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토론회서 의료계-시민사회 격론 오가...이재명 도지사 "불필요하다면 정책 중단"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사회계가 격론을 벌였다. 

의료계는 극소수의 부도덕한 의사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전 의료인을 범죄인 취급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등 시민사회계는 범죄 예방을 위해, 그리고 의료사고 대비를 위해 수술실 CCTV는 필요하다고 맞섰다. 

경기도 이재명 도지사는 12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설치 시범운영에 따른 토론회'를 개최했다. 

▲ 경기도 이재명 도지사는 12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경기도의료원 산하병원 수술실 CCTV 시범운영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 도지사는 CCTV 설치·운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경기도 "도민 10명 중 9명, CCTV 운영 '찬성'"

앞서 경기도는 지난 1일부터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을 시작으로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나 환자 가족이 동의할 경우 수술장면을 CCTV로 촬영하고, 원하는 환자에게만 촬영 내용을 공개하며, 1개월이 지난 후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경기도는 도민 10명 중 9명은 CCTV 설치·운영에 찬성했다. 

경기도가 자체적으로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도민 91%는 수술실 CCTV 설치·운영에 찬성했다. 도민 93%는 의료사고 분쟁 해소를 위해 CCTV 설치·운영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고, 87%의 도민은 본인이 수술받을 때 CCTV 촬영에 동의하겠다고 했다. 

반면, 약 10%의 도민은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며 CCTV 설치·운영에 반대했다. 

실제 1일부터 CCTV를 설치·운영 중인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 따르면 10일 동안 총 54건의 수술이 진행됐는데, 이 중 24건의 수술은 CCTV 촬영에 동의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정일웅 원장은 "시범시행 기간 동안 매뉴얼과 정보보호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수술실 CCTV 운영 정책을 펼치는 경기도에 의료인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경기도의사회 측은 CCTV 설치·운영은 의사를 비롯한 수술실 안 의료인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기도의사회가 회원 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78%는 CCTV 촬영에 반대했다. 수술 시 집중도가 저하되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소신진료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환자가 CCTV 촬영을 요구한다면 다른 의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응답은 48.3%에 달했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의사들이 CCTV를 통해 감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술 시 집중하지 못하고, 소신진료를 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은 의사-환자간 갈등을 조장할 뿐 아니라 의료인을 범죄자로 몰아가 모멸감까지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진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비판도 했다. 

이 회장은 "근로자를 감시하는 건 인권침해 행위의 하나다. 의사도 근로자인 만큼 근로행위를 CCTV로 감시하는 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CCTV 설치가 유령수술, 대리수술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CCTV를 설치·운영함으로써 범죄가 예방되고,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의 결백을 밝혀줄 것이라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라며 "범죄 예방이 이유라면 도청에도, 탈의실에도 CCTV를 설치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매우 이율배반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경기도의사회 강중구 부의장은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은 의료인의 인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환자의 인권과 알권리를 존중하는 선진국 그 어느나라도 감시 목적으로 CCTV를 설치·운영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범죄예방, 의료분쟁 해소 등을 위해 수술실 CCTV 운영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이를 위한 방안으로 CCTV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응할 방안도 제시했다.

"CCTV, 범죄 예방 위해 필요해"

반면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 등 시민사회계는 극소수일지라도 수술실 안에서 이뤄지는 범죄 예방을 위해 CCTV 설치·운영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건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처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극소수지만 CCTV 설치·운영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수술실에 CCTV가 설치·운영된다면 대리수술, 유령수술 등 범법행위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자도 사생활침해에 대한 부담이 있음에도 이를 요구하는 건 환자의 인권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대비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례로 오른편 무릎 수술이 예정됐지만 멀쩡한 왼쪽 무릎을 수술했다거나, 신체 어딘가에 가위 등 수술도구가 남겨진 걸 모른 채 봉합하는 등의 사고를 대비하자는 주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신희원 경기지회장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됐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인권침해 문제를 떠나 잘못된 의료행위에 대한 확인 차원에서라도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민사회계의 주장에 이재명 도지사도 힘을 보탰다. 과거 경찰이 과속단속을 은폐한 상태에서 진행할 때는 적발 차원이었지만, 지금처럼 과속방지카메라를 미리 예고하는 건 범죄 예방 차원인 만큼 수수실 CCTV도 같은 취지라는 주장이다.  

이 도지사는 "수술실에 CCTV가 설치·운영되면 최소한 성추행과 같은 범죄행위는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며 "의료인들의 우려는 알고 있지만, 감시의 목적이 아니라는 취지에 공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지사는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은 대다수의 선량한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며 "특히 수술 시 환자는 마취된 무방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한다면 환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계가 보는 대안은?

의료계가 수술실 CCTV 설치·운영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대안은 시민사회계에서 나왔다. 

시민사회계는 ▲대리수술·유령수술 처벌 강화 ▲면허 박탈 ▲내부 제보자 보호 등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환자단체 안기종 대표는 "CCTV가 대안이 아니라면 유령수술·대리수술을 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하게 하면되고, 자격정지에서 그칠 게 아니라 이들의 면허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며 "또 내부제보자에 대한 처벌을 감경하는 한편, 경제적 보상이 뒤따른다면 유령수술·대리수술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다만, 이러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실명공개는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경기도는 향후 의견수렴과 내부 토론을 통해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되면 폐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도지사는 "의사의 권위와 직업수행의 자유가 침해된다면, 그로 인해 이익이 없다면 충분히 양보할 생각도 있다"며 "압도적인 수의 선량한 의사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의견 모아보고 내부적으로 토론을 진행,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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