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파기선언’ 의-병-정 건보 실무협의체 합의문 초안 입수
의협 비대위 요구안 대부분 수용...‘의료계 합의’ 곳곳에 명시

©메디칼업저버

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의-병-정 실무협의체 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의 대정부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가 정상화와 일차의료 활성화, 심사체계 개선은 물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의료계 등과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점도 3자간의 약속으로, 합의문에 명문화했다.

의-병-정 실무협의체 결과, 합의문 초안에 담아

의-병-정 실무협의체는 지난해 있었던 12.10 전국의사총궐기대회의 결과물이다.

총궐기대회로 문케어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사회 이슈되면서 청와대와 여당에서 의정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해 12월 19일 복지부의 요청에 의료계가 응하는 모양새로 의-정 대화가 본격화됐다.

당초 의협 비대위와 정부간 양자대화 형식으로 시작되었던 논의는, 2차 회의부터 협상 당사자로 대한병원협회가 추가되면서 의-병-정 실무협의체 형태로 정례화됐다.

의-병-정은 의협 비대위가 협상파기를 선언하던 10차 협의 이전까지 3달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등 현안에 관한 의견을 모았다.

협의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월 13일 8차 회의를 끝으로 대부분의 논의사항에 대한 입장이 정리돼, 의-병-정 합의문 초안이 마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협 비대위 요구사항, 대부분 '수용'

궐기대회의 성공에 힘입어 의-정 협의는 의협 비대위가 궐기대회에서 밝혔던 대정부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결론적으로 의협 비대위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수용됐다.

9일 메디칼업저버가 입수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정 실무협의체 협의결과(초안)’에 따르면, 의협 비대위의 대정부 요구사항 4대 항목-16개 요구사항 가운데 의-정이 별도 논의를 합의한 ‘한의사 의과 의료기기 사용 불가’ 관련 사항 제외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항목이 실제 합의문에 그대로 포함됐다.

일례로 의협 비대위는 비급여의 급여화와 예비급여 원점 재검토 라는 대주제 아래 ▲의료계와 협의 하에 우선 순위에 따른 보장성 강화 ▲중증의료, 필수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보장성 강화 ▲급여전환위원회 신설 및 급여평가위원회의 의협 참여라는 3개 요구사항을 내놨는데, 이는 실제 합의문에 모두 반영됐다.

▲의-병-정 실무협의체 합의문 초안 중 비급여 급여화 부문.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은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우선순위에 따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중증의료, 필수의료, 취약계층 등의 보장성 강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 나간다 △예비급여 적용은 급여평가위원회 논의를 거쳐 별도의 원칙을 수립해 운영하되, 급여평가위원회에 의협과 병협 등 의료단체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합의문에는 △보장성 강화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 관리, 원활한 시행 등을 위해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 중간 과정에서 보장성 강화 효과, 적정수가 보상, 재정 소요 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며 추진해 나간다 △비급여 급여화는 전문적인 의학적 검토, 진료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관련 의학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급여화 범위 및 방안을 검토하고 사회적 의견을 수렴해 결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의료계가 주장한 ‘보장성 강화대책의 단계적 추진’, ‘의료계와의 합의를 통한 정책 추진’ 모두 합의문에 명문화해 넣은 것이다.

"수가 정상화" 선언...가산제 개편 등 이행방안도 수록

의협 비대위의 또 다른 요구사항이었던 급여 정상화 관련 3개 요구사항도 사실상 합의문 초안에 모두 담겼다.

의협 비대위는 ‘급여 정상화’라는 대주제 아래 ▲수가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설정 ▲공정한 수가협상 구조 마련 및 협상 결렬시 합리적 인상기전 마련 ▲일차의료살리기를 위한 요양기관 종별 가산료 재조정 등을 요구했다.

