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인식 부족…"암 치료 모든 과정에 재활치료 필요"

전 세계적으로 모든 암의 5년 생존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암 진단을 '사망선고'로 여기던 시대를 지나, 이제 암을 재활치료 등을 받으면서 양질의 삶을 목표로 하는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그럼에도 암 환자와 암 생존자 치료에 있어 재활치료가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이유는 무엇일까?일각에서는 암 환자의 재활 인식이 부족한 점이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수년간 암 재활을 담당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들 생각은 다르다.재활치료 역할을 단순 운동치료로 보는 의료진의 제한적인 시각과 제대로 된 수가체계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암 재활치료 시행에 있어 첫 번째 문제는 이를 전문적 의료행위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웰니스(Wellness), 운동(Fitness) 수준으로만 생각하는 데 있다.암 재활은 암 치료 중 모든 시점(암 치료 중, 암 치료 완료 후, 암 생존 시기)에서 동반될 수 있는 기능적 장애를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치료팀이 진단하고 치료하는 모든 의료적 과정(impairment-driven cancer rehabilitation)이 포함된다.
▲ 유방암 수술 환자들이 암 전이를 막기 위해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서울아산병원>

현재 대형 암센터를 중심으로 국내 암 재활의 필요성과 인식이 향상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서울의대 임재영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팀 연구에 의하면 암 재활치료가 재활의학적 진단과 평가를 통해 이뤄진다고 인식하는 환자 또는 의료진의 숫자는 고작 23%에 불과했다. 이는 암 재활을 단순 운동치료로 생각할 뿐 암 진단부터 말기까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기능적 장애를 진단 및 치료하는 '의료적 행위'로 보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한암재활학회 황지혜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은 "암 재활을 단순히 삶의 증진을 위한 행위로만 보고 있다"면서 "암 재활은 암 자체 또는 암 치료 과정에서 악화된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최적의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장기적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 필수 치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건비 충당도 안 되는 수가

수가 문제 역시 암 재활 분야에서 빠질 수 없는 난제로 꼽힌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민성기 회장(제니스병원 원장)은 "암 질환별 후유증이 각각 다른데 이에 대한 치료 수가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림프부종에 대한 재활치료 수가도 기대에 못 미친다"면서 "정부와 사회가 관심을 갖고 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암 재활치료 관련 건강보험 수가로는 림프부종 치료인 복합림프물리치료(complex decongestive physical therapy)와 암 환자 기본 상담료, 폐암 환자 대상 호흡 재활 등이 있다.

복합림프물리치료는 일대일 치료 시 30분에 약 1만 원꼴이고, 그 외 암 재활 대상 환자는 수가항목이 따로 없어 단순 운동치료 또는 복합운동치료를 적용해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 이들 치료 역시 10분 이상 실시했을 때 각각 3610원과 6200원에 그친다. 수가수준은 재활치료 과정의 인건비에도 못 미치고 수가 항목은 재활을 해야 하는 환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준이다.

"암 재활 관련 정책과 수가체계 개발 시급"

적정 수가 마련을 위해서라도 미흡한 학술적 체계와 근거를 쌓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황 부회장은 "암 재활치료가 전문재활 분야로 인정받아 적정 수가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대상과 적용 시기, 방법, 내용 등에 대한 프로토콜이 확립돼야 한다"면서 "암 재활 전문 재활의학과 의사와 치료사들이 체계적 문헌고찰과 성과연구를 통해 근거들을 모으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암 재활의 비용 대비 효과를 알아보는 연구결과가 활발히 발표되면서 암 재활 치료에 대한 효능은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다.

실제로 암 환자들에서 수술 직후,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중 또는 직후 한 가지 이상의 재활치료를 적용한 경우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은 암 환자 296명을 대상으로 항암치료 기간 중 의료진 지도 하에 운동치료, 이완요법과 도수치료를 6주간 시행했다. 그 결과 대조군과 비교해 피로감 완화, 유산소운동능력 향상, 근력 향상 및 심리적 안정 등의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다(BMJ 2009;339:b3410).

암 생존자에 대한 암 재활 효능을 분석한 결과도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2012년 미국 뉴멕시코대학 Mishra SI 교수팀이 유방암 생존에서 운동치료가 포함된 재활치료 효과를 알아본 논문 40여 개를 분석한 결과만 봐도, 재활치료가 건강 관련 삶의 질을 호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2; (8):CD007566).

"암 재활치료로 입원기간 줄고 예후에도 긍정적 영향"

암 재활은 크게 △입원환자 협진 △외래 △암 재활클리닉 및 입원재활서비스로 시행되며, 암종별에 따라 재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세부적으로 △부인암이나 비뇨기암은 수술 후 재활치료(운동치료 포함) △식도암 및 폐암 환자는 수술 후 재활치료(운동치료 포함) △두경부암은 치료 후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 재활 △유방암은 치료 중·후 상지재활치료 등이 이뤄진다. 이 중 유방암과 두경부암은 보다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요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유방암 환자에서 행해지는 대표 재활치료는 림프부종 치료다. 림프부종으로 인해 수술한 부위 쪽 팔이 붓게 되고 세균감염이 생길 위험이 높아 철저한 재활치료가 시행돼야 한다. 림프부종 발생률은 21.4%로 유방암 환자 5명 중 1명이 이를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림프부종 치료에는 림프액 흐름을 촉진하는 복합림프물리치료요법과 압박치료가 있다. 약물치료도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아직 림프부종 자체 치료제는 없다.

두경부암은 완치율이 향상되고 제거되는 조직 범위도 감소했지만, 아직 수술 후 동반되는 부신경 손상 등으로 인해  재활치료가 필수다. 부신경이 손상된 두경부암 환자 재활치료는 신경근 재훈련, 자세 개선 훈련이 주로 시행된다.

황 부회장은 "암 재활치료는 암 환자 또는 암 생존자의 병원 재원 기간을 단축시키며 환자의 치료 성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서 "하지만 아직 암 재활치료의 적정 수가가 마련돼지 않아 재활치료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암 재활수가, 선진국 사례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암 재활과 관련된 정책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암 재활 수가도 마련된 상태다.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는 재활의학과 의사, 간호사, 물리작업치료사, 사회사업가, 영양사 등으로 구성된 암 치료 다학제팀(cancer adaptation team)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다학제팀이 시행하는 운동·작업치료, 보행훈련, 마사지치료, 사회복귀 훈련 등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에 수가가 적용되고 있다.

일본도 2006년 암 관리 법령을 제정해 재활의학회와 암 재활학회 중심으로 국가 암 정책연구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2012년 암 재활 진료 지침서를 발간했다. 이뿐만 아니라  암 재활치료 전문인 양성 프로그램(CAREER)을 개설해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만 암 재활 관련 수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맞춤 재활치료를 구축해 체계적인 암 재활치료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암 환자 증상에 따른 재활치료 지침서를 제시해 일반의도 암 환자의 재활치료 의뢰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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