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효개념과 방어진료 의료 집착 가져와 ... 임종문화에 대한 사회적 변화 필요

어떻게, 어디에서 생을 마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생을 마감할 때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2015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또 인간의 삶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매년 28만명 정도가 사망한다. 이 중 만성질환이나 암 등으로 24~25만명 정도가 사망하고, 75~80%가 병원에서, 나머지 20~25%는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대로라면 해마다 20만명 정도가 병원에서 생을 정리하는 셈이다.

80~90년대 초반까지는 생을 집에서 정리하던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최근 20~30년 사이 병원이 생을 정리하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오히려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서울대병원 종양내과)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던 장례문제가 정리된 후 임종 문화가 우리 사회의 숙제가 됐다고 우려했다.

죽음 앞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는 건 무슨 의미?

전문가들은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환자의 사망 직전까지 무의미한 치료에 집중하는 현상을 '의료 집착'이라 진단한다. 이 상황의 기저에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있다고 꼬집는다. 두 가지의 잘못된 상황이 나쁜 방향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보라매병원이 급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던 58세 남자 환자를 퇴원시켰고, 이후 법원이 의료진을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한 사건이다. 보라매병원 판결 이후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의사들의 방어진료와 더불어 정부의 암 보장성 정책이 의료집착을 가속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

허 교수는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해야 할 상황인데, 정부가 암 등에 대한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폈다"며 "5%만 환자가  부담하면 병실이나 중환자실 등에 입원할 수 있다. 저수가로 의료이용이 쉬워지면서 집보다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무엇이든 원 없이 해주고 싶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화도 의료 집착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아진 기저에 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제 암환자나 중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현장에서 의사들이 겪는 어려움도 같은 맥락이다.

허 교수는 "우리 사회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죽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며 "환자가 치료를 더 받아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 대부분 보호자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요청한다. 과연 '최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방어진료를 걱정해야 하는 의사는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중환자실에 계속 두거나, 다른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제도와 문화 때문이라고 해도 의료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는 지금까지 의료교육을 기술중심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임종을 앞둔 환자를 상담하는 방법보다는 첨단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가톨릭의대 최보문 명예교수는 "한 조사에 따르면 63%의 의사가 환자의 실제 기대여명을 2~3년 길게 잡고, 종양내과의사 45%는 말기 환자에게 습관적으로 항암제를 투여한다"며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하겠냐 등의 권유를 하기도 한다. 환자가 죽을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뺏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반적으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환자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의사는 어떻게 케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첨단의학의 발전으로 환자의 유병기간과 더불어 죽음에 대한 불확실성도 길어졌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병원 임종으로 정부 재정도 휘청

사망하는 사람의 약 70%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면서 정부 재정도 휘청하기 시작했다. 사망 전 1년간 지출한 의료비가 10년 전에 비해 3.4배가 증가한 것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 의료비 효율적 관리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40세 이상, 65세 이상, 75세 이상으로 인구 집단별로 분석한 자료로, 사망 전 1년, 사망 전 6개월, 사망 전 3개월, 사망 전 1개월의 기간 단위 의료비 지출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15년을 기준으로 40세 이상 성인이 사망 1년 전에 지출한 의료비는 총 1595만 1000원이었다. 1개월 평균 132만 9000원을 지급한 데 비해, 사망 전 6개월 동안 지급한 의료비(총 1055만 3000원)는 월평균 175만 8000원이다. 사망 전 3개월간 의료비(총 668만 3000원)의 월평균 비용은 222만 7000원이며 사망 직전 1개월 의료비는 241만7000원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사망 전 의료비는 총 1558만 8000원으로 월평균 129만 9000원이었고, 사망 전 1개월간 비용은 230만 8000원이었다. 65세 이상 노인 또한 사망이 가까울수록 의료비가 증가하는 패턴은 같았다.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는 사망 전 1년간 지불한 의료비가 총 1410만 2000원으로 월평균 117만 7000원을 지불하고 있으며, 사망 전 1개월간은 207만 2000원을 지불했다.

최 교수는 "데이터를 보면 환자의 사망 직전에 첨단의료기술이 적용되고 더 많은 고가 약들이 투여된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의료계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논의를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의 의료 집착을 풀려면 

의료 집착을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생각들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가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케어 영역을 급여화하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허 교수는 "문재인 케어가 말하는 비급여의 급여화는 좋다. 하지만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필수영역에서 급여가 안 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요한 부분을 급여화하지 않고, 굳이 급여화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손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또 "간병비나 호스피스, 간호사 비용에 대한 영역을 급여화 해야 한다. 간호부분에 대한 비용이 거의 없는 것과 같다"며 "정부가 치료보다는 케어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생애 말기 돌봄 서비스를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생애 말기 돌봄의 접근방식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이제 병원 중심의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는 한계에 이르렀다.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높아지는 만큼 이에 걸맞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의료패러다임, 의료계 문화, 의료전달체계 정비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우려했다.   

또 "병원에서 이뤄지는 생애말기 서비스를 지역사회로,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의 지역사회로 바꿔야 한다"며 "우리 사회는 20년 안에 85세 이상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죽음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구집단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Respecting Choices Program' 눈길

묘수는 없지만 1986년 미국 위스콘신주 La Crosse Gundesen Healthcare Network에서 진행된 'Respecting Choices Program'을 눈여겨볼 만한다. 이곳에서는 의사와 환자가 생애 말기 소망을 얘기하는 캠페인을 비롯해, 환자와 건강한 사람 모두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등을 진행했다.

여기에 생전 유언이나 대리인 지정, 유언장 쓰기 등의 법적 지원은 물론 의료인에게 'Conversation Program'과 의료상담수가를 지정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생애말기 돌봄을 모든 일반 의료서비스로 지정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성인 사망자의 90%, 주민 96%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것이다. 또 생애말기 2년간 재원일 수가 13.5일로, UCLA 메디컬센터 31일, 마이애미대학병원 39일, 뉴욕 랑곤의학센터 54일보다 짧았다.

또 평균 의료비용도 약 1960만원(1만 8000달러)으로, 약 6427만원(5만 9000달러)인 UCLA 메디컬센터와 약 6971만원(6만 4000달러)인 마이애미대학병원, 약 7187만원(66000달러)보다 경제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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