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복지위,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 단초 마련...직역간 갈등 여전 '진통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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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까지만 해도 부족한 의사인력의 보완재로 의료현장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이었지만, 어느새 간호사와 의사 사이에 '끼인' 신세가 됐다. 법률에 근거한 전문인력이지만, 그에 걸맞은 지위와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계륵'이 되어버린 전문간호사에 관한 얘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전문간호사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대표발의)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현재 보건복지부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전문간호사 자격 요건을 모법인 의료법으로 끌어올려 '전문간호사 제도'의 근거를 보다 확실히 하고, 그 하위법령으로서 전문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 개정까지 아직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전문간호사 역할 재정립을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료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적 지위 가진 전문인력…현실은

전문간호사(Advanced Practice Nurse, APN)란, 특정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전문적 간호를 제공하는 간호사를 일컫는다. 의료법 규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격을 인정하는 전문인력의 하나로, 간호사 면허 소지자 가운데 일정 기간의 교육과 시험을 거친 자에 한해 그 자격이 부여된다. 

의료법 제78조는 복지부 장관으로 하여금 간호사에게 간호사 면허 외에 전문간호사 자격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전문간호사의 자격 구분·자격 기준·자격증·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련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자 중 3년 이상의 실무경력을 쌓고 2년 이상의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을 거친 자가 전문간호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의 해당분야 전문간호사 자격이 있는 자가 전문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경우 전문간호사 자격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거 법령이 마련된 것은 1973년이 처음이지만, 전문간호사의 태동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료인력이 부족했던 시절, 병원들은 자체적으로 간호인력 가운데 일부를 전문인력으로 양성해 운영했고, 기존 간호사 면허 소지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이들을 전문간호사로 칭하던 것이 전문간호사의 시초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간호계 차원에서 전문간호사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973년 당시 의료법에 보건·마취·정신 등 3개 분야에 대해 '분야별 간호사'가 도입되면서 전문간호사 제도에 관한 법률적 근간이 마련됐다. 

분야별 간호사는 2000년 '전문간호사'로 변경됐고, 자격인정 범위 또한 기존 보건·마취·정신 3개 분야에서 가정전문간호사가 추가돼 4개 분야로 확대됐다. 

2003년에는 여기에 응급·산업·노인·호스피스·중환자·감염관리 등 6개 분야가 추가됐고, 2006년에 아동·임상·종양 등 3개 분야가 더해지면서 현재 모두 13개 분야에서 전문간호사 자격이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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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전체 전문간호사 자격 취득자는 1만 4549명이다.

분야별로는 가정 전문간호사가 전체의 절반 가량 (44%, 6408명)을 차지하며, 노인 전문간호사가 14.4%(2100명), 보건 전문간호사가 13.8%(2011명), 종양 전문간호사가 5.2%(752명), 중환자 전문간호사가 4.3%(625명), 마취 전문간호사가 4.2%(617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실제 요양기관에서 활동 중인 전문간호사의 숫자는 1238명으로 파악된다.

활동 전문간호사의 절반 이상(54.5%, 696명)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재직하며, 요양병원(14.9%, 184명)과 보건소(9%, 111명) 등에서도 다수 전문간호사가 활동 중이다.

이들은 주로 환자에 대한 전문간호와 특성화된 교육·상담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부는 수술지원 등의 업무를 맡기도 하고, 주치의 감독 하에 환자 처방에 관한 업무를 하기도, 수술 및 검사에 대한 설명과 동의서를 받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반드시 의사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중요도가 높지는 않지만, 일반 간호인력이 수행하기는 어려운 일종의 '사각지대'를 채우는 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불법과 합법 사이…매일 담벼락을 걷는다

일반 간호사에 비해 전문성을 인정받은 결과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전문간호사 역할 논란으로 이어졌다. 특성화된 전문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의료행위와의 경계선에 보다 가깝게 맞닿아 있는 탓이다. 

현행 법령은 전문간호사 자격과 인정 기준 등을 정하면서도, 실제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다른 의료직역의 경우에도 현실적 한계로 각각의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의료법의 특징이지만, 의사와 간호사 사이 일종의 회색지대에서 일하는 전문간호사들에게는 이는 곧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2010년 있었던 대법원의 판결은 전문간호사의 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당시 대법원은 '마취 전문간호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마취행위를 할 수 있다'는 기존 복지부 유권해석과 달리,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행한 마취 전문간호사의 척수마취 행위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결했다. 

"전문간호사라 하더라도 마취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간호사의 자격을 인정받은 것뿐이어서, 비록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더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간호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2014년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마취에 대해서도 의사가 현장에 참여해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를 위반해 간호사 등에게 프로포폴 주사를 위임할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고 판시했다.

의료행위에 대한 명확한 법률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 판결은 전문간호사 업무 수행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간 수행해왔던 업무 가운데 무엇이 전문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일인지 그 경계선을 규정하기가 모호했던 까닭이다.

이후로 활동 간호사의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매년 400여 명의 전문간호사가 추가 배출되고 있지만, 활동 전문간호사의 숫자는 2012년 1378명에서 2016년 1278명으로 감소했다. 자격 소지자 중 활동인력의 비율도 같은 기간 10.7%에서 8.8%로 줄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설미이 회장(서울아산병원)은 "임상현장에서 다수의 전문간호사가 활동 중임에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전문간호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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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간호사 역할 정립 ‘시동’…갈 길은 멀다

정부는 의료법 개정이 완료되는대로, 전문간호사와 자격인정 요건과 업무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복지위가 정한 데드라인은 법 개정 후 2년. 정부는 이 기간 동안 관계 직역과 충분한 협의와 연구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는 각오다. 다만 의료계 등 관계 직역 등의 반대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향후 논의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간호계는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늦었지만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위한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문간호사 제도는 의료인력 대비 인건비 절감, 진료대기시간 단축에 따른 환자 편의 제고, 재원일수 단축을 통한 의료비용 절감 등 사회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며 "업무 영역을 보다 명확히 하는 등 제도를 정비, 전문간호사가 보다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전문간호사 제도를 되살리겠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며, 직역간 갈등과 같은 또 다른 혼란만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과거 의사가 부족했던 시절 전문간호사가 인력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활동 전문간호사의 감소는 이런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사문화돼 가는 제도를 되살리겠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의 업무범위를 두고도 갑론을박하는 시대에 전문간호사의 업무영역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재단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업무영역을 둘러싼 직역 간 갈등만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무 범위 구체화가 인접 의료행위 허용 등 업무영역의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 확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접 의료행위가 허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일이며, 향후 그 책임소재 등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단순히 사회적 합의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황규삼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는 "마취 전문간호사 업무 영역 논란은 이미 2010년 대법원 판결로 정리된 문제"라며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마취행위를 간호사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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