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도구' 국내 적용 어려워
국내 심장학계 "한국형 평가도구 개발 필요…핵심은 연구 활성화"
이 같은 차이는 국내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심장학계는 미국과 유럽 가이드라인을 수용·개작해 진료지침을 발표하기에, 미국과 유럽 가이드라인에 중요한 변화가 있으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고려해 이를 국내 임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지난해 ACC·AHA가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로 낮추고 혈압 분류에 변화를 주면서 국내 임상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과적으로 대한고혈압학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는데 그 배경에는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있다.
지난 5월 열린 대한고혈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연세의대 김현창 교수(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과)는 변화된 미국 심장학계 혈압 분류를 국내에 적용했을 때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심장학계의 새로운 혈압 분류 기준을 국내에 적용하면 기존 고혈압 전단계에 해당했던 이들의 70% 이상이 고혈압 1단계로, 그 외에는 상승혈압으로 재분류됐다. 그런데 상승혈압으로 분류된 그룹보다 고혈압 1단계에 속한 이들이 더 젊었고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비중이 적었다.
즉 ASCVD 위험척도를 국내에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고려하지 않고 변화된 미국 심장학계 혈압 분류만 차용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아울러 국내 고혈압 진료지침이나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도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특정 위험척도를 이용해 치료방법을 결정하지 않는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진료지침위원회 정인경 위원장(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은 "ASCVD 위험척도가 한국인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그대로 적용하기 전에 우리나라만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구 개발이 필요하다. 때문에 국내 진료지침에는 ACC·AHA 지질관리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향적 관찰연구 등을 근거로 만든 한국형 평가도구 필요"
이에 국내에서는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에서는 고혈압 환자를 동반질환과 위험요인 개수에 따라 저위험군, 중위험군, 고위험군 등으로 분류하는 수준이며, 아직 개인별 위험도 평가도구를 채택하지는 않고 있다.
고혈압 위험도 분류에 KMIC(Korean Medical Insurance Corporation) 자료 등을 이용하지만 90년대 초에 등록된 자료이며 연령대가 35~59세로 비교적 젊고,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 특성상 저위험군에 해당해, 전체 인구집단을 대표하는 고혈압 절대위험도 평가에는 제한점이 있다.
한국인 심장연구(Korean Heart Study)에서 개발한 ASCVD 10년 위험 예측 모델은 남녀 모두에서 한국인의 심뇌혈관질환을 잘 예측했지만(BMJ Open. 2014;4(5):e005025),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고혈압 및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 소개는 됐으나, 치료 결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결국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 개발을 위해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향적 관찰연구 등 국내 연구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인하의대 윤혜원 교수(인하대병원 신경과)는 "국내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산출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부분 진료지침에서 KMIC 연구를 활용하고 있으나 이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국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산출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고혈압학회 조명찬 이사장(충북대병원 심장내과)은 "ASCVD 위험척도는 한국인에게 맞지 않는다.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를 개발해야만 진료지침에서 높은 권고 등급과 근거 수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학회와 함께 연구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이뤄져야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평가도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연세의대 심뇌혈관 및 대사질환 원인연구센터(CMERC)는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원 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질병 위험도 테스트(http://cmerc.yuhs.ac/mobileweb/)를 개발했다.
현재 또는 향후 질병을 가질 위험을 예측하는 테스트로 △관상동맥질환 △골다공증 △당뇨병 △지방간 등 네 가지 질병에 대한 예측 결과를 제공한다. 다만 테스트 결과는 진단용으로 해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