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신경과학회·뇌전증학회, 2004년 이후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게 3세대 치료제 권고

1, 2세대 뇌전증 치료제에 이어 2000년대 개발된 3세대 치료제가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을 통해 세대교체에 시동을 걸고 있다.미국신경과학회(AAN)·뇌전증학회(AES)는 2004년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약 14년 만에 개정판을 공개했다.이번 가이드라인에는 1, 2세대 뇌전증 치료제의 부작용을 개선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인 3세대 치료제가 추가돼 뇌전증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약제 선택 폭이 넓어졌음을 시사했다.다만 3세대 뇌전증 치료제가 진료 현장에서 많은 뇌전증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음에도 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의 치료 약제로는 권고되지 않았고,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 대한 치료 권고안에만 이름을 올렸다.기존 뇌전증 치료제보다 최근 개발돼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가 많지 않은 점이 근거 부족으로 이어져 가이드라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 또는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 대한 치료 가이드라인은 Neurology 지난달 13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FDA, 2004년 이후 3세대 뇌전증 치료제 6가지 승인미국식품의약국(FDA)은 2004년 치료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고 현재까지 3세대 치료제 △에스리카바제핀(eslicarbazepine) △에조가빈(ezogabine) △라코사미드(lacosamide) △페람파넬(perampanel) △프레가발린(pregabalin) △루피나미드(rufinamide)와 특정 뇌전증 증상에 대해 1세대 치료제 △클로바잠(clobazam) △비가바트린(vigabatrin) 2가지를 승인했다.FDA 승인으로 임상에서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 선택의 폭이 늘면서 AAN과 AES는 2003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효과 및 안전성을 본 연구들을 체계적 문헌고찰해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가이드라인에 등장한 뇌전증 치료제 중 비가바트린은 시야장애, 녹내장 등의 안과 이상반응 문제가 보고됐고 에조가빈은 지난해 6월 생산을 중단하는 이슈가 있었지만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뇌전증 치료 효과를 입증한 근거를 토대로 이름을 올렸다. 이에 AAN과 AES는 이 같은 문제를 언급하며 임상에서 투약 시 주의를 요했다.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 '3세대 치료제' 투약 근거 불충분

먼저 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로서 등재와 함께 가장 강력한 권고 등급인 Level A를 받은 약물은 없다.

Level A를 받기 위해선 위약과 비교한 잘 디자인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2, 3세대 뇌전증 치료제 중 이를 충족해 가장 강력한 등급으로 권고할 수 있는 약제가 없다는 게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의 전언이다.

반면 3세대 뇌전증 치료제와 달리 2세대 치료제는 새롭게 부분발작(focal epilepsy)이 나타난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로 권고됐다.

2세대 뇌전증 치료제인 라모트리진(lamotrigine)은 새롭게 부분발작이 나타났거나 미분류된 전신 강직 간대 발작(generalized tonic-clonic seizure)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Level B). 

이와 함께 또 다른 2세대 약물인 레비티라세탐(levetiracetam)과 조니사미드(zonisamide)도 권고 등급은 라모트리진보다 약하지만 이들 환자에게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Level C). 

레비티라세탐은 2000년부터 임상에서 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에게 투약했으나, 앞선 가이드라인에서는 레비티라세탐을 권고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레비티라세탐은 발작 횟수 감소를 위한 치료제로 처음 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리모트리진과 가바펜틴(gabapentin)은 새롭게 부분발작이 나타난 60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 발작 횟수를 줄이기 위한 치료전략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제시했으나, 각각 권고 등급은 Level B와 C로 달랐다. 

다만 가바펜틴은 60세 이상의 뇌전증 환자에게 속효성 카바마제핀(immediate-release carbamazepine)보다 효과적이고 내약성이 좋다는 근거가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고령 환자의 어지럼증과 졸림 증상 등을 유발한다고 보고돼 임상에서 처방 시 주의가 요구된다. 

아울러 1세대 치료제 에토숙시미드(ethosuximide) 또는 밸프로에이트(valproate)는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가 없다면 소아 소발작 뇌전증 환자에게 라모트리진 투약 전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Level B).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 프레가발린·페람파넬 등 병용요법 권고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20~30%의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 대한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다른 치료제와 함께 병용(add-on therapy)할 수 있는 약제로 3세대 치료제가 처음 등장했다. 

뇌전증 신약이 개발되면 1차 단일요법으로 권고하기 앞서 병용요법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이번 치료 가이드라인에도 이 같은 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성인 부분발작 환자 치료에 속효성 프레가발린과 페람파넬을 다른 치료제와 병용(add-on therapy)할 수 있다고 가장 강하게 권고했다(Level A). 

약물 불응성 성인 국소 뇌전증 환자에게는 비가바트린 투약이 가능하다고 명시했으나 1차 치료제로 제시하지 않았고(Level A), 희귀 뇌전증의 일종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ennox-Gastaut syndrome) 환자에게는 루피나미드를 병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Level A).

아울러 약물 불응성 성인 환자에게 △라코사미드 △에스리카바제핀 △지속형(extended-release) 토피라메이트 등을, 생후 1개월 이상 16세 이하의 소아 국소 뇌전증 환자에게 △레비티라세탐 등을 권유했다(Level B).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의 한계점…임상 경험 반영하지 못해"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은 실제 임상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뇌전증 치료제는 환자 특성상 위약 대조군 연구가 불가능하기에 뇌전증 전문가들의 임상 경험을 반영한 치료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희의대 신원철 교수(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는 "AAN·AES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발표된 연구들을 토대로 제시하는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이라며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약 대조군 연구를 진행하는 등 근거 수준이 높은 연구를 시행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따른다. 게다가 10년 전 발표된 연구까지 분석하고 연구가 많을수록 권고 등급이 높아지기에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번 가이드라인은 환자 치료 시 참고할 수 있지만 국내 임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 교수는 "그동안 발표된 약물 간 헤드투헤드(head to head) 연구가 이번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의 근거가 됐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개발되고 시장 도입이 늦은 약물들은 이 같은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임상에서 환자 치료 시 이번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서 경험을 토대로 환자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