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회계감리 예고…제약계 "회사 고유 권한" vs "당연한 조치"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은 기업의 숙명이다. 연구개발은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 성장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제약산업은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이 기업의 존폐까지 이어지는 만큼 제약바이오기업이 갖는 연구개발의 의미는 다른 기업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약바이오기업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보는지, 비용으로 처리하는지를 두고 투자자들의 판단은 달라진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연구실적에 대한 회계 점검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제약·바이오기업 상장사 83곳 무형자산으로 계상

금융감독원은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제약바이오 업종이 급등락을 보이자 이들을 중심으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방식이 적정한지를 두고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연구개발비를 자의적으로 회계처리해 재무 정보를 왜곡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제약바이오 상장기업 152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83곳(55%)이 연구개발을 무형자산으로 계상(계산해 올린 금액)하고 있다. 

무형자산으로 계상된 잔액은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이 중 코스닥 기업들의 계상 금액은 1조 2000억원을 차지한다. 

특히 제약바이오기업의 총 자산에서 연구개발비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4%로, 상장사 전체 총 자산 대비 연구개발비 잔액 비중이 1% 미만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금감원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연구개발비에 대해 기술적 실현가능성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비용으로 인식토록 규정하고 있다"며 "비용처리 대신 자산으로 계상하려면 해당 요건 충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은 2017년 결산 결과가 공시되면 유의사항 및 모범사례를 중심으로 신속히 점검을 추진, 위반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대해 테마감리를 착수할 방침이다. 

“요건 불충분한데 낙관적으로 자산화하는 관행도”

금감원이 이처럼 나선 데는 신약개발이 실패할 경우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연구개발비가 순식간에 손실로 바뀌는 위험성 때문이다. 

제약바이오산업은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산업으로, 관련 회계처리가 재무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상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 회사의 영업이익은 증가한다. 따라서 신생 제약바이오기업 중에는 우량한 기업으로 보이도록 신약 개발 초기부터 연구개발비를 자산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개발 과정이 중단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모든 자산이 손실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경우 임상1상 또는 전임상 단계의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는 경우가 일부 존재한다. 

또 자산화 시점 등 연구개발비와 관련해 공시하는 주석내용이 미흡해 재무위험 분석 및 기업 간 비교도 어렵다. 

공시되는 주석 가운데 관련 내용은 △연구개발비 지출총액 △중요한 개별자산 설명 △손상차손 원인사건 설명 등이 있는데 이를 공시하는 비율은 각각 55%, 6%, 0%에 불과하다는 게 금감원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성 확보는 필수적이며, 이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낙관적으로 자산화했던 연구개발비를 일시에 손실로 처리하는 경우 실적이 급격히 악화,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계업계 측은 '올 게 왔다'는 평가다. 그동안 바이오제약사의 연구개발비 처리가 문제가 된 만큼 금감원이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바이오제약사 대다수는 연구개발비를 비용처리할 경우 낮아지는 영업이익률 때문에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려면 개발하는 제품의 시장성이 확실하다는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바이오제약사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 비용은 자산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지 못함에도 투자자 관리를 위해 자산화하는 관행이 있다"며 "금감원의 조치는 바이오제약사들에 상당한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답 없다” vs “당연한 규제”

금감원의 조치에 제약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회계처리 방식은 정답이 없는 만큼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바이오제약사 관계자는 "실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사실을 오도하거나 투자자를 현혹시킬 의도로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계상한 건 아닐 것"이라며 "언젠가 회사의 자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인 만큼 이는 회사 고유의 권한이며 정답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산업의 특성상 임상3상 단계에 진입하더라도 제품 개발까지 이어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연구개발비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약산업의 경우 완제품 출시 가능성이 타 산업군에 비해 낮아 제품 개발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자산으로 처리하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상위제약사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 비용을 무형자산에 포함하는 회사들의 경우 대다수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투자자에게 정보를 명확하게 알려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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