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양극성장애) 기준 대부분 차용, 조울증과 다른질환인지 의구심만…

미국정신의학회(APA)가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판(DSM-5)을 펴내면서 주요 우울장애 세부항목에 약간의 변화를 준 점은 본지를 통해 여러 번 소개됐다.변화된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DSM-5가 △불안성 우울(anxious disorder)을 추가하는 동시에 혼재성 삽화(mixed episode)를 삭제하고 조증 또는 경조증과 우울증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혼재성 양상을 보이는 우울증 즉 혼재성우울증(mixed features)을 추가했다.이러한 변화는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큰 변화일지 몰라도, 혼재성우울증 진단 기준이 양극성장애 기준 대부분을 차용해 과연 혼재성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를 다른 질환으로 봐야 하는 지 의구심이 든다.조증, 경조증+우울증 있으면 혼재성우울증?DSM-5는 혼재성우울증은 대부분의 날(majority of days) 조증 또는 경조증과 우울증이 혼재적으로 나타난다고 지정했지만, 양극성장애는 한 번 이상의 조증 또는 경조증과 한 번 이상의 우울증이 번갈아 가면서 동반된다고 명시했다.
 

양극성 장애는 조증 또는 우울 증상이 번갈아 나타나지만, 그 기간과 주기 나타나는 장애 양상에 따라 1형과 2형으로 구분 짓고 있다.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를 양극성장애 1형이라고 하며, 간혹 우울증은 없이 조증만 반복되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1형으로 분류된다. 양극성 장애 2형은 1형과 달리 우울한 상태가 2주 동안 유지되면서 4일 정도 조증보다 약한 경조증이 나타나는 것이 반복되는 유형이다.

반면 혼재성우울증은 DSM-5로 개정되면서 혼재성 삽화(mixed episode)를 삭제하는 대신 새롭게 추가된 세부항목이다. 혼재성 삽화가 주요우울삽화와 조증이나 경조증 삽화가 충족되는 시기가 1주일 이상 지속해야 하는 진단기준 지나치게 엄격해 혼합형 삽화를 삭제하고 혼합형 양상 즉 혼재성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도입했다.

이에 우울증이 있으면서 동시에 3개 이상의 조증 혹은 경조증 증상이 있는 환자를 '혼재성 우울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3개 이상의 조증·경조증은 이렇다.

먼저 조증·경조증의 경우 △고양된 기분 △과장된 자존심 또는 과대망상 △수면시간의 감소(예 단 3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느낌)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계속 말을 함 △목표지향적 활동의 증가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활동에 지나친 몰두(예 과도한 쇼핑 등의 과소비, 무분별한 성행위, 어리석은 사업투자 등) △주관적으로 느끼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주의산만 등이 있다.

 

혼재성우울증 대표증상인 고양된 기분, 자존감 증가, 과대망상
임상적으로 보기 드물다는 지적 나와

하지만 인제의대 박영민 교수(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혼재성우울증의 경우 대부분의 날(majority of days) 증상(조증 또는 경조증과 우울증)이 혼재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명시한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논문을 통해 "혼재성 우울증 진단 기준 가운데 대부분의 날(majority of days) 조증이나 경조증을 보여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기술돼 있으며, 3가지 이상 우울 증상 기준 역시 충족돼야 한다고 했다"면서 "이는 양극성장애 진단기준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양극성 장애와 혼재성우울증 양상이 다른 질환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mood Emot 2016; 14:5-9).

가톨릭의대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혼재성우울증은 임상적으로 정확한 명칭이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 교수는 "DSM-5가 조증 또는 경조증이 있으면서 동시에 우울증이 동반되면 혼재성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릴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사실 조증이 있으면 양극성장애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확히 말하면 조증(mania)과 주요우울장애(MDD) 증상이 동시에 동반되는 혼재성 양상의 조울증으로 진단된다"면서 "또 혼재성우울증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환자는 임상에서 거의 드물다"고 부연했다.

일부 혼재성우울증 진단 기준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혼재성양상 기준에 포함된 고양된 기분, 자존감 증가, 과대망상 등과 같은 증상은 실제 임상에서도 보기 힘든 양상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Centro Lucio Bini의 정신병학자 Athanasios Koukopoulos 박사에 따르면 혼재성우울증 개념의 밑바탕이 된 것은 우울증과 조증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는 비특이적이면서 중복되는 증상을 배제 시킨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복되는 증상에는 자극 과민성(irritability), 기분의 기복(lability), 분노(anger), 자살사고(suicide ideation), 안절부절(restlessness), 초조(agitation)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증상들을 진단 기준을 제외한 것이다(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하지만 Koukopoulos 박사는 혼재성 우울증의 중요한 핵심 증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우울증과 동반되는 이러한 비특이적인 양상들이 혼재성우울증의 특징이며, 반대로 고양된 기분이나 자존감의 증가. 과대망상 등이 나타나는 혼재성우울증은 드물어 DSM-5 기준이 틀렸다"고 부연했다(Br J Psychiatry 2013; 203:3-5)(Acta Psychiatr Scand 2014; 129:4-16).

Koukopoulos 박사는 "기분의 기복, 분노, 경주 사고 등의 비특이적 증상들이 혼재성우울증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며, 더 많은 환자에서 관찰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치료 또한 기존의 항우울제로는 효과가 부족해 항정신병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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