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도구' 국내 적용 어려워
국내 심장학계 "한국형 평가도구 개발 필요…핵심은 연구 활성화"

국내외 심장학계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심혈관질환 위험도'다.심혈관질환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기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위험요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 또는 치료전략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미국과 유럽 심장학계는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고자 주요 역학연구들을 근거로 각 국가의 실정에 맞는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가이드라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그러나 국내에서는 고유한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가 부재하다. 많은 연구자가 한국인에게 적합한 평가도구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나, 임상에서 폭넓게 쓰기엔 어려운 상황이다.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 개발이 중요한 이유와 개발에 가속도가 붙는 데 필요한 점을 조명했다.미국 '프래밍험 위험점수·ASCVD 위험척도'·유럽 'SCORE 시스템' 개발미국에서 개발된 '프래밍험 위험점수(Framingham risk score)'와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위험척도'는 대표적인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로 꼽힌다. 두 평가도구 모두 대규모 심혈관질환 역학연구를 근거로 개발됐다.1970년대 개발된 프래밍험 위험점수는 '프래밍험 심장연구(Framingham Heart Study)'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성별, 나이, 흡연, 고혈압, 총 콜레스테롤, HDL-콜레스테롤, 당뇨병 등 7가지 정보를 고려해 향후 10년 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산출한다.역사가 깊은 만큼 평가도구의 타당성에 대한 평가가 꾸준히 이뤄졌으며, 미국 콜레스테롤 교육프로그램(NCEP)-ATP III(Adult Treatment Panel III) 가이드라인에서는 해당 평가도구에 따라 이상지질혈증 치료 기준 및 목표 등을 제시하고 있다.미국심장학회·심장협회(ACC·AHA)가 2013년에 제시한 ASCVD 위험척도는 프래밍험 위험점수를 대체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등장과 함께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프래밍험 심장연구와 함께 ARIC, Cardiovascular Heart Study, CARDIA 등을 통합한 대규모 코호트를 바탕으로 개발됐다.2013년 ACC·AHA 지질관리 가이드라인에서는 ASCVD 위험척도로 평가한 10년 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스타틴 치료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유럽도 대규모 코호트를 근거로 개발한 'SCORE(Systemic Coronary Risk Evaluation) 시스템'으로 10년 내 치명적인 죽상동맥경화성 사건 발생 위험을 평가한다. 유럽 개별 국가의 심혈관질환 연구 및 사망률 통계에 기반을 두고 있어, 각 국가의 심혈관질환 위험도에 따라 활용하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외국 평가도구 국내 적용하면?…심혈관질환 위험 '과대평가'미국과 유럽의 평가도구는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근거로 개발됐지만 심혈관질환 유병 특징이 우리나라와 다르고 인종간 차이가 있기에 이를 국내 임상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관상동맥질환 발생률이 높기에 미국과 유럽의 평가도구로 한국인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평가하면 실제보다 높게 예측된다.연세대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프래밍험 위험점수로 국내 허혈성 심질환 발생 위험도를 추정한 결과 모든 연령군에서 위험도가 높게 추정됐고 연령이 낮을수록 과대평가됐다(Korean Journal of Epidemiology. Vol. 28, No. 2, Dec, 2006, 162-170).

이 같은 차이는 국내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심장학계는 미국과 유럽 가이드라인을 수용·개작해 진료지침을 발표하기에, 미국과 유럽 가이드라인에 중요한 변화가 있으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고려해 이를 국내 임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지난해 ACC·AHA가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로 낮추고 혈압 분류에 변화를 주면서 국내 임상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과적으로 대한고혈압학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는데 그 배경에는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있다.

지난 5월 열린 대한고혈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연세의대 김현창 교수(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과)는 변화된 미국 심장학계 혈압 분류를 국내에 적용했을 때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심장학계의 새로운 혈압 분류 기준을 국내에 적용하면 기존 고혈압 전단계에 해당했던 이들의 70% 이상이 고혈압 1단계로, 그 외에는 상승혈압으로 재분류됐다. 그런데 상승혈압으로 분류된 그룹보다 고혈압 1단계에 속한 이들이 더 젊었고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비중이 적었다. 

즉 ASCVD 위험척도를 국내에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고려하지 않고 변화된 미국 심장학계 혈압 분류만 차용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아울러 국내 고혈압 진료지침이나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도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특정 위험척도를 이용해 치료방법을 결정하지 않는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진료지침위원회 정인경 위원장(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은 "ASCVD 위험척도가 한국인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그대로 적용하기 전에 우리나라만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구 개발이 필요하다. 때문에 국내 진료지침에는 ACC·AHA 지질관리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향적 관찰연구 등을 근거로 만든 한국형 평가도구 필요"

이에 국내에서는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에서는 고혈압 환자를 동반질환과 위험요인 개수에 따라 저위험군, 중위험군, 고위험군 등으로 분류하는 수준이며, 아직 개인별 위험도 평가도구를 채택하지는 않고 있다. 

고혈압 위험도 분류에 KMIC(Korean Medical Insurance Corporation) 자료 등을 이용하지만 90년대 초에 등록된 자료이며 연령대가 35~59세로 비교적 젊고,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 특성상 저위험군에 해당해, 전체 인구집단을 대표하는 고혈압 절대위험도 평가에는 제한점이 있다. 

한국인 심장연구(Korean Heart Study)에서 개발한 ASCVD 10년 위험 예측 모델은 남녀 모두에서 한국인의 심뇌혈관질환을 잘 예측했지만(BMJ Open. 2014;4(5):e005025),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고혈압 및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 소개는 됐으나, 치료 결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결국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 개발을 위해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향적 관찰연구 등 국내 연구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인하의대 윤혜원 교수(인하대병원 신경과)는 "국내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산출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부분 진료지침에서 KMIC 연구를 활용하고 있으나 이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국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산출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고혈압학회 조명찬 이사장(충북대병원 심장내과)은 "ASCVD 위험척도는 한국인에게 맞지 않는다. 한국형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도구를 개발해야만 진료지침에서 높은 권고 등급과 근거 수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학회와 함께 연구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이뤄져야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평가도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연세의대 심뇌혈관 및 대사질환 원인연구센터(CMERC)는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원 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질병 위험도 테스트(http://cmerc.yuhs.ac/mobileweb/)를 개발했다.

현재 또는 향후 질병을 가질 위험을 예측하는 테스트로 △관상동맥질환 △골다공증 △당뇨병 △지방간 등 네 가지 질병에 대한 예측 결과를 제공한다. 다만 테스트 결과는 진단용으로 해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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