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100명 중 1명은 사이코패스, 뇌 기능장애 있다는 의견 압도적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라스베이거스 총기사건'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의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이코패스(psychopath)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반복적인 범법행위나 거짓말, 공격성, 무책임함을 보이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100명 중 1명은 사이코패스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보통사람 속에 은밀히 숨어 있다.'사이코패스 테스트(The Psychopath Test)'를 펴낸 저자 존 론슨은 막강한 정치권력자 또는 존경받는 CEO로 활약하거나, 평범한 직장 동료 또는 선량한 이웃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을 '고단수 사이코패스'라 칭했다. 지극한 가족사랑을 보이며 선량한 이웃으로 가장해 수년간 언론매체에 얼굴을 비쳤던 이영학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사이코패스는 선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타고난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상처 등의 후천적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정상인보다 뇌 전두피질과 회백질 양 적어
 

사이코패스는 뇌의 합리적인 판단과 대인관계 능력, 실행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피질과 회백질 기능 장애'가 원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13년 영국 정신건강연구소 Nigel Blackwood 박사팀이 범죄자들의 뇌 구조를 관찰한 결과, 사이코패스의 경우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백질 양이 매우 적었다.

Blackwood 박사는 연구결과를 두고 "이들 부위가 손상되면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져 죄책감, 두려움, 걱정 등의 반응이 약해지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진들도 사이코패스가 전두피질 등 뇌기능 장애로 인해 발병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서울의대 권준수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사이코패스는 뇌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서 "환경적 요인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의과학계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가 제시한 데이터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편도체는 회백질과 백질의 양이 일반인보다 턱없이 적었으며, 전전두피질도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15% 수준에 그쳤다. 일반인의 전두피질은 전체 피질의 약 30%를 차지한다. 원숭이 11.5%, 고양이 3.5%에 비해 월등히 많다.

권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거의 없는 대신 분노를 인지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서 "임신 중 질병 및 약물 노출 사고 등에 의한 뇌 손상이 사이코패스 기질을 만드는 결정적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폭력 유발하는 'MAO-A 유전자' 보유

과거 TED 강연에서 스스로 사이코패스라고 고백한 미국 하버드대학 James Fallon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유전자는 정상인과 다르다는 주장을 폈다. 70여 명의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MAO-A 유전자 발현으로 인해 사이코패스 성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Fallon 교수는 "MAO-A 유전자는 X 염색체로 폭력 유발 유전자나 다름없다"면서 "MAO-A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이 유년시절 폭행 장면을 자주 목격할수록 잠재된 공격 성향이 극대화돼 향후 위법행위를 일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MAO-A 유전자는 오직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Fallon 교수는 "딸은 아버지에게서 하나의 X 염색체, 어머니에게서 또 하나의 X 염색체를 물려받아 희석되지만, 아들은 어머니에게서만 X 염색체를 물려받을 수 있다"면서 "남성에서 이러한 유전적 불균형으로 인해 공격적 성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과도한 세로토닌 분비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높이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됐다.

세로토닌은 긴장을 풀어주고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MAO-A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뇌가 세로토닌을 과도하게 분비해 오히려 세로토닌에 무반응을 보인다. 이는 결국 냉담하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부연이다.

"불우한 성장과정이 사이코패스 성향에 불붙여"

일각에선 사이코패스가 유전적 요인으로 타고났다기보다는 어린 시절 정서적 상처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견해를 보인다.

 

캐나다 범죄심리학 Robert D. Hare 박사에 따르면 부적절한 양육이나 어린 시절 나쁜 기억이 사이코패스의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본성에 존재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발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Hare 박사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뇌에서 기분 나쁜 것을 예상해 중추신경계로 두려움이란 신호를 전달해야 하는 편도체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으로 유명하다.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전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사이코패스는 분명 유전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성장과정, 양육환경 등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면서 "충동조절이 불가능한 유전자를 보유한 아이가 나쁜 양육환경에서 자라면 그 유전자가 발현돼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성격장애와 사이코패스 동일 질환으로 볼 수 없어

현재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공식적인 검사 도구는 없다.

미국정신의학회(APA)도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판(DSM-5)을 통해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일부 개념에 사이코패스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완전히 동일한 질환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Hare 박사가 개발한 사이코패스 테스트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다. 테스트는 사이코패스 판정 도구(PCL-R)에 기반한 진단기준으로 질문내용을 보고 △전혀 그렇지 않으면 0점 △조금 그러면 1점 △정말 그러면 2점을 매겨 총점을 내는 방식이다.

40점이 최고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다고 판단한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은 테스트 결과에서 35점을 기록하며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았다. 일반인은 평균 15~16점을 기록한다.

"치료법 없지만 공격성·충동 등 증상 조절은 가능"

이처럼 공감결여, 무책임,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사이코패스 환자 특성상 치료는 최대 난제로 꼽힌다. 환자가 자발적으로 의료진을 방문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 사이코패스 치료를 위한 자체 치료법는 없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시행되는데, 사이코패스 성향이 나타나는 양상에 맞춰 대증적 치료와 심층 상담이 주로 이뤄진다.

충동성이나 우울, 감정폭발, 행동조절 문제가 심할 경우 타인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한다. 여기에는 항정신병약물 또는 항우울제 처방이 이뤄진다. 감정조절이나 충동조절을 위한 심리치료가 병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 예후도 나쁘다. 본인(사이코패스)은 정상이라 여기며, 타인을 비정상으로 지목하는 등 치료 동기가 결여돼 있어 치료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사이코패스가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기질,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노출된 점을 고려하면 당연히 치료가 어려운 것은 맞다"면서 "다만 사이코패스의 주요 병리적 특징인 공감능력 결여, 충동, 공격성 등은 장기적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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