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의사과학자 되기는 ‘하늘의 별’ 개인 의지로는 한계…정부 지원 절실

 

가상현실, 정밀의료, AI 등 의료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이에 걸맞은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의사과학자(Physician-Scientist) 양성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사과학자란, 인턴·레지던트의 임상수련을 마치고 전업으로 대학원에서 연구방법을 배우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 

진화하는 미래 의학을 쫓으려면 임상과 과학을 모두 잘 아는 이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또 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의 수요를 기초과학 연구 성과와 연계해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도 의사과학자의 존재는 핵심이다. 그런데 국내에는 의사과학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의사과학자 되기는 너무 힘들어" 

우리나라에 의사과학자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국내 의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의사가 수련을 마치면 개원하기 때문에 임상의사는 많은데, 연구하는 의사는 늘 부족하다. 그렇다면 왜 의사들이 임상에 집착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과학자가 되려면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후 전일제 대학원에서 다시 오랜 기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향후 진로에 대한 불안 등은 모두 개인의 몫이 된다. 

의사과학자가 되는 과정도 험난하다. 일주일 대부분을 진료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전일제 대학원에서 연구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결국 충분한 연구 시간을 갖지 못해 세상을 바꿀 연구는 기대하기 어렵다. 진료와 연구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의사과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최형진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의사과학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낀 장본인이다. 

최 교수는 "4년 전 모 국립대병원에서 내분비내과 임상교수로 진료를  했는데, 연구도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을 내기 어려워 결국 진료실을 떠나기로 했다"며 "의사과학자가 되려면 전문의 수준의 진료경험과 자연과학 분야 첨단연구기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처럼 일부 시간만 할애해 연구하는 것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연구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어렵게 의사과학자가 돼도 앞날은 장밋빛이 아니다. 채용하는 곳이 많지 않다. 대학, 기업 등에 자리가 없고, 병원도 마찬가지다. 

2013년부터 시작한 연구중심병원이 의사과학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리라 기대했지만, 10개의 연구중심병원 자체가 한계에 부딪혀 연구 분위기를 확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국립보건원, 1년에 170명 의사과학자 배출

이렇게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과학자는 의료계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임이 틀림없다. 미국과 일본 등이 국가가 나서 지원하는 이유는 의사과학자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유도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1964년부터 보건+과학+공학을 접목한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MSTP)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약 170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하고 있다. 최근 15년간 1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이 프로그램 출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미래 의학의 발전을 위해 의사과학자는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고, 정부가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대 신찬수 학장은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산업인 의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에 도움이 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정부와 의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정부가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의대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수련을 마친 의사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라고 강조한다. 

복지부, 2019년 50억원 지원 예정 

의사과학자 육성은 현장의 필요이지만 동시에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의료산업 혁신을 위해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가 '바이오-메디컬 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의사 양성 및 병원 혁신전략’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연구 역량을 갖춘 병원을 중심으로 '수련 전공의→신진의→중견의사'에 이르는 경력 단계별 임상연구의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복지부와 과기정통부는 의사의 진료시간을 단축해 연구시간을 보장하고, 의사가 병원과 정부로부터 연구공간과 장비, 연구비를 받아 연구자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8월에는 복지부가 2019년 50억원을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원은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된다. 우선 수련 전공의 과정에 있는 2~4년차 전공의 중 희망자를 선발해 임상수련과 병행하는 교육·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하다. 다른 하나는 수련을 마친 전문의 중 희망자를 선발해 석·박사 학위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내년 의과대학 중 시범기관을 선정하고, 연구역량이 우수한 병원을 주관기관으로 선정해 개방형 실험실을 구축할 것"이라며 "병원 내부의 개방형 연구실을 외부기관과 공유할 수 있도록 보강할 계획"이다. 또 “임상의사가 개방형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료시간 단축과 연구비 지원 등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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