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 국가적 프로젝트

미·영국 등 긴급 예산 편성…한국 2년내 자체 생산 추진

 "대유행인플루엔자(PI, Pandemic Influenza)의 출현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피해는 줄일 수 있다(리암 도날드슨 경, 영국 Chief Medical Officer)."
 "대유행전염병은 산불과 같아, 초기에 불길을 잡으면 피해를 최소화시켜 진화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통제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조지 W. 부시)."
 조류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 대유행 창궐시 인명 및 재산피해 등 후폭풍의 여파가 클 것으로 예측돼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현재 H5N1은 조류에서 인간으로의 감염만 보고된 풍토병 수준이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인체간 전염의 변종탄생이 시간문제라며 PI 창궐시 피해절감 대책에 주력하고 있다.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의 천병철 교수는 "실제 전염병의 범유행시 효과적 대처 여부에 따라 국가간 경제력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보건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대응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로서 H5N1 대유행시 유일한 대처무기는 항바이러스제 오셀타미비르(상품명 타미플루)와 자나미비르(리렌자)를 들 수 있다. 계절성인플루엔자(SI, Seasonal Influenza) 치료를 위해 개발됐으나, AI 증상발현 후 조기투여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이들이 마치 AI 백신인 것 처럼 보도되고 품귀현상이 유발되면서 과도한 국민불안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타미플루와 리렌자는 A형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표면항원중 바이러스 증식에 관여하는 뉴라미다제(neuromidase) 기능을 억제하는 기전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지는 못하고 감염후 체내증식을 차단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제이며, 임상시험 결과도 제한된 수준으로 PI의 근본적인 대처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PI 창궐시 확산을 막는데는 백신이 가장 확실한 무기일 수 밖에 없다. 현재, 다가올 PI의 주요 용의자인 H5N1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상품화된 백신은 없다.
 각국 보건당국이 접종을 권고하고 있는 올시즌 인플루엔자 백신은 A형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 H1N1과 H3N2를 타깃으로 한다. 접종을 강력히 권고하는 이유는 매년 전세계에서 SI 유행으로 수십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SI 바이러스와 H5N1이 인체내에서 결합(reassortment)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이경우 인체간 전염이 가능한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
 H5N1 예방백신 개발에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국립알레르기·감염질환연구원(NIAID)은 지난해,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H5N1 바이러스 균주를 배양해 백신제조업체 사노피-파스퇴르와 카이론에 제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양사는 예방백신을 생산했으며, 올해 4월부터 임상시험에 돌입해 450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면역반응 유도 여부를 검증한다.
 미국은 사노피-파스퇴르와 1억달러, 카이론과 6250만달러의 백신공급 사전계약을 체결했다. 더불어, 부시 대통령은 2000만명에게 제공할 AI 백신구입을 위해 12억달러의 긴급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영국에서는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이 미국 보다는 다소 뒤졌지만, 제한된 항원으로부터 다량의 백신생산이 가능한 H5N1 백신개발에 전력중이다. 2006년 승인을 목표로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시설 또한 확충하고 있는 GSK는 지난달 말 올해 3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수주일 이내에 H5N1 표준형 백신의 임상시험에 돌입해 내년 상반기중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녹십자가 인플루엔자 백신원료 생산공장 설립 사업자로 선정돼 2009년 자체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 2일 `AI 및 신종 PI 대책 점검회의 결과`를 발표, 자체 인플루엔자 백신생산이 가능한 2008년 이전에 PI가 발생하면 사용 가능한 자원을 동원해 백신생산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현재 녹십자의 인플루엔자 백신 시험생산 능력은 연간 20만 도스이나 상황발생시 가용자원을 동원해 200만 도스까지 생산이 가능하다.
 민간부문에서는 국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백신연구소를 비롯해 의약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는 산·학·연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현재로서는 역유전학 기술을 이용, 유전적으로 바이러스의 독성을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유전자재조합 인플루엔자 생백신 개발을 추진중인 연세의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가 H5N1 백신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H5N1 바이러스가 인체내에서 적응력을 키우거나 SI 바이러스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변종으로 탈바꿈하면 현재 개발중인 H5N1 백신 또한 신종 PI 확산을 막는데는 무용지물격이 되고만다. 지난 세기 3차례의 대유행을 창궐한 PI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물론 산·학·연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여타 AI 바이러스의 표준형 예방백신 생산기술 및 설비확충에 전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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