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esogens'·'Diabetogens' 등 내분비 교란물질을 '위험인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 이어져

플라스틱 용기, 유해 생리대, 영수증, 방수 아웃도어 의류 등. 우리는 환경호르몬을 먹고 만지고 입으면서 24시간 환경호르몬 위험에 노출돼 있다.환경호르몬의 정식 명칭은 '내분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ing chemical)'이다. 일상 속에서 노출되는 여러 화학물질 중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호르몬들의 작용에 영향을 주는 종류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내분비 교란물질이 영향을 미친다고 추정되는 질병도 다양하다. 생식기능 저하, 불임, 성조숙증 등과 같은 생식계 질환이 대표적이며, 이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그런데 내분비 교란물질이 당뇨병, 비만 그리고 심혈관질환 발병에도 관여한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학계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이들 질환의 '위험인자(risk factor)'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비스페놀·프탈레이트, 비만 위험인자 'Obesogens'내분비 교란물질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론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스털링대학 Baillie-Hamilton 교수는 환경오염 물질 농도와 비만 유병률이 동시에 증가하는 그래프를 통해 환경에 배출된 화학물질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수립했다(J Altern Complement Med 2002 Apr;8(2):185-192). 그리고 이 화학물질들은 지방 생성과 에너지 균형 사이에서 정상적인 발달과 항상성 조절을 방해하는 외부 화학물질이라는 개념인 'Obesogens'로 정의됐다.비만과의 연관성이 가장 많이 입증된 내분비 교란물질은 캔이나 영수증에서 많이 검출되는 '비스페놀 A'다.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US-NHANES)의 단면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과 아동에서 요중 비스페놀 A 농도가 증가할수록 비만 및 복부비만 위험이 높았다(Environ Res 2011;111(6):825-830).또 다른 내분비 교란물질인 '프탈레이트'도 US-NHANES에서 비만과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20~59세 남성에서 프탈레이트 농도가 높을수록 복부둘레 및 체질량지수(BMI)가 증가했으며, 프탈레이트 종류 중 하나인 모노에틸 프탈레이트는 사춘기 여성 및 20~59세 여성에서 BMI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였다(Environ Health 2008;7:27).반면 소아에서 프탈레이트와 비만과 유의미한 연관성은 보이지 않았고 고령 여성에서는 프탈레이트 농도와 비만간 역상관관계가 나타나, 나이 또는 성별에 따라 프탈레이트의 영향이 다른 것으로 추정됐다.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 높이는 'Diabetogens'제2형 당뇨병은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학계에서는 유전적 원인과 함께 비만, 노화, 운동부족 등의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세포 및 동물실험에서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Obesogens'와 유사하게 내분비 교란물질을 제2형 당뇨병 위험인자로 보는 'Diabetogens' 개념이 만들어졌다.내분비 교란물질이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는 가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다이옥신이 함유된 제초제에 노출된 군인들이 20년 후 당뇨병 발생 위험이 1.5배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됐다(Epidemiology 1997;8(3):252-258).이와 함께 폴리염화바이페닐, 유기염소제농약 등을 포함한 19가지 잔류성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농도에 따라 5분위수로 나눠 제2형 당뇨병과의 연관성을 본 PIVUS 코호트 연구 결과, 잔류성유기오염물질에 가장 적게 노출된 군 대비 노출 농도가 증가할수록 당뇨병 발병 위험이 최대 8.8배 높았다(Diabetes Care 2011;34(8):1778-1784).아울러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 지정 제2형 당뇨병 임상연구센터(KNDP) 코호트를 기반으로 내분비 교란물질이 당뇨병 위험인자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지난해 미국당뇨병학회 연례학술대회(ADA 2017) 포스터 세션에서는 당뇨병 전단계 성인을 대상으로 잔류성유기오염물질과 당뇨병 발병과의 연관성을 본 7년 추적관찰 결과가 발표됐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의 활동성을 볼 수 있는 AhR(Aryl hydrocarbon receptor)를 측정한 결과, AhR 활성이 높을수록 당뇨병 위험이 최대 2배 더 증가했다.다만 AhR 활성과 당뇨병 위험간 선형관계는나타나지 않아, 향후 결과에 대한 학계의 심도있는 의견 교환과함께잔류성유기오염물질 농도 측정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 연구회는 16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대강당에서 '제1회 내분비교란물질 연구회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연구회 전숙 총무이사는 '내분비 교란물질과 비만, 당뇨병 및 대사질환'을 주제로 발표했다.

내분비 교란물질, 심혈관질환 '독립적' 위험인자인가?

내분비 교란물질이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인자로 지목되면서 자연스럽게 심혈관질환 위험도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비만, 당뇨병과 독립적으로 내분비 교란물질과 심혈관질환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08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이옥신 농도가 증가할수록 허혈성 심질환에 의한 사망뿐만 아니라 모든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이 증가했다(Environ Health Perspect 2008;116(11):1443-1448).

아울러 건강한 남성 및 여성을 10년 추적관찰한 결과에서도 비스페놀 A 농도가 증가하면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1.13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Circulation 2012;125(12):1482-1490).

그러나 내분비 교란물질과 심혈관질환 간 인과관계를 증명할 만큼의 충분한 근거가 없어, 이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연구가 지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단면연구'로 진행…'전향적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학계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이 비만, 당뇨병, 심혈관질환의 위험인자임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진행된 대다수 연구가 단면연구로 진행된 점은 한계점으로 꼽힌다. 단면연구는 의학적 현상을 확인할 때는 효율적이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전향적 연구를 통해 비만, 당뇨병, 심혈관질환과 내분비 교란물질간 인과관계를 추론해야 하지만, 비용적인 문제, 내분비 교란물질 농도 측정의 어려움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내분비학회 내분비교란물질 연구회 전숙 총무이사(경희의대 내분비대사내과)는 "역학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선 내분비 교란물질 농도를 측정해야 하는데 측정법이 쉽지 않으며 내분비 교란물질의 정상 수치도 설정돼있지 않다"며 "전향적 연구는 비용적인 문제로 진행하기 어렵고 내분비 교란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은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 연구가 단면연구로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회 이홍규 회장(을지의대 내과)은 "무한대로 많은 인공적, 자연적 화학물질들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 보인다"면서 "다만 가장 중요한 잔류성유기오염물질 몇 가지만 측정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내분비 교란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GC/MS법이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이 분야의 학자들, 단체들과 소통해 세계적 환경문제와 급증하는 내분비질환 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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