들도 당황스러운 게 크다.

- 청소년들의 자해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자해를 막는 것은 어렵다. 청소년들이 자해하는 이유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 자해하는 것이다.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자해하지 말라는 말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해하는 청소년에게 부모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힘든지 물어보면, 자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힘들다고 답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같이 울어주거나 본인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 결국 자해하는 청소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이들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청소년 자해는 정신과 의사가 진료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역시 아니다. 집에서는 부모, 학교에서는 담임교사 및 상담교사 등이 모두 도와야 아이들의 답답함이 해소된다. 우리가 청소년 자해 문제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이유는 부모, 교사, 의료진 등이 자해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아이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아이들이 힘들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이들도 본인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자해 빈도가 줄게 될 것이다.

▲ SNS에 자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자해를 막기 위한 글귀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 SNS를 통해 확산되는 자해 인증 문화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현재 SNS에 자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자해 인증 글이 바로 보이지 않고 자해를 막기 위한 글귀가 먼저 보이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는데, 몇 달 전부터 청소년 자해 문제를 말하면서 관련 글귀가 SNS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해 인증 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인증 글이 노출되기 전 한 단계로 자해를 막기 위한 글귀가 보이는 것일 뿐, 자해 인증 글은 계속 올라온다.

자해 인증 문화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막을 수 있는 문턱을 넘어섰다. 이제는 부모와 사회가 이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수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들의 힘든 마음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자해하는 청소년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 지난달 열린 '자해 대유행 특별 심포지엄'에서 'SENSI 네트워크'를 발족했다. 네트워크 목적과 향후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심포지엄에 참석한 교사, 의료진 등으로 구성된 민간 네트워크 안에서 청소년 자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사회에 문제점을 발제하고자 구축됐다. SEcure Network for Self Injury의 약자다.

네트워크 발족 후 가장 먼저 자해하는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심포지엄 당일 자해하는 청소년을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나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네트워크에서 부모와 상담교사를 대상으로 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가능한 연내에 탈고해 내년 초에는 발간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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