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신경과학회·뇌전증학회, 2004년 이후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게 3세대 치료제 권고
먼저 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로서 등재와 함께 가장 강력한 권고 등급인 Level A를 받은 약물은 없다.
Level A를 받기 위해선 위약과 비교한 잘 디자인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2, 3세대 뇌전증 치료제 중 이를 충족해 가장 강력한 등급으로 권고할 수 있는 약제가 없다는 게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의 전언이다.
반면 3세대 뇌전증 치료제와 달리 2세대 치료제는 새롭게 부분발작(focal epilepsy)이 나타난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로 권고됐다.
2세대 뇌전증 치료제인 라모트리진(lamotrigine)은 새롭게 부분발작이 나타났거나 미분류된 전신 강직 간대 발작(generalized tonic-clonic seizure)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Level B).
이와 함께 또 다른 2세대 약물인 레비티라세탐(levetiracetam)과 조니사미드(zonisamide)도 권고 등급은 라모트리진보다 약하지만 이들 환자에게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Level C).
레비티라세탐은 2000년부터 임상에서 새롭게 진단된 뇌전증 환자에게 투약했으나, 앞선 가이드라인에서는 레비티라세탐을 권고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레비티라세탐은 발작 횟수 감소를 위한 치료제로 처음 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리모트리진과 가바펜틴(gabapentin)은 새롭게 부분발작이 나타난 60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 발작 횟수를 줄이기 위한 치료전략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제시했으나, 각각 권고 등급은 Level B와 C로 달랐다.
다만 가바펜틴은 60세 이상의 뇌전증 환자에게 속효성 카바마제핀(immediate-release carbamazepine)보다 효과적이고 내약성이 좋다는 근거가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고령 환자의 어지럼증과 졸림 증상 등을 유발한다고 보고돼 임상에서 처방 시 주의가 요구된다.
아울러 1세대 치료제 에토숙시미드(ethosuximide) 또는 밸프로에이트(valproate)는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가 없다면 소아 소발작 뇌전증 환자에게 라모트리진 투약 전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Level B).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 프레가발린·페람파넬 등 병용요법 권고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20~30%의 약물 불응성 뇌전증 환자에 대한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다른 치료제와 함께 병용(add-on therapy)할 수 있는 약제로 3세대 치료제가 처음 등장했다.
뇌전증 신약이 개발되면 1차 단일요법으로 권고하기 앞서 병용요법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이번 치료 가이드라인에도 이 같은 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성인 부분발작 환자 치료에 속효성 프레가발린과 페람파넬을 다른 치료제와 병용(add-on therapy)할 수 있다고 가장 강하게 권고했다(Level A).
약물 불응성 성인 국소 뇌전증 환자에게는 비가바트린 투약이 가능하다고 명시했으나 1차 치료제로 제시하지 않았고(Level A), 희귀 뇌전증의 일종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ennox-Gastaut syndrome) 환자에게는 루피나미드를 병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Level A).
아울러 약물 불응성 성인 환자에게 △라코사미드 △에스리카바제핀 △지속형(extended-release) 토피라메이트 등을, 생후 1개월 이상 16세 이하의 소아 국소 뇌전증 환자에게 △레비티라세탐 등을 권유했다(Level B).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의 한계점…임상 경험 반영하지 못해"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은 실제 임상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뇌전증 치료제는 환자 특성상 위약 대조군 연구가 불가능하기에 뇌전증 전문가들의 임상 경험을 반영한 치료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희의대 신원철 교수(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는 "AAN·AES 뇌전증 치료 가이드라인은 그동안 발표된 연구들을 토대로 제시하는 근거 기반 가이드라인"이라며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약 대조군 연구를 진행하는 등 근거 수준이 높은 연구를 시행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따른다. 게다가 10년 전 발표된 연구까지 분석하고 연구가 많을수록 권고 등급이 높아지기에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번 가이드라인은 환자 치료 시 참고할 수 있지만 국내 임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 교수는 "그동안 발표된 약물 간 헤드투헤드(head to head) 연구가 이번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의 근거가 됐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개발되고 시장 도입이 늦은 약물들은 이 같은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임상에서 환자 치료 시 이번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서 경험을 토대로 환자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