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사들은 총체적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들은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가이기적인 의사들에게서 파생했다고 믿고 있는 듯하며 진료의 현장에서조차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관계가 깨지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는 환자와 의사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의 의료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지 되짚어 보자.

먼저, 한국의료 시스템에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관행적 의료행위"를 제도권내에서 인정해 왔다는 것이다.

약사와 간호사에 의한 독자적인 진료행위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나라인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진료행위에 관한 한 의사의 통제를 벗어난 타 직군의 진료행위 인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또한 한국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의사면허의 종류가 두가지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의사는 그저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체계에 따르면 의사란 포괄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과과정에서 배운 방식으로룑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법체계로 인해 한국에서 "의사룑와 "한의사"는 각자의 진료 영역을 가지고 있다.

한정된 시장 내에서 몸집이 커지면 각기 다른 두 영역은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영역간의 다툼은 우리 사회의 기본 기조인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그 영역이 갈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장경제는 한쪽에게는 제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전국민 강제의료보험체계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일단 가입자수가 많다.

또한 저수가 저보험료 체계로 운영을 하니 재정대비 수요자층이 아주 두텁게 형성되어있다.

즉 구조적으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는 바로 구조에서 파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보장성은 떨어질수 밖에 없고 내원일수가 증가한다든지 하는 수요자 성향 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판국에 기본적으로 경비가 많이 들고 또한 수요자 성향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의약분업을 시행하였고 그 결과는 보험재정 파탄으로 이어진 것이다.

의료보험체계를 좀 더 들여다 보면 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 되어 있다.

먼저 전국민 강제보험을 시행하면서 의료행위와 보험행위에 대한 개념조차도 마련하지않고 "보험행위만이 의료행위룑로 한정 지어 운영한다는 것이다.

의료는 상당히 포괄적인 범주이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의료보험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을 의료행위로 인정하고 있으며 의학적으로 적합하고 환자의 선택에 의해서 행해진 의료행위 조차도 용인하지 않는 기이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도 국가가 면허를 허락한 두 가지 종류의 의사 중 한쪽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의사면허는 진료행위를 하라고 국가가 허락해 주는 면허증이지만 한국에서는 두가지 종류의 의사면허를 발급할 뿐만 아니라 똑같은 환자를 치료해도 누가 진료행위를 했느냐에 따라서 한쪽의 의사에게는 보험적용을, 한쪽의 의사에게는 시장경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성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한국에는 그 쪽으로 가기만 하면 보험재정을 침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집단 이기적인" 한쪽 의사들이 있는 반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환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허준 같은" 또 한쪽의 의사, 이렇게 양쪽의 의사가 존재할 뿐이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지불 받으려면 수많은 난관을 돌파해야만 가능하다. 일단 의사 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렵사리 의사가 되어도 환자 진료를 시작하려면 필수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의료기관을 개설하여야 하고, 의료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강제지정에 예외는 없다.

진료행위에 대한 보수를 결정하는 수가계약도 불공정한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으며 의사는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데다가 의료인의 단체행동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요양기관 강제지정, 불공정 수가계약(고시), 진료거부 금지, 그리고 단체행동 금지, 그저 숨이 막힐 뿐이다.

여기에 삭감과 실사라는 칼로서 진료내용을 재단하고 있고, 요즘엔 약제 사용의 적정성을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겨 성적표를 발송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의사들은 각고의 노력으로 의사가 되고 자신의 자본으로 병의원을 개설하지만 현장에서는 국가 공무원보다도 더 엄격한 규제아래서 국민건강권을 지키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유명무실한 진료 전달체계, 과다한 전문의 비율, 인구대비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 수 등 한국의 의료계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또한 향후 수년내에 의료시장개방과 강제지정제 폐지에 따른 민간보험 도입논의까지 지난 의약분업에 못지 않은 태풍급의 파장이 몰아칠 기세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의사협회는 아직 과거의 친목단체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으나 시대는 의사협회가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개인이 아무리 경쟁력을 키워도 조직으로서 의사협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의사들의 앞날은 암울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조직의 체질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애정을 가지고 힘을 모아줄 때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의 살 길은 모두가 의협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힘을 실어주고 눈을 부릅뜨고 의사협회가 제 길을 찾아가도록 채찍질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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