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혜 기자.

국내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 등 11명이 치료 목적의 대마 사용을 허용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됐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7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자가치료를 위한 의료용 마약 또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국내에 대체 치료 수단이 없는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은 치료 목적의 의료용 대마를 수입해 사용할 수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최초로 승인한 대마 성분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도 구입 가능하다. 이때 의사의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수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의료용 대마의 경우 민간에서 자유롭게 유통을 허용해 달라'는 주장이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단순 대마 성분의 카나비디올(cannabidiol, CBD) 오일, 추출물 등을 건강기능식품처럼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반인이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 의료용 대마를 구입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없을까. 

기자가 만난 A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용 대마의 주성분인 CBD는 중독성이 없는 성분"이라면서도 "이를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 민간에서 자유롭게 사용한다면 '정신적 의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용 대마 오남용도 문제다. 의약품은 식약처의 엄격한 통제 하에 유통이 진행된다. 하지만 CBD 오일이나 추출물 등은 상대적으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는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대마의약품 수입·유통·관리 정착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의료용 대마의 유통 및 사용 이력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범사업은 아직 준비 단계로 최종 결과물을 공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떠한 결과물도 없이 의료용 대마의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한다면, 그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오남용 문제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합법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 희귀 뇌전증 환자 등에게 의료용 대마가 효과를 보이고 국내에서도 치료가 절실한 환자가 있기에 의료용 대마 합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료용 대마 유통을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적 장치 역시 부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 민간인이 의료용 대마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란 생각이다.

의료용 대마는 만병 통치약도 기적의 약도 아니다. 엄격한 임상시험 하에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환자군에게 투약해야 하는 '의약품'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 의료용 대마는 대체 치료가 없어 그 무엇보다 치료가 간절한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을 위한 의약품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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