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정 기자

'선배 전공의는 후배 전공의를 갈구고, 선배 간호사는 후배 간호사를 태운다.'

지난 15일 서울대형병원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태움'으로 대변되는 간호사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숨진 간호사의 가족들은 그녀가 평소 대화 중에도 업무에 대한 압박감 등을 호소해왔다며, 병원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로 그녀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경찰은 실제 병원 내에서 사망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태움'은 의료계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오랜 관행처럼 여겨져 왔던 일로, 앞서 논란이 됐던 전공의 폭행사건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병원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노동과 교육수련을 병행하는 계층을 상대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의료계 내부에서 수십년간 용인되며 이어져 온 관습이라는 점에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의료인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업무량이 폭력성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간호사들은 "간호사 태움은 1인당 환자 20여명을 담당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살인적인 노동에서 살아남기 위한 간호사들끼리의 몸부림"이라거나 "여유 없이 뛰어다니기 바쁘다보니 후배 간호사를 가르치는 행위가 버겁고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호소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현장의 간호사들이 가해자 처벌 등 단순한 땜질처방이 아니라,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해야만 태움 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앞서 국회는 과도한 업무와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을 위해 지난 2015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 전공의 처우개선을 위한 전기를 마련한 바 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최일선에 있다는 점에서 간호사 처우에 관한 문제는, 전공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특정 직역의 문제를 넘어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간호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지원하고,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도록 하는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개선에 관한 법률안'과, 안전한 의료환경을 조성을 위해 국가로 하여금 의료인력의 양성·교육·지원 체계를 마련하도록 하는 '의료인력지원특별법안'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이번 사건이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재조명하고, 이를 개선하는 전기가 되길 희망한다. 국회와 정부의 관심과 노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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