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임상시험, PHR, 정밀의료 등에 효과 예상 ... 미국, 유럽 등 빠르게 발전 중

블록체인이란

블록체인(Blockchain)은 분산 원장(Distributed ledger), 공유 장부(Shared ledger) 등으로 불리는데 공인된 제3자 없이 데이터를 블록으로 생성해 공동으로 검증하고 저장·분산해 연결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장부를 볼 수 있도록 허가받은 사람이 서로 약속된 방법으로 장부를 열람하고, 약속된 방법으로 거래하는 것이 기록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3자의 보증 없이도 내용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 장부를 노드(Node)라고 하는데, 노드가 보유한 장부는 블록으로 구성돼 있다. 은행이 없어도 개인과 개인이 돈거래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등장한 것이다. 비트코인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정부, 금융, 의료데이터, 공공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열풍과 더불어 블록체인 바람이 뜨겁다. 블록체인이 의료계 전체를 바꿔놓을 새로운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이 의료계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하는 배경에는 블록체인이 갖는 몇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우선 탈중앙성이다. 과거처럼 중앙서버 등이 없어도 블록체인은 안전하게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헬스 클라우드·PHR 블록체인 세미나'에서 메디블록 이은솔 대표는 탈중앙성은 블록체인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블록체인은 특정 기관의 중앙서버가 아닌 개인과 개인의 거래(P2P) 네트워크로 분산시켜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자료를 기록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환자 정보가 모두 병원 중앙서버에 모여 있지만 블록체인이 활성화되면 환자 정보는 환자의 핸드폰에 저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록체인의 또 다른 특징은 보안성과 투명성이다. 그동안 병원들이 중앙 서버에 저장된 환자 정보를 활용하거나 교류하지 못했던 이유는 안전성 때문이었다. 의료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등도 걸림돌이었지만 예민한 환자 정보가 유출됐을 때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블록체인은 시원하게 해결했다. 정보를 다수가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해킹이 어렵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다.

 

또 모든 거래기록에는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한 번 작성되면 수정할 수 없는 블록체인의 투명성도 헬스케어 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달리는 외국 기업들…우리는 아직도 신중?

의료정보의 패러다임을 바꿀 블록체인을 준비하는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구글, 인텔, IBM 등이 블록체인과 헬스케어 사업을 연계해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구글의 딥마인드 헬스(Deepmind Health)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 등과 연계해 환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을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은 최근 미국 특허청(USPTO)에 블록체인을 활용한 시퀀스마이닝플랫폼(SMP) 기술 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술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DNA와 RNA에 있는 핵염기 순서를 규명하고 저장하는 플랫폼이다. 

IBM은 미국식품의약국(FDA)과  병원에 저장된 의료정보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물인터넷(IoT) 등을 분석해 의료정보가 공중보건에 이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움직임은 아직 신중한 모양새다. 메디블록이 활동을 시작했고, 교보생명이 병원 진단서를 블록체인으로 묶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고객들에게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는 정도다. IT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다. 

임상시험 데이터 조작 막을 수 있어 투명성 보장

블록체인은 의료계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분야로 임상시험, 개인의료기록(PHR), 의료데이터 공유, 전자건강기록(EHR), 의약품 유통 및  서비스, 전자의료문서 공증, 의료수가 검증 및 지불 서비스 등을 꼽았다.

삼성서울병원 이병기 수석연구원은 여러 분야 중 임상시험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임상시험은 연구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블록체인은 정보를 여러 사람이 갖고 있어 해킹이 어렵고, 정보가 한 번 입력되면 수정할 수 없어 임상시험 데이터 관리에 제격이라는 것. 

이 연구원은 "블록체인을 헬스케어 분야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염두에 둬야 하는데, 임상시험 성격과 잘 맞는 것 같다"며 "연구자들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데이터를 고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고쳐도 전혀 다른 값이 나오기 때문에 절대 손을 대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블록체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료기록 암호화해 병원 아닌 개인 휴대폰에 저장

개인의료기록(PHR) 활성화도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환자의 진료 정보는 환자의 것이지만 현재는 병원이 갖고 있다. 그래서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가면 불필요하게 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PHR과 만나면 이런 불편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장에는 메디블록이라는 회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메디블록은 의료기관이 아닌 개인이 의료정보 플랫폼이 되도록 하는 생태계를 제시하고 있다. 

 

회사 이은솔 대표는 "의료정보가 진본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블록체인이 그 답이 된다"며 "환자는 자기 정보의 주체가 되고, 병원에서 불필요한 검사를 다시 받지 않아도 된다. 또 의사는 메디블록 플랫폼에 올라온 환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메디블록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료데이터를 판매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정보 보안성 높여 정밀의료에 활용

정밀의료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밀의료를 위해선 환자 정보, 유전자 데이터, 라이프로그 데이터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비용이 비싸고, 정보도 부족한 상태다. 따라서 개인이 데이터를 기부해야 하는데 이때 동의서가 필요하다. 동의서 관리가 중요한데, 블록체인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정밀의료는 이미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다. 지난해 고려대의료원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사업단'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정밀의료에 돌입했다. 병원 측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개인정보 식별을 없앤 후 개인의 ID를 증명하는 키값을 공유하고 있다. 

이병기 연구원은 "이 방법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모든 의사가 반대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단기간에 절대 안 되는 기술이고, 얘기를 꺼내는 순간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청구 관련 클레임을 중재하는 역할도 블록체인의 영역이다. 임상에서 환자를 진료한 내용과 청구한 내용이 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진료할 때 발생한 데이터를 블록체인을 사용해 기록해 나중에 기록한 것과 비교해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수정할 수 없는 블록체인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가짜약’·향정신성약물 관리에도 효과적

블록체인은 약물을 공급하는 제약사에게도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블록체인 기업인 Chronicled와 생명과학 공급업체인 LinkLab은 위조된 의약품을 발견하고 폐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처방약 식별과 추적이 가능하다. 또 미국과 그 외의 국가에서 위조된 약물 판매를 억제할 수 있는 실용적인 수단도 될 수 있다. 

지난해 IBM은 중국 제약 유통체인에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IBM이 도입한 시스템은 'Yijian Blockchain Technology Application System'인데, 참가자는 공급체인을 통해 약물을 추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모든 약물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우선 관리가 필요한 향정신성 약물이나 가짜 약, 약물유통 기간 등을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프로포폴 같은 경우 사용량을 관리할 수 있어 유용할 것이란 얘기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