의-병-정 합의문 초안은 ‘의료계와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률과 의료의 질, 수가 등을 OECD 수준으로 높여나가기 위해 공동으로 연구-노력한다’는 선언아래 적정수가 보상, 적정수가 보상 추진 방안, 합리적인 수가결정 구조 마련을 위한 논의 등을 약속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바급여의 급여화 추진 과정에서 의료기관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총 비급여 해소규모를 보전하고, 의료기관 종별 기능에 부합하고 의료의 질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적정수가 보상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적정수가 이행 방안으로서 △심층진찰 도입, 입원료 구조 개편, 종별가산을 포함한 가산제도 개편,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의뢰-회송 시범사업 확대, 만성질환 관리와 수술전후 상담 등 교육상담료 도입, 수술 및 처치 등 수가 개선, 7개 DRG 수가체계 및 조정기전 개선을 중점 추진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수가협상 구조 개선 등과 관련해서는 별도 논의구조를 마련해 해법을 찾기로 했다. 합의문에는 △합리적인 수가결정 구조 마련을 위한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수가계약과정에서 소통을 강화하고, 환산지수 산출 및 수가계약 방식 개선을 위한 논의구조를 조속히 마련해 논의한다는 내용으로 적시됐다.

▲의병협 협상단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심사실명제 도입-공단 현지확인 개선 '명문화' 

심사체계 및 건보공단 개혁과 관련해서도 요구사항 대부분이 합의문에 구현됐다.

의협 비대위는 ‘소신진료를 위한 심사평가체계 및 건보공단 개혁’이라는 대주제 아래 ▲건보공단과 심평원 예산편성에 공급자가 참여하는 예산심의위원회 신설 ▲급여기준 및 심사기준 전면 수정 ▲신포괄수가제 확대 정책 폐기 ▲중앙심사조정위원회의 개방적 운영으로 투명성 확보 ▲심사실명제 ▲의료기관 현지조사 제도개선 ▲임의적인 건보공단 현지확인 근절 등 7개 요구항을 내놨었다.

이 중 정부체계상 불가한 예산편성 참여요구를 제외하고 6개 요구항 모두 합의문 초안에 그 내용이 명문화됐다.

구체적으로는 △의협과 병협, 심평원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 심사기준 개선협의체’를 구성해 심사기준의 합리적 운영방식에 대해 상호 소통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 △심사의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다 확보하기 위해 심사세부규정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심사실명제는 전체 공개를 목표로 분야별 대표위원부터 단계적으로 신속히 추진한다 △심사과정에서 의료현장 및 최신 진료경향에 대해 충분한 의견을 반영한다 △보건복지부는 공단의 방문확인이 관련 규정에 따라 적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공단은 방문확인이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상호 소통을 강화해 나간다는 항목도 들어있다.

신포괄수가제와 관련해서는 병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자율적 참여신청에 따라 시범사업을 사업을 추진한다고 약속했다.

합의문 곳곳에 의료계와의 합의, 의료계의 참여 등을 명문화한 점도 눈에 띈다. 합의문 말미에는 ‘의료계와 보건복지부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상기협의된 내용이 성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하며, 의협과 병협, 복지부로 구성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병정협의체‘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복지부 협상단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정부,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다 줬다”

다만 이들 약속은 합의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의협 비대위가 지난달 29일 협상결렬을 선언,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뒤늦게 합의문 초안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의료계 안팎에서는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내놓을 것도 없겠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왔다.

정부 소식에 능통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백기투항을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부가 줄 수 있는 것, 또는 그 이상으로 의료계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며 “문케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 특히 의료계와 반드시 같이 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라고 평했다.

다만 그는 “이런 정도의 합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이를 총궐기대회 등 집단행동을 하면 정부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이전에는 정부와 의료계가 문케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눠본 바 없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반드시 의료계와 직접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며 “정부는 지난 의정대화를 통해 의료계와 대화를 나눴고, 그것이 언제든 깨질 수도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는 의료계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전례”라고 진단했다.

국회 관계자는 “솔직히 충격적”이라며 “이 정도라면 정부측 협상력을 질타해야 할 상황"이라고 평했다.

그는 "합의안 대로라면 수가든, 급여든, 심사평가든, 현지조사 든 모든 의사결정을 사실상 의료계 동의나 허락을 받아야 할 판"이라며 "이 이상의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료계에 되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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