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원하는 외과의사 위해 대안 필요 ... 아산병원의 중환자외상외과 모델 대안

▲ 세브란스암병원 외과 입원전담전문의 병동 모습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최근 좋은 평가와 함께 채용 등에서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내과 입원 전담전문의와 달리 외과는 답보상태에 있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내과 입원 전담전문의가 활동한 후 환자나 의사 만족도가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의사를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외과는 시범사업부터 삐걱거리는 상황이었다. 시범사업을 기획할 초기, 정부는 16개 병원에서 외과 입원전담의(Surgicalist, 서지칼리스트)를 가동하려 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어 출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 추가 신청을 받은 후 겨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대병원, 인하대병원, 원광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이대 목동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세브란스 연세암병원에서 서지칼리스트들이 활동 중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서지칼리스트로 근무하고 있기도 하고, '꼼수' 서지칼리스트가 활동하는 등 잡음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수술할 수 없는 서지칼리스트, 외과의사에게 매력 없어"

정부가 시범사업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원하는 외과의사가 없어서다. 외과의사들은 이 지점에서 외과의사가 갖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대병원 한 외과 교수는 "외과의사들은 대부분 수술하는 것이 좋아 의사가 된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서지칼리스트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지금과 같은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서지칼리스트를 뽑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범사업이 한창인 현장에서도 같은 우려가 나온다.

▲ 세브란스연세남병원 입원전담전문의 정은주 교수(사진제공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서지칼리스트인 정은주 교수도 "외과를 지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술을 하고 싶어 의사가 된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서지칼리스트의 업무는 병동에서 수술한 환자나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수술을 목표로 달려온 외과의사들에겐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업무임이 틀림없다"고 아쉬워했다. 

같이 근무하는 정윤빈 교수도 "병원 내에서 여러 논의가 있지만 지금은 시범사업 중이라 입원 전담전문의 원래 취지에 맞게 수술을 하지 않고 병동 환자를 돌보고 있다"며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갈등요인이다. 제도정착을 위해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할 수 없는 단점 외에도 서지칼리스트라는 생경함도 외과의사들이 꺼리는 이유다.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과연 계속 이어질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근무환경과 급여는 괜찮은지에 대해 많은 의사가 걱정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기획이사(삼성서울병원 외과)는 내과처럼 성공 모델이 없어 지원하려는 의사들이 더 주저할 수 있지만 점차 해결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외과의사 특성에 맞춰 제도 개선해야"

서지칼리스트를 활성화하려면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시범사업 이후 사라지는 직업이 아니라는 신뢰감을 줘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오면 이를 서지칼리스트가 수술하는 것이 서울아산병원의 모델이다. 

최근 열린 대한외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서울아산병원 외과  홍석경 교수는 "서지칼리스트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치료와 수술을 한다는 것이 기존 입원전담전문의와 다른 점"이라며 "입원전담전문의가 수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면, 이 모델은 수술을 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정윤빈 교수는 서지칼리스트가 '병동 환자관리'와 '수술'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서지칼리스트를 '병동 관리팀'과 '수술팀'으로 나눠 교차 근무하면 된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 원래의 역할도 하고, 수술하고 싶은 외과의사의 갈망도 충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며 "외과는 매우 세분돼 있어 대학병원에서 틈새에 있는 질환이 많다. 이 환자들을 서지칼리스트가 수술하면 된다. 충수절제술, 탈장, 장폐색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칼리스트 직업 자체에 대한 불신감은 해소되고 있다는 게 외과학회 측 입장이다. 

이우용 기획이사는 "직업 안전성, 직무의 정의, 월급 등이 받쳐줘야 성공할 수 있는데, 하나씩 차츰 해결되고 있다"며 "정부가 입원전담전문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시범사업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학회가 입원전담전문의들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정의하고 있고, 최근 정부가 수가를 40% 인상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주치의 될 수 없는 서지칼리스트의 애환 

큰 틀에서의 문제뿐 아니라 서지칼리스트가 활동하는 현장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우선 서지칼리스트는 주치의가 될 수 없다는 점. 외과수술을 받는 환자 대부분은 수술할 의사를 지목한 후 입원한다. 수술받은 이후에도 해당 의사가 계속 주치의로 남길 원하는 것이다. 서지칼리스트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

▲ 세브란스암병원 정윤빈 입원전담전문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정윤빈 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들이 주치의가 되려면 수술 이후 주치의를 변경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거부한다"며 "분당서울대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진행되는 입원전담전문의제도는 처음부터 주치의가 내과 입원전담전문의라 문제가 없지만 외과는 내과와 다르다"고 토로했다. 

또 "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한 주치의를 서지칼리스트가 지원하는 형태로 돼 있다"며 "환자에게 입원전담전문의들의 역할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긴 과정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악조건이지만 병원 내에서 서지칼리스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병동에서 퇴원한 환자가 다시 입원했을 때 서지칼리스트를 만나게 해 달라는 요구가 점차 늘고 있다. 이는 환자들이 서지칼리스트에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의료진의 만족감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정윤빈 교수는 "과거에는 '환자 수술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환자 옆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수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지금에서야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서지칼리스트를 내과의사로?

일각에서는 지원이 저조한 서지칼리스트를 채용하기 위해 내과의사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외과의사들은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내과의사가 외과 수련을 잠깐 받는다고 해서 외과의사 역할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은주 교수는 "내과의사를 서지칼리스트로 채용하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잘라 말하며 "서지칼리스트는 수술 후 합병증이나 관리, 수술 소견에 따른 치료 등이 달라진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과의사를 서지칼리스트로 채용하는 것은 환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과학회 측은 부족한 서지칼리스트를 위해서라도 외과 전공의 수련을 3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회 이길연 수련이사(경희대병원 외과)는 "전공의 수련 과정부터 세부 전문의, 서지칼리스트, 개원 등 3가지 트랙으로 구성하고 각 직업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며 "전공의 수련을 3년으로 단축해 더 많은 전공의가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서지칼리스트는 외과의 새로운 직업군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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