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위암·알코올성 간질환·변비, 남·녀 간 차이 확인
성호르몬에 의한 메커니즘이 주요 원인

▲ 대한소화기학회는 지난 15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에서 개최해 '소화기학에서의 성차의학' 강연을 진행했다.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환자 맞춤형 치료(Personalized medicine)’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성별에 따라 치료 전략을 달리하는 이른바 ‘성차의학(Sex-gender medicine)'을 통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장암, 위암, 알코올성 간질환, 변비 발병률 등 다양한 질환에서 남·녀 간 두드러진 차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으로는 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Estrogen, 이하 ER)이나 안드로젠(Androgen, 이하 AR)이 연관돼 있었다.

대한소화기학회는 '소화기학에서의 성차의학'라는 주제로 의료 현장에서 성차의학의 필요성을 알아보고 그 전망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강연은 지난 15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된 춘계학술대회에서 진행됐다.

ER 수용체 차이가 대장암에 영향

▲ ▲안드로젠 중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위)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아래) ⓒ위키피디아

을지대병원 박영숙 교수(소화기내과)는 성별에 따른 대장암 발생률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여성은 남성과 비교해 대장암 발생률이 낮다. 지난 2010년 영국에서 대장암 발생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 더 낮았다. 박 교수는 그 원인으로 여성호르몬인 ER을 꼽았다.

ER은 수용체에 따라 서로 다른 작용을 한다. ERα 수용체는 세포증식과 관련 있고, ERβ 수용체는 세포증식 억제와 세포 사멸에 관여한다. 정상 대장 점막에서는 ERβ가 우세해 대장암 예방 효과를 보인다.

반면, 대장암 조직에서는 ERβ가 감소하고, ERα의 작용이 우세해 세포증식이 일어나 암 발생에 취약하게 된다.

박 교수는 “비록 ER의 대장암 내 대사는 매우 복잡해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장암 예방에 효과적인 약물을 찾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성별은 물론 유전, 환경 차이 등 다양한 정보를 융합하면 효율적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AR, 암 메커니즘에 관여

서울성모병원 정윤주 교수(위장관 외과)는 위암 환자의 예후에 성별이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발표했다.

정 교수도 성호르몬을 남·녀 간 질환 차이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ER이 아닌 남성호르몬인 AR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AR은 생식 기관을 비롯한 조직의 발암 메커니즘에 관여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최근 발표됐다”면서 “남성 장형 위암(Intestinal gastric cancer)의 기질(stroma)은 여성보다 유의하게 높은 AR 양성을 보이며, 이것이 남성 환자에서 침윤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위암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최근 동물이나 암세포주 모델에서 성별 구분의 효과가 주목 받기 시작했다“며 ”위암 임상연구에서 호르몬 수용체, 호르몬 노출 기왕력에 대한 연구들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코올성 간질환, 여성이 남성보다 취약해

알코올성 간질환에서도 성별 차이는 두드러졌다. 여성이 남성보다 음주에 의한 간질환의 발생이 높게 나타난 것.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김문영 교수(내과)는 “덴마크에 거주 중인 1만 3000여 명을 12년간 추적 관찰한 전향적 연구에 따르면 주당 336~492g의 알코올을 마시는 과음주자의 경우 간경변 발생 위험이 남성은 일반인보다 7배 높았지만 여성은 훨씬 높은 17배로 나타났으며, 알코올성 간질환 위험도 남성은 3.7배 높은 반면 여성은 이보다 높은 7.3배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여성이 알코올성 간질환에 취약한 이유로 남성과 비교해 △작은 체구 △낮은 체내 수분 용적 비율 △적은 양의 위장 내 ADH(Alcohol dehydrogenase)에 의해 혈중 에탄올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ER이 성장호르몬을 자극해 ADH 활성도를 증가시키기는 것을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ADH는 알코올 대사 산물인 알데하이드 생성을 더 증가시키므로 여성은 간 손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 밖에도 알코올에 의한 유전자 발현과 염증, 산화스트레스 증가에서도 성별 차이가 있다”면서 “여성 음주의 위험성을 밝히고 치료는 물론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여성, 대장 운동 기능 낮아…변비 위험↑

흔한 위장관 질환인 변비에서도 남녀차이는 존재했다.

고신대병원 박무인 교수(소화기내과)에 따르면 역학 조사, 대장 통과 시간, 대장 운동, 항문 직장 기능에 따라 남녀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미국의 성인 1만 44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의 20.8%가 변비를 호소했지만, 남성은 8.0%에 그쳤다. 국내 성인 1029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16.9%가 변비가 있다고 답했고, 여성이 남성보다 유의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84명, 남성 80명을 대상으로 ‘대장 통과 시간’을 측정한 연구에서도 여성은 평균 42시간으로 남성(평균 30시간)과 비교해 약 12시간 더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 운동 측면에서는 24시간 보행성 대장 내압 검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운동성이 저하돼 있었다.

항문 직장 기능에서는 남성이 여성과 비교해 안정기와 항문 최대 수축압이 더 높았고, 변의를 일으키는 직장 내 풍선의 부피는 더 컸으며, 항문의 이완을 유도하는 직장 내압은 더 낮았다.

박 교수는 남녀 간 변비 증상 차이에 대해 “키와 생리 주기가 대장 통과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며 “근본적으로 여성호르몬이 대장 운동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성이 여성보다 근육이 더 많으며 항문 조임근이 더 길고, 성별에 따른 호르몬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변비의 임상상이 성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진단 기준이나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데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이를 고려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해 변비의 병태 생리 진단, 치료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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