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ST 연구,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군 돌연사 예방 효과 없지만 전체 사망률 감소

웨어러블 의료기기를 이용한 질병 예방, 조기 진단 및 치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착용형 제세동기(Wearable Cardioverter-Defibrillator, 제품명 LifeVest)'가 딜레마에 빠졌다.

다기관 무작위 연구 결과, 삽입형 제세동기(ICD) 이식 전 착용형 제세동기를 사용한 환자군에서 돌연사 예방 효과는 없었지만 전체 사망률은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VEST로 명명된 이번 연구는 착용형 제세동기의 돌연사 예방 효과를 검증한 첫 다기관 무작위 오픈라벨 연구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돌연사 예방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서 향후 착용형 제세동기가 필요한 환자군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10일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ACC 2018)에서 발표됐다.

VEST 연구, 착용형 제세동기의 돌연사 예방 효과 검증

심근경색이 발생한 환자군은 돌연사할 위험이 높으며, 특히 좌심실 박출률(LVEF)이 30% 이하로 낮을수록 그 위험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VALIANT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N Engl J Med 2005;352:2581-2588).

그러나 DINAMIT 연구 및 IRIS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에게 ICD를 조기에 이식해도 돌연사 또는 전체 사망 위험 감소에 대한 혜택은 없었다(N Engl J Med 2004;351(24):2481-2488; N Engl J Med 2009;361(15):1427-1436).

이 때문에 2017년 미국심장협회·심장학회·부정맥학회(AHA·ACC·HRS) 심실부정맥 환자 관리 가이드라인에서는 LVEF가 35% 미만이거나 심근경색 후 최소 40일 및 혈관재관류술 후 최소 90일이 지난 허혈성 심질환 환자에게 돌연사를 예방하기 위한 일차 치료로서 ICD 이식을 권고하고 있다(COR I, LOE A).

문제는 ICD 이식 전인 40~90일 사이에 사용하는 착용형 제세동기가 실제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의대 Jeffrey Olgin 교수팀은 미국,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모집된 약 23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VEST 연구를 진행했다.

돌연사 발생률, 차이 없어…착용형 제세동기군에서 발진·가려움 확인

전체 환자군은 최근 심근경색을 겪고 퇴원한 지 7일 이내인 환자들로, 모두 LVEF가 35% 미만이었다. 이들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약물치료와 함께 착용형 제세동기를 사용한 군(착용형 제세동기군) 또는 사용하지 않은 군(대조군)에 2:1 비율로 무작위 분류됐다.

연구팀은 착용형 제세동기군에게 가능한 기기를 벗지 않도록 권고했고, 이들은 하루 평균 21시간 동안 기기를 사용했다. 

일차 종료점은 추적관찰 3개월 동안 발생한 돌연사 및 심실성 빈맥으로 인한 사망으로 정의했다. 이차 종료점은 전체 사망률 및 돌연사 외의 원인으로 인한 사망, 비치명적 예후로 설정했다.

연구 초기에는 전체 사망률을 일차 종료점으로 정의했지만 환자군 등록에 어려움이 있어 일차 종료점을 돌연사 발생으로 변경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ITT(intention to treat) 분석 결과, 일차 종료점 발생률은 착용형 제세동기군이 1.6%, 대조군이 2.4%로 두 군 간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P=0.18). 게다가 돌연사 이외에 울혈성 심부전, 심근경색 재발, 뇌졸중 등의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률은 각각 1.4%와 2.2%로 이 역시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에 따른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다(P=0.14).

다만 희망적인 결과는 이차 종료점에서 나타났다. 전체 사망률은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군이 3.1%로 4.9%인 대조군보다 1.8%p 유의미하게 낮았던 것(P=0.04).

이어 연구팀은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 시 적절한 충격이 이뤄졌는지를 분석했고, 추적관찰 동안 심장 문제에 따른 적절한 충격을 1회 받은 환자는 13명, 2회 이상 받은 환자는 7명으로 확인됐다. 부적절한 충격을 1회 경험한 환자는 8명, 2회 이상은 2명이었다.

피곤, 수면장애, 현기증, 구역, 흉통 등의 이상반응은 두 군간 유사하게 나타났지만, 일부 평가항목에서는 착용형 제세동기군에서 기기와 관련된 문제가 확인됐다. 흉부에 발진이 나타난 환자는 착용형 제세동기군과 대조군이 각각 12.9%와 3.8%(P<0.001)였고, 흉부에 가려움을 동반한 환자는 각각 14.5%와 3.1%로 파악됐다(P<0.001).

"일차 종료점 달성 실패했지만…전체 사망률 감소 무시 못 해"

VEST 연구가 일차 종료점 달성에는 실패로 마무리됐지만, 그럼에도 ICD 이식 전까지는 착용형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전언이다. 

Olgin 교수는 "착용형 제세동기가 돌연사 위험을 낮추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전체 사망률은 의미 있게 낮췄다"면서 "돌연사 위험을 평가할 때 전체 사망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고려하면 ICD 이식 전 착용형 제세동기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제언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캔자스대학 Dhanunjaya R Lakkireddy 교수는 "전체 사망률을 낮추려면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결과에서 돌연사 예방인 일차 종료점 달성에는 실패했다"며 "임상에서는 착용형 제세동기를 계속 사용하겠지만, VEST 연구를 통해 기기에 대한 관심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메디컬센터 Ajay Kirtane 교수는 "돌연사 예방 효과 입증에는 실패했을지라도, 과거 연구에서 착용형 제세동기의 유의성이 입증됐기에 심근경색을 겪은 고위험군에게는 착용형 제세동기 사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환자군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 환자군을 돌연사 위험에 따라 층화해 어떤 환자에게 기기가 궁극적인 혜택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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